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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21. 2017

은행 계좌 만들기

미국에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난 수요일 아침, 알람 소리가 울리자마자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시차 적응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탓에, 머리는 여전히 몽롱했지만 서둘러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옷도 깔끔하게 차려 입고, 필요한 서류들을 가방에 챙긴 뒤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바로 은행이었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가족과 지인들이 달러로 현금을 챙겨주셨지만, 초기에는 여기저기 돈 나갈 데가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현금 대신 한국에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했는데 물건값을 결제할 때마다 추가적으로 수수료가 붙는 것도 문제였다. 요컨대, 하루빨리 미국 은행에 계좌를 개설해서 한국에 있는 내 은행 계좌로부터 돈을 송금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집 앞에 미국의 메이저 은행 가운데 하나인 체이스(Chase) 은행의 지점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 꽃단장을 하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지금까지 미국에 여행이나 출장 목적으로만 왔던 나로서는, 미국 은행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미국 은행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또 어떻게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던 상태였다. 그저 빨리 한국으로부터 돈을 송금받아야 한다는 일념 하에, 무작정 은행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물론, 계좌를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서류들 - 예를 들면, 여권, I-20(입학 증명서), 아파트 렌트 계약서, 합격증명서 등 - 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호기롭게 체이스 은행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한국의 은행들과는 전혀 다른 내부 모습이 나를 살짝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은행들처럼 문쪽을 향해 오픈되어 있는 여러 개의 창구들과 번호표 뽑는 기계, 그리고 창구 앞의 의자에서 잡지를 보며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고객들의 모습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단,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느낀 것은 너무 조용하다는 것이다. 창구가 어디있나 두리번거리는 내게 어디선가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분이 내게 다가온다.


직원분: 어떤 일로 오셨죠?
나: 통.. 통장 만들러 왔는데요.
직원분: (미소를 띠며) 잠시 여기 소파에서 기다리시면, 저희 직원이 와서 도와드릴 거예요. 혹시 커피 마시겠어요?
나: 아.. 아뇨. 마시고 와서 괜찮아요. (사실 거짓말이었다. 실제로는 안 마셨지만, 그냥 부담스러워서 마셨다고 했다) 고맙습니다.


내가 갔던 체이스 은행의 로비도 대략 이런 모습이었다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잠깐 내부를 둘러보니, 저기 구석에 한국에서 흔히 보던 창구가 있긴 한데 아주 간단한 업무만 취급하는지 보타이를 멘 잘생긴 남자 직원 한 명만이 (심심한 듯한 표정으로) 창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외의 공간은 마치 우리나라의 일반 사무실처럼 칸막이가 쳐져 있는 데스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윽고, 인도계로 보이는 여성분이 내게로 오시더니,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며, 본인의 책상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칸막이로 둘러싸인 그분의 자리에는 책상과 컴퓨터가 있었고, 나는 그분 맞은편에 앉았다.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 책상이 그렇듯, 이 직원분의 책상 위에도 예쁜 딸 사진이 들어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의 창문 밖으로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실내 공기는 쾌적했다.


직원분: 안녕, 계좌 개설하고 싶다고 했다며? 내가 도와줄게. 커피 한잔 줄까?
토마스 씨: 고마워, 커피는 마시고 와서 괜찮고. 내가 사실 계좌 만드는 거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거든. 어떻게 만드는지 좀 가르쳐줄래?
직원분: 그럼, 당연하지. 근데, 무슨 계좌 만들 거야? 체킹(checking)? 세이빙(saving)? 아니면 둘 다?
토마스 씨: 저기 말야. 미안한데, 체킹이랑 세이빙은 뭐가 다른 거지?


미국 은행에서는 칸막이로 구분된 직원의 자리로 가서 1대1로 상담을 하며 계좌를 만든다

 

체킹 어카운트와 세이빙 어카운트라니? 처음 들어본 용어에 살짝 당황한 내 모습을 보고는, 그 직원분은 커다란 브로셔를 꺼내서, 체이스의 계좌 상품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요약해보면,

1. 체킹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계좌를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체킹 계좌를 통해 월급을 지급받는데, 매달 등록된 체킹 계좌로 정기적으로 월급이 입금되는 것을 디렉트 디파짓(direct deposit)이라고 부른다. 한국과의 차이점이라면, 일단 체킹 계좌를 열면 계좌에 연결된 개인용 수표(check)와 데빗카드(debit card, 우리나라의 직불카드와 유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금 대신 개인용 수표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체킹 어카운트는 최저 잔고 액수를 정해 놓고 있다. 매달의 평균 잔액이 기준액 밑으로 떨어지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금액이 만만치가 않다.


체킹 어카운트와 연결된 개인용 수표는 손으로 직접 받는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기재한다


2. 반면, 세이빙 계좌는 일종의 저축성 예금이라 할 수 있는데, 체킹 어카운트와는 달리 소정의 이자를 지급한다. 대신, 입/출금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돈을 인출하기 위해서는 세이빙에 들어있는 돈을 다시 체킹으로 옮겨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평소에는 돈을 세이빙에다가 넣어두었다가,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체킹으로 돈으로 옮기곤 한다. 특히, 체킹 어카운트는 수표 사고 등으로 인해 돈이 불법적으로 인출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체킹에는 보통 큰돈을 넣어두지 않는다.


설명을 듣고 나서, 나는 체킹과 세이빙 어카운트를 둘 다 만들기로 했다. 그 직원분은 내가 미리 준비해 간 서류들 가운데서는 여권과 I-20(입학 증명서), 그리고 아파트 렌트 계약서만 따로 복사를 했는데, 이를 통해 미국에서는 현재 해당 주소지에 살고 있다는 증명을 굉장히 꼼꼼하게 따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 서류들을 작성하면서 그 직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앞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본인의 명함에 개인 이메일 주소를 따로 도장으로 찍어서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체킹 어카운트의 번호는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친절한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계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흘렀다. 단 몇 분 만에 통장이 개설되는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는데, 한 가지 또 재미있었던 것은 실제 종이로 된 통장은 주지 않더라는 것.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금융 거래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하다 보니, 종이 통장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가끔씩 '통장 정리'를 해줘야 해서 무척 귀찮았었다. 반면, 미국은 처음부터 종이 통장 없이 모든 거래가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계좌를 개설하면, 종이 통장 대신에 두꺼운 서류 뭉치들이 들어있는 이런 파일을 받게 된다


아무튼 이제 은행 계좌를 만들었으니, 드디어 차를 사러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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