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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원 A Feb 28. 2017

상자 속의 뇌

나는 존재하는가?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와 우주개발업체 '스페이스X'의 창업주로 유명한 미국의 사업가 일론 머스크는 2016년 미국의 IT 전문매체 리코드(recode.net)에서 개최한 '코드 컨퍼런스'에서 몇 가지 황당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사업으로 2025년에 인간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얘기도 황당한 이야기 축에 들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마 정교한 비디오게임 시뮬레이션이고 나는 캐릭터에 불과할 것이며 이 현실이 진짜 현실일 가능성은 수십억 분의 일에 불과할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http://www.vox.com/2016/6/2/11837608/elon-musk-simulation-argument). 이런 주장들을 그의 사업가적 면모의 일부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고대 그리스의 궤변철학자들이 흔히 하고 놀던 사고실험 정도로 치부하고 잊어버려야 할지 저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주장을 반박할 뚜렷한 논거는 없다는 것이죠. 기분나쁘게도.


우리의 현실이 사실은 가상이라는 생각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거부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일종의 '발칙한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 '매트릭스'죠. 주인공 네오는 빨간 약을 먹고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네오에게 주어진 진짜 현실은 꽤나 양호한 편입니다. 적어도 팔다리가 다 붙어 있는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요.


좀 더 엄밀한 사고실험을 위해 '상자 속의 뇌'라는 장치를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제가 처음 하는 얘기는 아니고 사고실험 중에는 유명한 이야기일 거에요. 사람은 신체의 감각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신체의 감각은 각자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까지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기술이 충분히 발달된 어떤 세계에서 사악한 과학자가 나의 뇌를 적출한 다음 상자에 넣고 정교한 기계에 연결해서 기계가 만든 가상의 현실을 전기신호로 전달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겠군요. 원래 신체를 통해 받고 있던 전기신호와 동일한 전기신호를 주고받는다면, 뇌는 비록 상자 안에 갇힌 신세가 되더라도 그 사실은 모른 채 신체와 오감을 가지고 현실을 살고 있다고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지금의 나는 태어난 후 수십년간 살아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게 다 만들어진 기억으로, 나는 지금 막 출시한 뇌이며 의식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출생 후부터 수십년치의 기억을 뇌에 일시에 주입하여 내가 원래 수십년간 살아온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놀러 간 테마파크의 추억,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친구들, 오늘 점심에 먹은 샐러드 따위가 원래는 없었고 모두 인조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그걸 다 뛰어넘어, 우리 자신이 사실은 인공적인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과 그 사회를 제한 없이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보죠. 정부나 민간 기업 등은 자신들의 정책이나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 전에 그 효과를 알기 위해 현실과 같은 가상의 인공 사회를 만들어 그 정책 또는 제품을 적용해보려고 할 것입니다. 그 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정책이나 성공적으로 판매되는 제품들에 대해서만 출시를 결정하겠죠. 그 사회는 현실에 대한 시뮬레이션이니만큼 지극히 현실과 같아야 하며, 그 사회 안의 각 개체들은 자신들이 정말 자연스러운 인간이라고 믿고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일 수도 있다는 게 일론 머스크의 생각인 거죠.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로 재직 중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경에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구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의식을 기계에 업로드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기계에 업로드된 나의 의식과 육체에 남아있는 의식은 서로를 보며 진짜 나는 누구인지, 내 현실은 진짜 현실인지 가상현실인지 따위를 고민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 정리는 그 전에 해두는 것이 좋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일론 머스크의 이야기는 궤변으로 치부하기엔 좀 무거운 주제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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