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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오로라 Jun 26. 2024

걱정하는 네 모습도 예뻐

《예쁘다고 말해 줘》 이상교 시. 허구 그림. 문학동네. 2014.


걱정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603호 할아버지

학원 가는 길에

또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아침에 한 인사를

또 했다

조금 무안하고 멋쩍었다


저녁에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또 인사해야 하나,

참말이지 걱정된다


19쪽.



 학교에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은 날, 이상교 시인의 《예쁘다고 말해 줘》를 꺼내 읽어봅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무엇하나 쉽게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치〈걱정〉에 나온 아이의 마음처럼요. 아주 단순한 일에서도 우린 선택의 순간을 늘 마주합니다. '결정장애'라는 말처럼 나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용기내어 할아버지에게 또 인사를 해도 과연 할아버지가 "오냐."하고 받아주실런지... 이런 무안하고 쩍은 상황을 아이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내가 과연 이 아이의 입장이라면 인사할 수 있을까요?  

 우리반 아이 셋에게 동시를 읽어주고 너네는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봤더니 둘은 인사하고 하나는 인사를 안할거래요. 인사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인사는 해야하니까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저에게 "선생님, 해야할 일은 고민말고 그냥 하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럼, 선생님은 요즘 어떤 걱정을 갖고 있으세요?




털가죽 옷


전철에서 잿빛 토끼 아줌마와

나란히 앉았다

아줌마는 긴 두 귀를 자꾸 쫑긋거렸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길을 가다가

노란 털 여우 아줌마와 마주쳤다

입이 뾰족, 눈이 쪽 올라가 있었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신호등 앞에서

검은 물소 아저씨를 보았다

초록불이 켜지자

북북거리며 건너갔다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45쪽.



 동시 속 화자는 걱정 가득한  명의 어른을 만납니다. 잿빛 토끼 아줌마, 노란 털 여우 아줌마, 검은 물소 아저씨. 모습이 상상되나요? 화자는 털가죽 옷을 입은 세 인물을 통해 일상의 장소를 정글로 바라봅니다. 사냥꾼이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의 공간으로요. 아이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은 사냥꾼 때문에 걱정하는 어른들이 어떻게 비춰질까요?  전철을 타고, 길을 건너고, 신호등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초초한 표정으로 다니는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두 귀를 자꾸 쫑긋거"리며 주변의 시선과 평가에 촛점을 맞추고, "입이 뾰족, 눈이 올라"간 모습을 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삐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죠.

 하지만 검은 물소 아저씨가 "북북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냥꾼" 은 자신에게 너무나도 두려운 대상이기 때문이겠죠. 그럼 교사인 우리에게 "사냥꾼"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학부모의 악성 민원, 학교 폭력 상황에 늘 노출되어 있는 교실, 아동학대죄로 고소 고발 당할 수 있는 현실이지 않을까요? 교육자로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고민할 기회마저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절망스러울 때도 있으니까요. "사냥꾼이 나타날까 걱정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까봐 걱정됩니다. 정말 걱정은 걱정을 낳나봅니다.


  


참견하지 마


어쩌다 담장 위에는

올라간 건지

앙금당금

담장 위의 새끼 고양이


담장 아래 어미 고양이

애가 탄다

자칫하다가는

떨어져 다칠지 모른다


"내가 대신 내려놔 줄까?"

묻는 나를 어미 고양이가

흘깃 흘겨본다


"남 참견 말고 갈 길이나

어서 가시지!"


어미 고양이 말이

꼭 맞는다


56쪽.




 며칠 전 이 동시를 필사하고 곰곰이 생각했어요.

 교사가 가진 힘은 얼마나 될까요? 크고 작은 것을 수치화할 순 없지만 점점 교사의 힘이 작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힘은 교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질 때,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믿고 지지해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엔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제 일인 것처럼 나서서 해결하곤 했어요. 학부모님께도 진심을 다해 아이를 위해 조언을 하고 도움을 드리기도 했고요. 그렇게 한다고 더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인데요. (월급도요!) 아이가 바르게 자라고 성장하는 모습만으로도 너무나 보람되고 뿌듯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말하고도 부끄러운 건 제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러하였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한 선생님께서 찾아와 저에게 고민을 토로하셨어요. "반 친구가 괴롭히면 하지 말라는 의사 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 지도해주세요."라고 말하니 학부모께서 "저희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마세요. 저희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니까요.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 아이가 우리 아이와 무조건 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요. 제가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이런 비슷한 상황들이 지금도, 여전히,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 생각들기에 더 걱정과 고민만 깊어집니다. 우리에겐 아이들을 통제하고 억압할 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교사로서 저의 소망은 제가 맡은 반을 1년 동안 꾸려나가면서 아이 하나 하나가 함께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것이에요. '누가 더 많이 배우고 똑똑해지는지'가 아니라 배움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지식을 채워주고,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요. "강아지 쫄쫄이 한테도/ 밥을" 주고 "새한테도/ 배춧잎 한 장 넣어 주"는 넉넉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난다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걱정은 그만 내려놓고 제가 해야할 일을 하려고요. "이제는 됐다! 다 함께 배부르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그렇게 해야지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선생님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선생님,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우린 모두 예쁘니까요!




다 함께


학교에서 돌아와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우고,

배부르다!


물기가 바짝 마른 화분에도

돌아가며 물을 준다

목말랐던 꽃나무들이

흠씬 물을 들이켠다


또 없을까?

그래, 강아지 쫄쫄이한테도

밥을 줘야지

새장 안 새한테도

배춧잎 한 장을 넣어 주고,


이제는 됐다

다 함께 배부르다!

마음이 놓인다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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