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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20. 2016

원서 접수

미국 대학원은 보통 12월에 원서 접수를 마감한다. 이에 맞춰 지원자들은 대개 9월부터 지원할 학교들에 대한 검색을 시작하여 10월까지는 어느 정도 본인이 지원할 학교들의 목록을 결정하게 된다.


내가 만약 10년만 더 젊었더라면, 학점이 더 좋았더라면, 그리고 영어 점수가 더 훌륭했더라면, 아마도 큰 고민 없이 소위 말하는 랭킹 순으로 쭉 지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낮은 학점, 그리고 그리 특별하지 않은 영어 점수를 가지고 있었다. 조금은 서글픈 이야기지만, 냉정하게 바라본 나 자신은 탑스쿨은커녕 모든 학교에서 불합격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스펙 쪽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탑스쿨 말고도 괜찮은 학교들이 많이 있으며, 내가 가진 약점들을 커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강점들을 잘 어필한다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사람이기에 이왕이면 좀 더 랭킹이 높은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그러나, 설령 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내 실력에 비해 과분한 학교에서 어드미션을 받는다고 해도, 나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지원 학교 리스트의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다변화시켜서, 주요 타깃은 (U.S.News 기준으로) 30~50위권의 학교들로 잡고, 30위권 내의 학교들은 내 관심분야와 겹치면서도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우호적인 곳들을 추가하기로 했다.


지원 학교 목록을 최종적으로 정하기 전에 내가 했던 일은 각 학교에 현재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에게 한 명, 한 명씩 이메일로 컨택을 해서, 내가 궁금한 정보들을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학과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게시된 정보들은 현실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기 마련이어서, 실제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로부터 듣는 생생한 이야기들이 가장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재학생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장 비율은 100%였다. 아무런 관련 없는 낯선 사람이 보낸 메일에, 다들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모습들에서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는 각 학교의 펀딩 상황, 퀄 시험 탈락률,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분야, 학과 분위기 등에 대한 아주 귀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이런 정보들이 최종 지원학교들을 정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프로세스를 거쳐 약 25개의 학교들로 구성된 리스트를 10월 말에 최종적으로 확정하였다. 추천서는 직장 상사 한분, 석사 지도교수님 두 분, 그리고 미국 정부 연구기관에 계신 미국인 박사님 두 분, 이렇게 총 다섯 분께 적절하게 숫자를 배분해서 부탁드렸다. 참고로, 다섯 분 모두 내가 지원하는 전공 관련 박사 학위를 가지신 분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다들 탑스쿨 출신이었다.


아무래도 이분들 시각에서 보면 내가 지원하는 학교들의 랭킹이 좀 낮게 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 그래서인지 미국인 박사님 한분께서는 당신의 모교(학부, 대학원) 두 곳에 지원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다. 그분께 이실직고 '제가 박사님이 나오신 그 학교들에 합격할 수 있는 확률은 0%입니다'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 전혀 지원할 생각이 없었던 탑 10 학교들 몇 곳이 이런 식으로 반강제적(?)으로 최종 지원학교 목록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쨌든, 여러 분들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12월 말까지 지원하려는 모든 학교들에 원서 접수, 서류 발송, 추천서 제출까지 무사히 다 끝마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겸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보통 합격/불합격 통지는 이르면 2월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3월에 본격적으로 쏟아지는데 원서 접수 후부터 그때까지는 조금 마음을 비우고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 숨 돌리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1월의 어느 날, 내가 지원했던 학교 한 곳으로부터 이메일 한통이 도착하였다.


긴장된 마음으로 메일을 열어보니,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Thank you for applying for our Ph.D. program. You have a very impressive background. I’d like to arrange a Skype call with you to discuss your interest in our program.
(우리 프로그램에 지원해줘서 고마워. 근데 말이야, 너랑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좀 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나의 생애 첫 화상 인터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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