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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원 A Mar 19. 2017

IU × SEOTAIJI <소격동>

불빛이 모두 사라지는 밤에 만나

2014년 서태지의 노래 중 <소격동>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의 특이한 점이라면 서태지가 만든 곡이지만 아이유와 서태지가 각자 부른 버전이 있다는 것으로, 뮤직비디오까지 각각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나왔습니다. 아이유 버전은 디지털 싱글로, 서태지 버전은 서태지의 정규 9집 <Quiet Night>의 수록곡으로 발매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소격동>이 나온 2014년은 불안했던 안전 시스템의 부실과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없었던 정부에 대한 불만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특히 사회 분란이 가중될 때 정부가 보였던 모습들은 설마하던 독재 시대로의 회귀를 진지하게 걱정하기에 충분하게 만들었죠. 그 와중에도 우리가 수치상으로는 더 좋아지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하는 일련의 무리들과, 대체 뭐가 좋아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골이 깊어져 갔던 해였던 것 같네요.


서태지는 자기 노래에 메시지를 싣는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Come Back Home> 등 그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는 직설적으로 누군가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곡이 많습니다. <소격동>이 실린 서태지 9집의 타이틀곡 <Christmalo.win>에서는 권력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조롱이 있죠. 서태지는 이 곡에 대해 9집이 발매된 날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하여 '슬프면 울어야 하는 아이들을 권력과 공포로 제압하는 "산타"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곡을 썼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곡의 공개 후 세간에서 훨씬 화제가 되었던 것은 <소격동>이었습니다. 물론 주목도가 뛰어난 가수 아이유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것도 화제거리에 오른 이유였겠지만,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싣는 메시지가 <Christmalo.win>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고 비판적이었던 덕이 컸다는 생각이 드네요.


곡명부터가 <소격동>입니다. 소격동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부가 자리하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많은 대중들은 소격동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소격동 사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른바 '소격동 사건'은 전두환 정권이 대학생들을 정권에 길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끔찍한 탄압 중 하나였던 '학원녹화사업'으로, 정권 차원에서 남학생들은 강제로 군입대 후 나중에 사회운동을 하지 못할 만큼 심신이 피폐해지도록 혹사를 시키고 여학생들은 교도소에 수감하여 성고문 등의 학대를 자행했습니다.


<소격동>의 뮤직비디오는 4:3의 예전 TV 비율에 맞추어 현대자동차가 80년대에 광범위하게 공급했던 자동차 '포니' 택시에 주인공들이 타는 것을 보여주며 도입부를 시작합니다. 남자 주인공은 학생들을 통제하던 수단으로 활용되던 '교련'에 사용되는 교련복을 입고 독서실을 다니는 소년으로, 누군가에게 쫓기고 상처를 입은 또래의 소녀를 만나 그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사귐을 갖죠. 소녀는 어느날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모양으로 끈을 만들어 그 끝에 종이학을 달아 소년에게 전달하는데, 그 안에는 메시지가 적혀 있습니다.


'불빛이 모두 사라지는 밤에 만나'


하지만 그 후 소녀의 집은 흰색 헬멧을 쓴 남자들에게 습격당하고, 가족들이 물리적 린치를 당하는 듯한 묘사가 나옵니다. 등화관제를 틈타 약속장소에 나왔지만 사람 모양의 끈만 흩어져 있을 뿐 나타나지 않는 소녀를 기다리다 못한 소년은 결국 소녀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엉망이 되어 있는 집과 공중에 매달려 있는 무언가(소녀의 시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를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다 의미심장한 발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뮤직비디오는 마무리가 됩니다.


서태지는 <소격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쓴 것은 아니다'라며 의도성이 없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이 같이 듣던 라디오에서 '학원녹화사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점이나 전체적인 구성이 오늘날을 80년대에 빗대고 있는 점, 가사의 곳곳에서 독재정권 당시의 두려운 사회상이 떠오르는 점 등 의심이 가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소년을 사회에 비교적 순응하며 살아가는 '시민'으로, 소녀를 '민주주의'로 치환하고, 평범한 시민을 민주주의로 초대하는 은유라고 해석하면 얼추 많은 것들이 들어맞는다는 해석도 눈에 띕니다.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더이상의 추측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서태지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는 노래를 통해 리스너와 소통하고 싶어했던 가수인 만큼 다양한 해석을 할 꺼리를 노래 여기저기에 꽂아두었는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소격동>은 대중들에게 '손에 손을 잡고, 사라진 불빛을 다시 켜달라'고 호소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2014년 촉발된 정권과 시민사회의 갈등은 시민의 행동을 불러왔고, 그렇게 나온 시민들의 행동은 얼마 전 탄핵을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면서 결실을 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이 결국 광장에 나온 '불빛'이었음을 생각해볼 때 묘하게 의미가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드네요. 대장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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