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기 Oct 23. 2015

9. 시에 대하여

시에 대하여

시가 쓰고 싶다
삶의 진흙탕에 발이 젖었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으로
구름 위에 시를 적고 싶다

돌부리에 넘어져 살갗이 까진다면
피 흐르는 상처가 아닌
잘 아문 흉터를 보여줄 수 있기를
눈물자국이 아닌
발자국을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다

時間이 아닌 詩間을 살았으면 좋겠다
영감의 공간 속에서
당신의 의미로 호흡하고 싶다
나의 손 끝에 깃든 것이
욕망이 아닌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거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의 눈물을 무겁게 여길 만큼
나약한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강인함이기에
나는 대신 강인한 시를 쓰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그 시를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소리 내어 내 시를 읽을 때
비로소 나는 의미를 갖는다
실체를 얻은 내 손을
당신이 조용히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내면의 언어를 풀어내는 것이 시라면, 분명 시가 써지지 않아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 또한 시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담은 시는 히든카드 같은 것이어서 정말 벼랑 끝에 몰렸을 때가 돼서야 나올 법한 시여야 할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너무 빨리 소모해 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시'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 처음이라 쓰면서도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를 쓰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참에 그렇다면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가 하는, 나의 시 이상형을 그려 본다는 생각으로 쓴 시다.

먼저 지금 나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시는 쓰기 싫다. 아무리 참신한 표현으로 그 아픔을 우짖어봤자 '예쁘게 징징대는' 시가 될 뿐이다. 기분은 나아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상처가 시로 낫는 것은 아니기에, 나는 상처보단 흉터를 보여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時間이 아닌 詩間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시가 써지지 않는 답답함에 대한 토로다. 시적 영감으로 가득 찬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런 세상에선 시가 나와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나와 먼 것은 욕망하게 되지만 나와 가까운 것은 사랑하게 된다.

나는 거창한 시를 쓰고 싶지 않다. 내가 거창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매거진을 꾸리는 이유도 이 시들이 거창한 마음으로 쓴 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의 눈물도  무거워할 만큼 나약한 사람이어서 그 무게감을 시로 쓰고 싶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지만 그 무게감이 담긴 시는 강인한 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매거진을 꾸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시가 읽히길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올린 시들과 앞으로 올릴 시들은 이미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시들이다. 하지만 나는 내 시를 스스로 설명해주고 싶었고 인스타그램은 이런 설명글을 첨부하기에 제한 사항이 많은 플랫폼이었다. 그저 나를 표현하고 싶을 뿐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말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고 그것은 읽혀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따뜻해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8. 속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