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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Oct 23. 2015

2. 꽃



당신의 한숨에
민들레 꽃씨처럼 흩날리지 않겠다
나의 영혼이 한 줌의 먼지같이
당신의 날숨에 의해 
바스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나는 꽃이니 
당신의 들숨에 
나의 향기를 섞어 보낸다
그것으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 향기를 내기 위해
내가 어떤 것들을 감내해 왔는지

나의 씨앗은 이미 오래 전
이곳에 발아했으니
다가온 당신은 언제나 손님
그러니 내가 향기롭지 않거든
그냥 지나가주길 바란다
설령 나의 꽃잎이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 하여도

스스로는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신력에 몸이 있다면 내 정신력은 근육질이어서가 아니라 갑옷을 두르고 있어서 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충격에 겨워하긴 한다는 뜻이다. 이 시는 어느날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해서 마음을 다 잡는다는 의미로 쓴 시다. 쉽게 다친다는 의미로 유리, 쿠크다스 등의 단어들을 연상하다 민들레 꽃씨가 생각났다. 한숨 한 번에 모조리 날아가버리는. '당신의 한숨에 민들레 꽃씨처럼 흩날리지 않겠다'라는 문장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 일단 첫 두 행을 적어 놓은 다음에 시를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음악성을 고려하며 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의미있는 시인데, '바스라지기를 바라지 않는다'와 같은 표현의 경우 '날아가 버리기를'이라든지 '원하지 않는다'라든지 하며 몇 번이고 고쳐쓰다가 '바'로 반복되는 이 표현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보통 꽃이라 하면 어여쁜 존재의 비유로 사용되곤 했는데 내가 꽃이라면 어여뻐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향기를 머금은 존재, 그 향기를 풍기기 위해 많은 것을 감내해온 존재. 그게 내가 생각하는 꽃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 내가 감내해온 것들을 녹여내는 것.

나는 꽃으로서 꽃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중이니 나에게 다가온 '당신'은 그저 '손님'에 불과하다. 당신이 나를 가져야 할 당위는 없다. 내가 향기롭지 않다면 그저 지나가면 될 일. 하지만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건 꽃의 운명이다. 결국 나는 당신에게 '꽃'일 수밖에 없는 운명. 당신이 나를 만져주었음 하지만 당신을 향기롭게 할 수 없다면 나는 당신을 보낼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쓴 시지만 결국 백기투항의 고백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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