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는 신을 일이 없어 좋아하지 않지만 가죽 부츠를 좋아한다. 가죽 제품이라면 사용자의 세월을 함께 하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밑창을 교환하기에 좋다는 ‘굿이어웰트’ 제법으로 만든 레드윙 벡맨 부츠를 큰 맘 먹고 사기도 했다. 신발이 아니더라도 원래 가죽 제품을 좋아했다. 예전부터 가죽 공방 ‘헤비츠’에서 만든 카드 목걸이나 필통 같은 잡화부터 시작해 브리프 케이스나 바이커 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가죽이 주는 질감도 좋지만 주기적으로 에센스나 크림을 도포하는 의식(?)을 치르며 이것이 ‘내 물건’임을 실감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사적인서점의 11월 처방책으로 읽은 이 책은 서양의 동화인 ‘구두장이 요정’ 이야기에 모티프를 두고 있다. 인간의 몸을 얻어 인간 세상에서 홀로 살고 있는 구두의 정령 ‘안’에게 과거 헤어진 형제 ‘미아’가 찾아와 약혼남 ‘유진’의 구두의 제작을 의뢰한다. 안은 죽지 않는 몸으로 결국 혼자 남을 미아에 대한 안타까움에 쉬이 오랜만에 재회한 형제의 선택을 존중해 주지 못하지만 마지 못해 의뢰를 수락한다.
우리 같은 존재가 우리 이외의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못할 짓이 아닌가. 너는 정말로 그 사람과 가족이 되고 싶은가. 51p
안이 유진에게 갖는 감정을 질투라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유진이 안의 연적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그렇게 도망쳐왔던, ‘남은 자의 고독’을 유일할지 모를 형제에게 안겨다 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안과 미아의 관점에서 ‘하루살이’에 불과한 인간 때문에 운명공동체라 여겼던 형제가 예정된 상실과 고독을 향해 나아가는 상황을 안은 이해하지 못한다.
> 언젠가는 부서지게 마련이라면 처음부터 의미를 두지 않음으로써, 내구력을 가늠할 수 없는 이 삶과 타협하고 감정적 휴전을 맞이한다. 안이 보통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사람이 하루살이나 매미를 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5p
하지만 그것은 그런 미아마저 보내고 홀로 남을 자신을 헤아려 주지 않는 미아에 대한 밝힐 수 없는 야속함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기로 한 사람은 언제나 떠나기로 한 사람으로 인해 고독해지게 마련이다. 나는 필멸과 유한을 대하는 안의 입장이 인물이 ‘영원하지 않을 연애감정을 애초에 멀리 하고 싶다’ 생각해 온 나의 연애관과 닮았다고 느꼈다.
삶이나 사랑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어디까지나 그것과 충분한 거리를 둘 때 발생하는 것이었다. 92p
반면 대표님은 안이 구두장이라는 숙명으로부터 유일하게 도망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업을 태하는 태도’ 측면에서 본인을 이입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직면하기 두려워서 회피하고 싶은 영역, 평생의 업으로 여기는 영역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이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대표님과의 대화가 잠깐 샜는데, 과소비하는 행태를 점검하기 꺼려 하는 마음과, 우리의 전문성이 점점 AI에게 대체되는 시대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생존 전략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 소설에는 유한과 무한에 대한 사유가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자연 그 자체였던 존재가 인간의 몸을 입게 됐지만 늙지도 병들지도 않는다면 그 상태는 유한인가 무한인가. 그리고 그것은 신의 축복인가 징벌인가. 사실 이는 판타지 서사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라 그리 낯설지 않았다. 게다가 신의 피조물이 신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는 모티프는 아담과 하와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와 나를 구분하지 않던 안과 미아 및 그 형제들은 자신들이 도와준 어느 구두장이에게 옷과 구두를 선물받지만 그것은 세계와 나를 구분하고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선악과를 먹고 시선을 감각하게 된 아담과 하와처럼 옷을 입고 구두를 신은 정령들은 세계, 그리고 그와 구별되는 자신을 감각하고 결국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헤어지게 되었다.
몸이 곧 소리였고 그들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육이라는 형태를 갖추고 나서야, 소리란 몸의 일부가 아니고 한순간 몸에 닿을 뿐 머무르거나 고일 수 없으며 매질을 타고 팽창하다 부서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형태야말로 궁극의 빈곤이다. 156p
정말 한계는 형태가 생기는 순간 결정되는 것일까. 가능성 그 자체에 취하는 마음엔 다른 가능성들이 기회비용이 된다는 두려움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이 하나의 몸짓으로 태어날 때, 그 몸짓이 생각 만큼 아릅답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형’을 갖춘다는 것을 ‘완벽’해지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있다. 필멸자인 이상 영원히 사랑할 수 없으니 차라리 사랑을 하지 않겠다 생각한 안처럼. 필멸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말하는 안(그 이후를 견딜 수 있어?)과 필멸하기 때문에 유의미하다 말하는 미아(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고 말하는 미아 사이엔 가닿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안 역시 유진의 몸짓 가운데 피어난 미아와 같은 풍경을 보고 나서야 미아의 선택을 이해하게 된다. 필멸자의 몸짓은 완벽이 아닌 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몸짓 속에서 정령마저도 잃어버렸던 무한의 세계가 감각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누구도 신지 않을 것,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더는 쓸데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완성시키면 안 되나?” 141p
하지만 나는 부디 안이 본인의 삶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미아의 삶을 존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남기로 한 이의 삶, 상실로 인한 상대 고독이 아닌 절대 고독을 감당하기로 한 삶엔 일말의 아름다움이 없는가. 그저 안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을 뿐, 안의 삶이 오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안의 손짓을 오래 봐왔다면 그 손짓에 새로운 정령이 깃드는 풍경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기억하기로 그들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지은 구두였을 것이며, 안은 숙명이나 법칙과 무관하고 부나 명예나 아름다움에의 탐닉이 아닌, 다만 누군가의 미소와 누군가의 평화를 위해 구두를 지은 것이 그들의 시작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1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