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 권영상 시.
평범 :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굉장히 평범하다면 평범하게 살아온 나. 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이 평범함이 한동안 너무 싫었다. 공부를 엄청 잘하는 것도, 얼굴이 엄청 예쁜 것도, 그렇다고 예체능 쪽으로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도 아닌 보통의 아이. 종종 잘한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주변의 시선을 끌 정도의 매력이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정도는 아닌 애매한 상태로 살다 보면 기대가 실망으로 곧잘 바뀌곤 했다. 그때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주목받는 누군가를 향한 열등감을 숨기기 바빴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뭐든 조금씩은 잘 따라 하던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생님'을 썼다. 그리고 덕분인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껏 나는 스무 해가 다 되도록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럼 내가 만난 아이들은 주로 어떤 장래희망을 썼을까. 장래희망의 변천사를 떠올려보니 그 시대의 요구와 흐름을 옅게나마 읽을 수 있을 것도 같다. 90년대에는 주로 대통령이나 판사 검사처럼 권력이 중심이 되는 직업이 주를 이뤘다면, 2000년대 초반부터는 디자이너나 화가 혹은 월드컵 4강의 영향으로 축구선수와 같은 운동선수 같은 예체능 직업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점점 강해지면서 최근엔 많은 아이들이 연예인 아니면 유튜버를 장래희망으로 꼽는다. 올해를 예측하자면 '요리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의대공화국이라는 말이 불릴 정도로 의사가 최고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요즘 현실과는 동떨어진 아이들의 장래희망을 보고 있자면 씁쓸한 마음이 밀려온다.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겠다던 아이들은 이미 중년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고, 자신이 쓴 장래희망을 실제로 이뤄냈더라도 오늘 하루를 또 힘들게 버티며 살고 있을 테니까.
어릴 땐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만만함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현실의 벽에 막히면서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요즘은 SNS가 발달하다 보니 잘 나가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서, 더 쉽게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더 자주 바닥을 치면서 다수를 향한 질투가 샘솟기에 딱 좋다. 비범함은 나와는 먼 세상의 이야기니까. 성공하려면 남들과는 달라야 하는데 이놈의 평범함은 늘 내 발목을 잡는다. 아주 작은 시도를 해보려다가도 실패를 마주하면 나부터 나에게 '안될 줄 알았어.'라고 손가락질한다. 내가 꾸던 꿈을 이미 이룬 사람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다고 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 상태가 더 비참해질 뿐이다.
이런 마음이 들 때 나는 동시를 읽는다.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꺼내어 보는 시간이다. 햇볕에 말라가는 지렁이와 발에 차이며 굴러다니는 돌멩이, 쓰고 버려지는 비닐과 시멘트 틈 사이에서 피어난 민들레를 세심히 보는 시인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여태껏 맘에 들지 않던 나도 사랑하게 된다.
동시를 맘껏 읽을 수 있는 웹진이 생겨서 반갑다. 누구나 들어와서 마음껏 읽고 즐기면 된다. 《땅감나무》 창간호에 실린 53편의 동시들 중 나의 시선을 붙잡은 건 권영상 시인의 〈보통〉이다. 얼굴도 보통, 공부도 보통, 운동도 보통인 '나'를 통해 나를 들여본다. 앞서 가는 사람과 뒤처지는 사람의 기준이 되는 평범한 나. 그런 내가 그 둘을 향해 박수를 쳐줄 수도, 손을 내밀어줄 수도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결국 이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로 인해 잘 굴러가는 것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인 나는, 평범한 내가 참 좋다.
수록된 동시를 읽을 수 있는 곳
https://blog.naver.com/dongsi_webzine/224156950572
동시 웹진 《땅감나무》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