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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원 A Jan 02. 2017

쉽게 쓰는 금융공학 #1

스타벅스 프리퀀시와 금융공학

커피를 자주 마시긴 하지만 저는 카페에서 열정적으로 쿠폰을 모으는 타입은 아닙니다. 요즘 브랜드 카페들의 트렌드는 연말에 쿠폰을 끼워주면서 일정 목표 이상의 쿠폰을 모으면 다음 년도 플래너를 증정하는 행사인 것 같아요. 그 플래너를 받기 위해 행사 첫날부터 한방에 목표치인 스무 잔 가까운 커피를 사버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은행이니 연말이 되면 마케팅용으로 달력을 배부하곤 합니다만, 이걸 상품의 판매 촉진 용도로 요긴하게 쓰긴 커녕 평소엔 별로 거래가 없면서도 달력은 당연히 받아가는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 곤욕을 치릅니다. 은행 달력을 받고자 열정적으로 거래를 해주시는 분들은 본 적이 없는데, 좀 부럽네요.


그 많은 커피 브랜드의 플래너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것은 단연 스타벅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일반 음료 14잔과 (아마 원가가 낮거나 매출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즌 음료 3잔을 마시며 스마트폰의 스타벅스 앱에 쿠폰(스타벅스의 쿠폰은 '프리퀀시'라 합니다)을 적립하면 플래너를 한 권 얻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기죠. 물론 그것도 점포에 재고가 있을 때의 얘기지만... 재고가 떨어지면 그냥 무료 음료 두 잔으로 퉁칠 거라는 경고를 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타벅스에서 이 프리퀀시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유통이 가능해진 프리퀀시는 아니나 다를까 개인간 매매 시장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낱개의 프리퀀시를 파는 사람도 있고, 또는 저처럼 프리퀀시가 하나도 없는 사람을 위해 아예 완성본 한 판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프리퀀시는 얼마에 거래되어야 할까요?


금융공학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하는 일을 합니다. 마침 프리퀀시는 금융공학적으로 다루기 좋은 요소들을 몇 가지 갖추었네요. 어떤 재화에 대한 교환권을 쪼갠 것이고, 시즌 음료와 일반 음료의 차등이 존재하며, 쿠폰을 완성했다고 해도 반드시 그 재화를 얻을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금융시장에도 스타벅스 프리퀀시와 비슷한 상품이 존재합니다. 어떤 채권을 잘게 쪼개어 낱개로 판매(증권화)하기도 하구요. 권리를 가지고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그 권리가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옵션)도 있습니다. 이런 상품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은 까다롭게 마련이지만, 가치의 측정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었죠. 옵션의 가치를 측정하는 모형을 만든 사람들은 그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답니다. 프리퀀시 가치를 측정하는 모형을 만들면... 스타벅스 리워드라도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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