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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대면 죽는다?

조선이 외과 수술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오해, 그리고 오늘의 통찰

by LunarSun

1. 수술이라는 ‘공포’


1885년, 서울 정동.


조선에 처음 들어온 서양 병원, 제중원에서 한 의사가 수술을 시도합니다.

그의 이름은 알렌. 미국에서 온 선교사이자 외과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환자들은 병원을 떠났습니다. 도망쳤습니다.

왜일까요?


“칼을 대면 죽는다.”
“몸을 가르면 혼이 빠져나간다.”
“서양인들이 장기를 꺼내간다.”


이런 소문이 돌았고, 사람들은 수술을 살인의 일종으로 오해했습니다.


조선 사회에서 신체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함부로 훼손해선 안 된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강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토대 위에서, 칼을 드는 행위 자체가 불효이자 공포의 상징이었던 것이죠.


2. 칼은 같지만, 의미는 달랐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차츰 깨달았습니다.

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칼을 든 ‘손’이 무엇을 하려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요.


어머니는 식사를 위해 칼을 듭니다.

의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칼을 듭니다.

살인자는 생명을 빼앗기 위해 칼을 듭니다.


칼은 동일하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릅니다.


조선은 그 오해를 넘어서면서 외과 수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것을 ‘근대화’라고 부릅니다.


3. 오늘 우리는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까?


이제 우리는 조선 사람들이 겪었던 그 오해를 조금은 비웃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오늘의 사회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그 자체”로 판단하고 있진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기술은 그 잠재력보다 그 파괴력만 먼저 주목받고,

어떤 제도는 ‘누가 쓰느냐’보다 ‘있느냐 없느냐’로만 평가받고,

어떤 사람은 그 직업이나 집단 정체성만으로 오해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이 수술을 ‘죽음’으로 오해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의도’ 대신 ‘겉’을 먼저 보는 습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4. 칼보다 중요한 건 ‘손’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칼이 아닙니다.

그 칼이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지,

그 손이 무엇을 하려는지입니다.


도구의 본질은,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젠가 또다시 누군가의 ‘치유의 손’을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여러분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어떤 ‘칼’이 오해받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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