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생흔

강진아의 『오늘의 엄마』를 읽고

by 여온

사적인서점의 4월 처방책이었다. 가족에 대한 책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본방을 보진 않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에 폭삭 속았수다 쇼츠가 넘치던 때였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런 책을 요청드렸다. 가족을 테마로 하지만 “지금 울어야 해!” 강요하는 소설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폐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간병하고 떠나보내기까지의 시간을 그렸지만 예상보다 담담한 문체로 그 시간을 서술하는 탓에 감정을 강요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인공인 ‘정아’는 이미 연인을 사고로 떠나 보내고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불안정하게 생활하는 인물이다. 이런 현실적인 설정으로 인해 감정이 앞서지 않는 느낌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탁하지도 않은 위로를 잘도 건넸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문장은 점점 불어나 정아를 둘러쌌다. 아직 그 시간이라는 게 지나지 않은 것인지 정아는 영 괜찮지가 않다. 괜찮기는커녕 머릿속의 그는 점점 완벽해져서 함께했던 시간이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10쪽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찾아오니까, 준비가 되지 않은 당혹감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인에게도 있다. 당사자일수 있을까봐 어머니를 수령인으로 한 종신보험을 들어놓았고, 주변인일수도 있을까봐 치매 간병인 보험을 들어놨다. 사람이 죽기까지 조금씩, 꾸준히 무너지는 모습은 여러 소설, 영화로 간접 경험을 했다. 아버지를 보면서 그 과정에서 주변인에게 어떤 비참과 죄의식이 생길 수 있는지도 경험했다. 비참과 죄의식이란 준비한 적이 없으므로 모든 게 정상이었을 때의 페르소나를 버리진 못하면서 겪는 모든 부조화다. 주인공인 정아 역시도 엄마가 갑자기 투병생활을 하게 됐다해서 갑자기 엄마를 극진히 간병하는 효녀가 되지 못한다. 가족들이 본인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한껏 서운해하고, 본업에서 인정받는 자리에 오래 있으려 병원에 있는 언니의 전화를 받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본인을 위해 남자친구까지 자처하며 자기 대신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는 직장 선배에게도 날카로운 말을 뱉어버리는 정아를 보며 화가 나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되려나. 그 걱정 뿐이었다.


원래 정아는 상대방의 눈을 빤히 보는 편이라 너무 그렇게 보지 말라며 주의를 받은 적도 있는데 이상하게 엄마의 눈은 똑바로 보지 못한다. 이 사실도 최근에야 깨달았다. 죄라도 지었나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죄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그래서 엄마가 잠들었을 때 자주 이렇게 훔쳐본다. 덕분에 엄마의 잠든 얼굴만큼은 보지 않고도 또렷이 그려 낼 수 있다. 오늘은 특별히 웃는 얼굴을 만났으니 단단히 기억해 둬야겠다. 엄마는 도통 웃는 법이 없으니까. 85쪽


엄마가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음을 생각할 때마다 엄마에 대해 궁금해진다. 나를 낳기 전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이미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보다 많은 나이인데, 엄마의 10대, 20대, 30대는 어땠을까. 밥을 먹을 때나 나들이를 나가서 수다를 떨 때 종종 얘깃거리 중 하나로 질문을 하곤 한다. 지금 하는 일 말고 초년생으로서 엄마도 직장생활을 했는지, 아버지를 만나 서울에 오기 전 남매들관 어떻게 지냈는지, 그 중 엄마는 어떤 딸이었는지.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는 어떤 부모였는지. 물어보고 싶고, 이미 물어본 질문도 있지만 나중에 또 물어보고 싶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들내미가 내 인생을 궁금해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해주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안한 지는 오래됐지만 ‘아들이 나를 신경쓰고 사랑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다.


엄마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 당연해서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엄마의 꿈을 듣고서야 엄마가 자신에게 해 준 모든 것이 희생이었음을 깨닫는다. 정아는 언제나 엄마에게 요구하기만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키워 주고 먹여 주고 들어주고 챙겨 주는 사람이니까. 이토록 일방적이기만 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정아를 찌른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굳은살을 만들어 놓아서 새롭게 찌르는 부위가 그렇게 아프지는 않다. 저릿, 하고 아찔한 감각이 혈관을 타고 흐를 뿐이다. 이제야 깨닫게 된 관계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급작스럽게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몇 번씩이나 무디게 전율하다 보니, 겨울이 왔다. 253쪽


다시 말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찾아온다. 소설에서 정아는 정말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작별했다. 두 번의 이별을 겪은 정아는 언제, 어떻게 다시 사랑을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까 궁금해졌다. 연인이 필요하지 않게 된 사람은 언제 다시 연인이 필요해질까? 지금의 나에게 물어본다면 “꼭 필요해야 하는 거야?”라는 말밖에 가능하지 않지만,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아닌 것 같아 정아가 다시 연애를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곁을 누군가에게 내 주기 위해 지금 본인 곁을 차지한 것을 버릴 줄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정아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 정아의 곁에 생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행복해진 정아가 잊히진 않겠지만 강렬했던 상실의 기억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책을 덮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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