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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4. 2017

첫 일주일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의 첫 일주일은 세 가지의 키워드로 요약될 수 있다.


1. 청소

2. 가구 조립

3. 동네 탐색


하나씩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1. 청소

진공청소기 및 기타 청소 도구들을 구입한 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청소 작업에 들어갔다. 미국의 아파트들은 기존 입주자가 나갈 때 오피스에 청소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만약 청소가 잘 안된 부분이 있으면 처음에 납부한 디파짓(deposit)에서 청소비용을 제하게 된다. 그런 청소 검사 덕분에, 처음 이사할 집에 들어가 보면 크게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미국은 집안에서도 보통 신발을 신기 때문에 바닥과 카펫에 쌓여있었던 먼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만약에 한국에서처럼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고 생활하고자 한다면, 그동안 바닥에 쌓인 먼지들을 정말 꼼꼼하게 청소해야만 한다.


우리도 바닥 먼지 제거에 중점을 두고 청소를 시작했다. 눈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거실 바닥은 물걸레로 아무리 닦아도 까만 때가 조금씩 묻어 나왔다. 그렇다면, 방에 깔려 있는 카펫에는 또 얼마나 많은 먼지들이 곳곳에 숨어있을는지. 토쥬군이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게 하려면, 그저 반복해서 청소기를 돌리고, 또 물걸레로 열심히 바닥을 닦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가구를 조립하고 설치하기 위해서는 그전에 먼저 바닥이 깨끗해야 했기 때문에, 아파트에 입주한 다음날은 하루 종일 청소만 했었다. 나중에는 거실 바닥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위에서 신나게 기어 다니는 토쥬군을 보니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2. 가구 조립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미국에 도착한 첫 일주일에는 가구 조립만 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입주한 아파트에는 냉장고와 싱크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가구들은 이케아에서 미리 주문을 했었다. 이케아 가구를 조립해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이게 하나 정도는 마치 장난감을 만들듯이 재미있게 조립할 수 있다. 그런데 조립해야 할 가구들의 박스가 옆에 가득 쌓여있다면, 그때부터는 가구 조립이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노동이 되어 버린다(하나를 끝내면, 다음 하나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한국에서 전동 드라이버를 가져온 덕분에 적어도 나사를 조인다고 힘을 쓰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가구 하나를 조립하고 쉬고, 또 다음 가구를 조립하고 쉬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몸은 힘들었지만 조금씩 집이 집다워지기 시작했다. 식탁을 조립한 다음에는 더 이상 바닥에 박스를 깔고 그 위에서 밥을 먹는 일이 없어졌고, 소파를 조립한 다음에는 잠깐이나마 앉아서 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컴퓨터 메인보드와 하드디스크를 새로 주문한 데스크톱 케이스에 설치하고, 인터넷까지 연결하고 나니 드디어 외부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가구들을 다 설치하고 나서도 군데군데 빈 공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거실에는 장식장이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오디오를 한동안 바닥에 놓고 생활했으며, 스탠드 조명도 없어서 밤만 되면 본의 아니게 집안 전체가 어두컴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한국에서처럼 거실 바닥에 컬러 매트를 깔아놓지 않아서, 토쥬군이 종종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서 우는 일도 벌어지고 말았다.

 

휑한 거실에서 한창 (스쿼트 자세로) 홀로서기를 연습 중인 토쥬군의 모습


결국, 우리는 이케아에서 2차로 가구들을 주문했고, 또 한 동안은 그 가구들을 조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캐리어 3개가 전부였던 집이 조금씩 그럴듯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3. 동네 탐색

청소와 가구 조립을 어느 정도 끝내고 나니, 비로소 '바깥세상'에도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선선한 저녁 무렵이 되면 세 식구가 다 같이 외출을 했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다른 한국인 가족들과 얼굴을 트고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미국에 도착한 며칠 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토쥬군


한편,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빌렸던 렌터카는 3일 뒤에 다시 반납을 했기 때문에, 첫 일주일 동안 우리의 유일한 이동수단은 도보 뿐이었다. 그런데 걷기 만큼 어떤 낯선 공간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두 발로 걸음을 내딛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그곳의 공기와 온도, 냄새 등을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통해 간접적인 소통을 할 수도 있고, 풍경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느긋하게 관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점이라면 아주 멀리까지는 갈 수 없다는 것과 우리처럼 아이를 안은 채로 오래 걸을 경우 몸이 힘들어진다는 것). 아무튼, 우리는 첫 일주일 동안 부지런히 동네의 이곳저곳을 탐색했다.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동네 지도 위에 우리의 발자국들을 늘려갔다.


동네 산책을 하면서 기념사진도 한장. (맨발로 아기띠에 안겨있는 토쥬군이 포인트!)


미국으로 오기 직전에, 이곳에서 공부를 끝낸 뒤 막 귀국한 선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아직도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정말 살기 좋은 곳이에요.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곳이거든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즐길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토마스 씨도 분명 그곳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실제로 이 공간을 걸어보니, 그 선배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였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동네 뒤쪽으로는 병풍처럼 멋진 산이 서있고, 도시 전체를 예쁜 개울이 관통하고 있으며, 그 개울 옆으로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항상 마주치게 되는 곳. 그리고 멀리 갈 필요 없이 집 앞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살 수 있는 곳. 월마트가 동네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면서, 대신 홀푸드마켓과 로컬 유기농 마켓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 선배의 말처럼, 불과 일주일 만에 나는 이 동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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