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회사에서 아끼던 후임 분이 퇴사를 하셨다. 본인의 적성을 찾는 시간을 갖고 싶다며 떠났는데, 5월 책처방 상담날 나와 잘 맞는 성향의 동료가 떠날 때 느끼는 헛헛함에 대해 말씀드리자 동료와의 인연을 버스 안 승객에 비유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회사의 동료라는 건 같은 버스를 탄 승객같은 관게이며 누군가와는 종점까지 갈 수 있지만 누군가는 몇 정거장을 함께한 뒤 얼마든지 하차할 수 있다는 것. 같은 선을 그리며 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여정에서 잠시 교점이 생긴 것일 뿐이라는 의미였다. 나 역시 버스의 운전자가 아닌 승객으로서 얼마든지 하차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동료가 하차하는 것을 너무 아쉬워할 필요 없고 그저 그의 여정을 응원하는 마음만이 가능하다는 조언으로 이해했다.
그러고 나서 받은 책이 정용준 작가의 『세계의 호수』였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여서 내가 느꼈던 헛헛함을 대변해주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대표님께서 처방해 주신 이유는 분명했다. 이별 후 시간이 지나 비로소 작별을 할 수 있게된 커플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인연과 작별하는 법을 연습해보라는 의미였다.
비주류 영화감독 한윤기는 빈 대학의 한국어과의 초청을 받아 오스트리아를 방문한다. 한국의 대중문화를 선망하기만 할 뿐인 한국어과 학생들과의 시간은 당황스럽기만 하고, 초청받은 오스트리아 한인 모임에선 예술을 허영심 충족의 수단으로만 삼는 사람들에게 질리기만 하다. 오스트리아에 온 윤기는 7년 전 자신을 떠난 연인 무주가 옆 나라인 스위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메일을 보내지만 바로 오지 않는 답장에 본인의 행동을 후회한다.
손으로 뺨을 두 대 때리고 초조하게 방을 어슬렁거리다 벽에 이마를 대고 호흡을 골랐다. 7년 동안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무주의 마지막 말이자 부탁이 그거였다. 절대 연락하지 마. 부탁이야. 그런데 세상에 무슨 치매도 아니고. 별의별 상황에서도 참고 감정이 세게 올라올 때도 넘겼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뭐? 생각이 났어?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해? 9쪽
그런데 얼마 뒤 무주에게 아직 장크트갈렌에 사니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답장을 받았고, 윤기는 공식일정을 뒤로 하고 통역을 도와줬던 민영에게 도움을 청한다. 민영은 무언가 결심한 듯한 윤기의 태도에 그 내막을 짐작했다는 듯 순순히 조력한다.
잠이 드는 순간 민영 씨가 로비에서 해준 말이 생각났다.
잘하셨어요. 여행지에서 뭔가를 결정하는 용기는 항상 옳아요. 하지만 그 용기는 한 번만 내세요. 그곳에선 뭔가를 결정하면 안 돼요. 그건 용기가 아니에요. 어리석은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멍하게 있는 내게 민영 씨는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행지의 사건을 삶으로 끌고 오지 마세요. 복잡해진답니다. 41쪽
장크트갈렌에서 만난 무주는 7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모습이었지만 유나라는 딸과 함께 있는 채였다. 목수인 무주의 남편이 뮌헨에 가 있는 며칠 동안, 윤기는 무주와 유나의 일상에 참여하며 전 연인이 해외에서 쌓은 고단한 서사의 단편들을 확인하는 한편 7년 전 묻어두었던 상처와 직면하며 과거와 진정으로 작별하는 시간을 체험한다. 작가는 책의 말미 작가의 말에서 이별과 작별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별이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139쪽
인상 깊은 해석에 감명 받아 내 말을 보태보고 싶었다. 이별은 서로 멀어지는 모양새 그 자체. 그 모습이 슬플 수 있다. 하지만 작별은 두 주체가 헤어짐의 선을 긋는 형태. 오히려 더 영이별을 암시하는 단어임에도 어쩐지 슬픔의 뉘앙스가 더 적다. 먹먹함을 자아내는,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반대로 서로가 어찌하여 만들어 낸 상태이니까. 이런 6월 책처방 상담에서 대표님께 이런 내 해석을 말씀드리니 대표님도 비슷한 해석을 했다고 하셨다. 작별에는 세리모니가 필요한 것 같다고. 우리가 상실을 겪을 때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은 영이별을 작별로 승화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의식이 그저 회한이기만 하다면 곤란하다. 후회는 과거로 돌아가면 같은 선택을 반복하지 않을 것임의 반증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언제나 ‘가능한 선택’만을 한다. 강요 받지 않은 다음에야 우리의 선택은 언제나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이별을 작별로 승화시키는 의식은 함께했던 우리의 시간이 얼마나 유의미했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 아닌 우리의 동행이 진정으로 종료되었음을 감각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윤기가 무주의 삶을 짧게나마 관찰하며 자신의 삶과 얼마나 멀어져 버렸는지를 느꼈던 것처럼.
괜찮아. 오래된 일이야. 넌 원래 네 마음대로 하잖아. 메일 보고 솔직히 놀랐어. 그런데 오후가 지나고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괜찮아지더라. 너답다고 생각했어. 넌 늘 너 하고 싶은 대로 했으니까. 빈에 왔겠지. 마침 내 생각이 났겠고 이참에 오랜만에 만나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겠지. 선 같은 거 없어. 감정이 선이야. 감정이 없다면 지킬 선도 없는 거지. 89쪽
제목인 ‘세계의 호수’는 장크트갈렌에 가려 한다는 윤기에게 민영이 가보라고 했던 여행지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사실 ‘세 개의 호수’였고. 나는 이것이 인연을 대하는 태도의 은유라고 느꼈다. 윤기는 ‘세계의 호수’로 들었다. 명소다운 근사한 이름으로서 더 적절했으니까. 하지만 세계의 호수는 존재하지 않으니 찾을 수 없었다. 세 개의 호수임을 뒤늦게 깨달으니 그곳에 갈 수 있었고, 한가하고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세계의 호수를 찾으려 하면 영영 찾지 못하고 오직 이별만 하게 될 것이다. 세 개의 호수를 찾을 때 비로소 평온의 시간과 작별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은유로 느껴졌다.
무주는 원피스를 벗고 까만 속바지와 가는 끈이 달린 민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스트레칭을 했다. 나는 무주의 왼쪽 등에 난 흉터를 봤다. 수도 없이 손가락으로 만졌던 부드럽고 맨질맨질한 무주의 살.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의 강한 햇살이 무주 위로 쏟아졌다. 무주는 빛에 젖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휘청휘청 걸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까지 쑥 집어넣고 한참 뒤 떠올라 아아아, 소리를 내며 배영을 했다. 그러고는 느리고 꾸준하게 호수 끝까지 헤엄쳐 갔다. 멀리 사라질 동물처럼. 자유롭게. 자유롭게.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