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마음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
나도 모르게 마련된 마음의 자리에
당신의 시간은 시린 새벽이었으니
아침 햇볕이 땅을 녹일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을 만나
온기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하늘을 보는 당신의 슬픈 표정 덕분에
곧 아물겠지요
나약한 이가 겨워하던 상처도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
이 시는 회문시다. 회문시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시를 말한다. 이 시를 반대로 읽으면 이런 시가 된다.
속마음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나약한 이가 겨워하던 상처도
곧 아물겠지요
하늘을 보는 당신의 슬픈 표정 덕분에
온기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을 만나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침 햇볕이 땅을 녹일 때
당신의 시간은 시린 새벽이었으니
나도 모르게 마련된 마음의 자리에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
앞의 시는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당신'에게 자신을 떠나가 줄 것을 종용하는 내용이고, 뒤의 시는 '상처'에 겨워하는 '당신'이 나에게 머물러 '온기'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 나도 모르게 마련된 마음에 자리에" 처럼 긴 한 문장을 끊으면 반대로 읽어도 같은 뜻이 된다. 하지만 아래에서 위로 읽을 때 "나도 모르게 마련된 마음에 자리에"는 "당신의 시간은 시린 새벽이었으니"로부터도 문맥을 받아 넘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문장이 고도의 중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이제 그만 머무르시지요"라는 말이 그런 중의적 표현의 예이다. '이제 머무르던 일을 그만하라'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이제 하던 일을 그만하고 머무르라'라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위에서 아래로 읽으면 첫행은 전자의 뜻이 되고 아래에서 위로 읽으면 후자의 뜻이 된다.
이 시의 한 가운데에는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을 만나"가 있다.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을 만나서 온기의 소중함을 알았다고 하면 차가운 당신 때문에 온기가 그리워졌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을 만나서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면 '차가운 눈 같은 당신'은 행복의 원인이 된다. 차가워서 눈을 좋아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예로 든, 첫행과 끝행, 그리고 가운데 행을 뼈대로 잡고, 이 골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접한 세 문장이 상반되게 이어질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하며 오랜 시간동안 고쳐 썼다. 그렇게 매끄럽게 시상이 이어지고 있진 않지만 행의 배치와 같은 시적 기교를 고민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