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고 소비가 헤프다. 경제지식은 고등학생만도 못할 것이다. 예전에야 고정비에 약간의 저축을 하고 나면 쓸 돈이 별로 없다는 핑계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회초년생의 입장도 아니라서 내 경제관념과 습관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는 자각이 있다. 이제와서 경제학을 공부할 자신은 없으니 경제와 관련된 교양서적을 조금씩 읽고 싶었는데, 생일에 팀원 한 분이 Yes24 상품권을 선물로 주셔서 이 책과 『B주류경제학』을 샀다. 하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개요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선택했고 다른 하나는 업계별 현황을 회계사가 분석하며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주는 유튜브 영상을 평소 재밌게 보곤 했어서 그 내용을 엮은 책을 선택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5부작을 책으로 엮은 책으로, 자본주의가 태동하게 된 배경, 그 작동원리도 정확히 모른 채 구매하게 되는 금융상품의 비밀,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시장의 전략전술,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여러 철학들,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국가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했던 친구에게 이 책을 읽고 있음을 알리며 원본인 다큐멘터리를 추천했는데, 영상을 다 본 친구가 내용에 불만이 많다고 했지만 토론을 걸 깜냥이 안돼서 더 묻진 않았다.
“자본주의 세상의 현실에서는 절대로 물가가 내려갈 수 없다”는 선언을 서두에 하면서부터 흥미로웠다. 가격은 수요 공급의 법칙만으로 정해지지 않고 통화량의 증가함에 따라 화폐가치가 떨어짐으로써 상승하기도 한다는 점. 그리고 돈의 양은 끊임없이 많아져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게 현 금융자본주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은행이 있는데, 지급준비율에 따라 맡겨진 돈을 대출해 주며 없던 돈을 발생시키고, 중앙은행 마저도 이자율만으로 통화량을 조절할 수 없을 때 화폐를 새로 찍어내는 방식으로 통화량을 증가시킨다는 설명이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경기불황’이나 ‘경기침체’가 아닌 자본주의에 구조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문제라고 봐도 좋다. 우리는 미국 공공은행연구소 엘렌 브라운 대표의 말처럼 ‘민주적인 시스템이 아닌, 은행가를 위한, 은행가에 의한 민간은행 시스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왜 금융위기가 생겼고, 왜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왜 부동산 가격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지, 왜 젊은 사람들이 취직을 못 하는지 모든 것의 원인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찾을 수 있다. 갚아도 갚아도 없어지지 않는 빚, 우리는 결국 벗어날 수 없는 부채의 사슬에 묶여 있는 것이다. 77쪽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 출시하는 금융상품들이 고객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빅쇼트, 마진콜과 같은 영화를 보며 금융상품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나 같이 재테크나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알음알음 얻은 지식으로 직접 투자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업이 있어도 자산증식에 꾸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나 대신 내 자산을 관리해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대로 손해가 나더라도 금융회사는 내 손해에서도 본인들의 몫을 떼 갈 것이지만 다행히 아직 그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내 똑부러지는 친구들처럼 안목을 갖고 직접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개인이나 가계의 금융 의사결정은 개개인이 지닌 금융이해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이는 청소년기의 학교와 사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금융 교육의 깊이와 넓이에 비례하게 돼 있다. 이제 금융에 관한 지식과 활용 능력이 빈부 격차를 더 벌려놓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금융이해력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필수 능력이다. 169쪽
소비가 주는 쾌감에 일가견이 있다. 회사 스트레스가 극심하던 때 자다가 새벽에 눈을 뜨면 쿠팡을 켜서 무언가를 주문하고 잠에 들곤 했다. 키보드 수집에 빠져 수 백 만 원을 며칠 새 써버리곤 리볼빙을 신청하기도 했다. 작년엔 러닝에 빠져 러닝화, 기능성 의류를 사 모으느라 뉴발란스 VIP가 되었고 올해는 카메라에 빠져 1년 할부를 걸어놓은 상태다. 이쯤되면 절약할 자신이 없어 비혼을 결심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책에선 소비를 늘리는 대신 욕망을 줄이길 권한다. 욕망에 따라 소비를 늘리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조언이지만 확실히 쉽지 않다. 결혼한 친구가 배달음식을 한달에 한 번 시킬까 말까 한다는 말을 듣고 내가 외로워서 소비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쇼핑은 패배가 예정된 게임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싶다면, 소비에서 행복을 찾기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관찰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75쪽
말미에서 책은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낳는 부작용인 ‘양극화’에 대해 적절한 복지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적절한 복지는 안정감 속에서 국민의 창의성을 증진할 수 있고 이는 국가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금융자본의 탐욕이 현재의 위기를 만들었다면 그 해법은 윤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 대목은 회의적으로 읽었다.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이 인간의 욕망을 추동하여 돈이 필요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 로직에 윤리라는 함수를 사용할 여지가 있을까 싶다. 자본주의가 전제하는 인간상은 전혀 윤리적이지 않은데.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자본주의의 보완재는 법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법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이니까. 개인의 각성으로는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를 읽으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내가 왜 이렇게 욕망에 쉽게 지는지, 돈이 일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면 얼마나 도태되기 쉬운지를 대략적으로나마 배울 수 있었다. 입문서 수준의 이 책을 시작으로 좀 더 경제에 대해 지식을 쌓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