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출, 우리의 일출
경주가 고향인 나는, 어린 시절 토함산에 올라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기다려본 적이 있다. 불국사 쪽에 큰댁이 있었기에, 한 번은 새해를 보내기 위해 모인 사촌들과 캄캄한 산길을 올랐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다에 뜬 해가 엄청 멋있을 거라고 그 해를 보면 무슨 소원을 빌 거냐고 물었던 어른들의 말이 기억난다. 추위에 덜덜 떨며 기다렸지만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한 해를 뒤로 하고 또 한참이나 산길을 내려오면서 다시는 오지 말자는 엄마(혹은 아빠)의 말도.
시간이 한참 지나 대학 시절, 고향 친구 한 명과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12월 31일 해운대행 기차를 탔다. 누가 먼저 가자고 했는지, 어떻게 갈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웠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홈플러스에서 신학기 가방을 파는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우리 둘은 연말을 대형마트에서 보내고 있었는데, 이대로 새해를 맞이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그러나 너무나 순진했던 21살 두 여대생은 담배연기가 가득한 PC방과 통로까지 사람들로 꽉 찬 맥도날드의 어느 한 곳이라도 비집고 앉을 용기도, 깡도, 돈도 부족했다. 밤이 이렇게 길 줄 몰랐다고, 이렇게 날이 추울 줄 몰랐다고, 둘이서 이 비슷한 말만 계속 주고받으며 밖에서 밤새 덜덜 떨었다. 해는 구름을 지나 늦게 나타났고 그걸 보자마자 사진을 찍고는 바로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앞으로 절대 새해 해돋이를 볼 일을 없을 거라고 씩씩대면서.
그로부터 한두 달뒤, 수동 카메라로 찍은 필름을 인화하고 나서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날 그곳에 있었기에 찍을 수 있었던 새해의 풍경과 떠오르는 태양, 추위로 얼굴이 발개진 친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결코 손쉽게 얻을 수 없는 그럼에도 끝까지 기대를 놓을 수 없는 순간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만약 그 긴 기다림 끝에 해를 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일출에 대한 어떤 기대나 희망 하나 없이 지금껏 살아오지 않았을까.
우리의 여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루틴 중 하나가 일출 보기가 된 건, 꼭 나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이후 여행 중 마주한 일출의 순간들로부터 조금씩 강화된 결과에 가깝다. 물론 어린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일출을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을 가면 남편은 아이의 컨디션을 최우선으로 살폈고, 아이가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늘 먼저였다. (그 덕에 여행 중 아이가 아파서 여행이 힘들었던 적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여행지에서 만날 일출의 순간을 늘 기다렸나 보다. 눈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해가 제대로 뜰지 안뜰지도 모르면서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살폈으니까. 이후 베트남 다낭에서 처음으로 남편과 아들을 숙소에 두고 혼자 아침 산책을 나섰다. 거기서 한강-서울의 한강과 이름이 같다-의 일출을 배경으로 아침 운동을 하는 현지인들을 보았다. 그 순간 그들에게 인사를 건넬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구름에 가려졌음에도 주황빛으로 달아오르는 하늘을 보며 한참 멍하니 서 있었다.
아들이 커가면서 가족이 함께 일출을 볼 시도를 조금씩 했고, 아들은 어느새 일출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수고로움을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마침내 아들의 4학년 여름 방학. 제주 성산일출봉에서 우리 가족 모두 잊지 못할 일출의 순간을 맞이했다. 아들의 소망이 이뤄진 그날의 일출을 보며, 앞으로 이것보다 더 멋지고 더 완벽한 일출을 볼 수도.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스본 날씨 요정은, 우리에게 최고의 일출과 생각 못할 이벤트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