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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Feb 04. 2017

차를 사러 가다 (하)

처음 탔을 때만 해도 제법 있었던 승객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어느덧 버스에는 나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창밖 풍경도 건물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대신 휑한 벌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계속 달리고 있는데,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당시 내 스마트폰은 셀룰러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서 미리 내가 내려할 정류장 이름만을 메모해와서, 버스 앞쪽에 붙어있는 모니터에 그 정류장 이름이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정류장 이름은 보이지 않고, 창밖 풍경은 점점 시골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봐야 하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마침내 내가 내려할 정류장 이름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버스는 황량한 정류장에 나를 홀연히 내려놓고 다시 제 갈길을 갔다. 내가 내린 곳은 자동차 딜러샵들이 모여있는 타운인 듯, 길 건너편에 여러 가지 자동차 브랜드들의 간판들이 보였다. 그 가운데에서 스바루의 커다란 엠블렘을 얼른 확인하고는, 나는 길을 건너서 그곳으로 걸어갔다.



딜러샵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구 옆에 있는 리셉션 데스크에서 여성 두 분이 한창 수다를 떨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리셉셔니스트: 무슨 일로 오셨죠?
토마스 씨: 차 사려고요.
리셉셔니스트: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시면, 저희 딜러 가운데 한 분이 오셔서 도와줄 거예요.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분이 내게로 오더니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한다.


딜러 할아버지: 안녕, 차 보러 왔다며? 뭐 특별히 찾는 모델이라도 있어?
토마스 씨: 네. A라는 모델에 관심이 있어요.
딜러 할아버지: 오케이. 혹시 A모델 타본 적 있어?
토마스 씨: 아뇨. 없는데요.
딜러 할아버지: 잠깐만 기다려봐.
(어딘가로 가더니, 열쇠를 들고 다시 돌아온다)
딜러 할아버지: 저기 주차장에 A모델이 세워져 있거든. (열쇠를 주며) 여기 스위치 누르면, 자동차에서 소리 나면서 불이 반짝 거릴테니까, 그 차에 타면 돼. 부담 갖지 말고, 실컷 타보고 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누자마자, 딜러 할아버지는 바로 내게 시승용 차의 열쇠를 넘겨줬다. 신분증을 맡겨 놓는다거나, 내 연락처를 기재하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열쇠를 주며, 마음껏 타보고 오라는 말만 했다. 딜러 할아버지의 얼굴 표정에서 혹시라도 저 사람이 시승용 차를 가지고 도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정말 부담 없이 내가 사려고 했던 A모델을 시승해볼 수 있었다.


차는 내 마음에 꼭 들었다. SUV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예전에 내가 몰았던 차에 비해서 큰 위화감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차체가 높다 보니, 시야가 훤히 트여서 운전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승차감도 좋았고, 지금 당장은 안 느껴지지만 눈길에서 힘을 발휘해줄 상시사륜구동(AWD)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시승을 통해, 나는 A모델로 확실하게 결정했다.


시승을 끝내고 다시 딜러샵으로 돌아와, 딜러 할아버지의 자리로 안내받은 토마스 씨.


딜러 할아버지: 어땠어?
토마스 씨: 완전 마음에 들었어요. A모델로 결정했어요.
딜러 할아버지: 오케이. 혹시 원하는 색상이나 옵션 같은 거 있어? 가만있자. 여기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차량들 상세 정보가 있거든. 이 가운데, 네 선호랑 맞는 차가 있는지 같이 비교해보자.


할아버지는 파일철을 꺼내시더니, 여기 딜러샵에서 보유 중인 A모델 차량들의 스펙을 한 장 한 장 보여주셨다. 이를 통해, 나는 최종적으로 색상과 세부 모델을 결정했는데, 마침 내 선호에 딱 맞는 재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일이 척척 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윽고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갑자기 나타났다.


딜러 할아버지: 근데, 너 자동차 보험은 가지고 있니?
토마스 씨: 보험이요? 자동차 사려면 보험이 필요한가요?


내가 한국에서 몰았던 차는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보니, 나는 지금까지 새 차를 사는 프로세스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차를 사려면 자동차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 씨: (실망한 표정으로) 자동차 보험이 없는데 어떡하죠?
딜러 할아버지: 괜찮아. 지금 가입하면 되지. 혹시 개인적으로 아는 보험설계사나 보험회사 있어?
토마스 씨: 사실 제가 미국에 온 지 아직 열흘도 안돼서, 보험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혹시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사람 소개시켜주면 안 되나요?
딜러 할아버지: (명합첨을 뒤지더니 명함을 하나 찾아냈다) 그럼, 여기 한번 전화해봐.


전화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미국에 오기 전까지 전화로 영어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영어로 말할 때는 바디 랭귀지나 표정 등, 비언어적인 것들을 통해서 의사소통에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전화로 통화할 때는 비언어적인 도움 없이 오로지 '말'로만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만약 전화하는 상대방의 말의 속도가 빠르다던지 혹은 익숙하지 않은 엑센트나 억양으로 말을 한다면, 나 같은 외국인에게 전화 통화는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는 이상, 전화는 절대 피할 수 없는 존재였다. 미국에서는 일상생활의 적지 않은 부분들이 전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특히나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일단 전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상대방에게 어필하고,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미국 생활에 얼마나 적응했는지에 대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아무튼, 차를 사려면 보험이 필요했고,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보험설계사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딜러 할아버지가 나 대신 전화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두 눈을 찔끔 감고 딜러 할아버지가 뻔히 보고 있는 앞에서, 전화기의 숫자 버튼을 눌렀다.


통화연결음이 들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갑자기 자동응답 메시지로 넘어간다. 지금 부재중이니, 메시지를 남겨달라고 한다.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었다.


토마스 씨: 전화를 안 받아서, 자동응답 메시지로 넘어가는데요?
딜러 할아버지: 그래? 그럼, 메시지 남기면 되겠네.


맙소사. 마치 영어 말하기 시험을 보듯, 감독관(딜러 할아버지)이 보는 앞에서 나는 쭈뼛쭈뼛 자동응답기에 독백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토마스 씨: (독백으로) 안녕하세요. 저 지금 OO에 차를 사러 왔는데요. 보험이 없어서 차를 못 사고 있어요. 혹시 이 메시지 확인하면 000-000-0000으로 전화해 주세요.


맞은편에 있는 감독관(딜러 할아버지)이 내가 말하는 것을 보며 혹시라도 비웃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과연 내 점수는?) 아무튼, 보험에 가입하기 전까지 자동차 구입 프로세스는 이렇게 잠시 멈추었다. 전화를 기다리며 나는 딜러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되었으며, 여기서는 어떤 공부를 하는지,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했고, 그 할아버지는 앞으로 이곳에 살면서 도움이 될만한 팁 같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드디어 전화가 왔다.


설계사 아주머니: 전화하셨죠? 메시지 받고 연락하는 거예요. 반가워요. 제 이름은 Diane이에요.
토마스 씨: 안녕하세요. 저 지금 스바루 딜러샵에 있는데,  닉(딜러 할아버지 이름)의 소개를 받고 전화한 거였어요.
딜러 할아버지: (화상 전화는 아니지만... 내 전화기에 손을 흔들며) 안녕, 다이엔!


다행히도 설계사 아주머니는 굉장히 친절하셨고, 발음도 명확해서 전화 통화를 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설계사 아주머니에게 현재 내 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을 했는데, 가장 큰 이슈는 과연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여권과 국제 운전면허증 정보만으로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느냐 였다. 설계사 아주머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확실히는 잘 모르고 계셨는데, 일단 관련 정보들을 불러달라고 하면서 자기가 한번 시스템에 넣어보겠다고 했다. 만약, 이 단계에서 막힌다면, 집으로 돌아가서 인터넷으로 보험에 가입한 뒤 다시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분 뒤, 설계사 아주머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


설계사 아주머니: 굿뉴스예요. 말씀해준 대로 토마스 씨와 아내분 정보를 저희 시스템에 입력했는데, 별문제 없이 승인이 되었어요. 게다가, 보험료도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산출됐네요. 나중에 미국 운전면허증 받으면, 새로 받은 면허증 번호만 업데이트해주세요.


보험가입이라는 큰 산도 이렇게 별문제 없이 넘었다.


내가 가입한 리버티 뮤추얼 보험사는, 이렇게 항상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TV 광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제 최종 계약서 작성 단계만이 남았는데, 여기서 비로소 내가 지불해야 할 최종 자동차 가격이 결정된다. 딜러 할아버지가 계약서 종이를 가지고 오시더니, 내가 지불해야 할 가격에 대해 말해줬다.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원래 생각했던 가격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참고로, 자동차 가격은 도시 외곽의 딜러샵으로 나갈수록 싸지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차가 없다 보니 버스를 타고 올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딜러샵으로 온 것이라 처음부터 가격 메리트에 대한 기대는 어느 정도 접었었다)


토마스 씨: 가격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비싼 것 같은데, 조금 깎아주면 안 되나요?
딜러 할아버지: (단호하게) 안돼. 이게 우리가 정해놓은 가격이라 깎아줄 수가 없어.


워낙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니, 순간 나도 모르게 조금 위축이 되었다. 그러다 번뜩 어제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한 가격 정보가 떠올랐다.


토마스 씨: 근데 말이죠. 어제 제가 여기 딜러샵 홈페이지에서 가격들을 좀 검색해봤거든요. A모델 가격이 $00,0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온라인 가격이랑 오프라인 가격이 원래 이렇게 다른가요?
딜러 할아버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그래? 내가 가서 한번 확인해볼게.


딜러 할아버지는 어디론가로 가셨는데, 꽤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짜고짜 내게 악수를 청했다.


딜러 할아버지: 축하해. 지금까지 우리 매니저랑 이야기하고 왔는데, 네가 말한 그 가격에 주는 걸로 결정했어. 사실 네가 말한 온라인 가격은 수동 모델에다가 스펙도 더 낮은 건데, 그냥 그 가격에 줄게.


아.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발품을 팔면서 가격을 계속 흥정하는구나. 어떻게 가격이 한순간에 이렇게 줄어들 수 있는지... 아무튼, 말 한마디에 나는 원래 내가 제안받았던 가격보다 꽤 많이 저렴한 가격에 차를 구입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최소한 덤터기는 쓰지 말자'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했다. 최종 자동차 가격을 결정하고 나자, 나는 회사의 재무과처럼 최종 계약서 작성만을 따로 전담하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최종 계약서 작성은 별도의 공간에서 인상 좋은 아주머니와 1대 1로 진행을 했다. 거기서 최종 지불 가격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현금으로 결제할지 할부로 결제할지를 결정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수표로 결제를 하겠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거기에 따라 서류들을 준비해줬다. 내가 구입한 차량은 3년 동안 무상 보증(warranty)을 제공했는데, 추가로 2년 워런티를 신청할 것인지를 물어봤다. 토마스 씨는 워낙에 자동차의 기계적 특성 및 부품들에 대해 무지한지라, 그냥 추가 2년 워런티를 구입하기로 했다. 마침 워런티 가격도 내가 깎은 자동차 금액에서 조금만 더 지불하면 됐고, 워런티를 통해 앞으로 5년 동안은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차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약서 작성을 모두 마치고 다시 딜러 할아버지 자리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내가 추가 워런티를 구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잘 했다'라고 하면서 혹시라도 중간에 차를 중고로 팔게 되더라도 워런티가 있으면 차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공식적인 구매절차가 끝이 난 뒤, 딜러 할아버지는 내게 같이 밖에 나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딜러샵에서 나와 어딘가로 함께 걸어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향한 곳은 딜러샵의 뒷마당(backyard)이었는데, 그 엄청난 규모의 뒷마당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스바루의 새 자동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딜러샵들은 거대한 뒷마당에 대량의 새 자동차 재고를 이렇게 상시 보유하고 있으면서 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팔듯 그때그때 소비자들에게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미국의 엄청난 스케일에 다시금 놀라게 되었다.


미국은 딜러샵들마다 자체적으로 대량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서 마트에서 물건을 사듯 바로 차를 구입할 수 있다


딜러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해온 자동차 열쇠의 버튼을 눌렀다. 그랬더니 어딘가에서 "삑"하는 소리가 들렸다.


딜러 할아버지: (불이 들어온 차를 가리키며) 토마스. 저기 보이는 게 네 차야.


아. '내차'라니... 내차라는 말에 괜히 감격스러웠다. 우리는 소리가 난 곳으로 함께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아직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의 보닛에도 아직 비닐이 그대로 붙어있는 그야말로 새 차였다.


딜러 할아버지: 마침 자동차 밖에 비닐도 아직 안 뜯은 완전 새 차(brand-new car)구나. 잘됐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자동차 외관에 씌어있는 비닐을 하나씩 벗겨내셨고, 우리는 함께 자동차에 올라탔다. 시트에 앉자마자 느껴지는 새 차 냄새. '반갑다. 새 차야.' 나도 모르게 차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딜러 할아버지: (차를 딜러샵 앞에 다시 세우고는) 자, 이제 우리 직원이 기본적인 시스템 세팅을 하고, 세차도 깨끗이 해줄 거야. 그때까지 너는 안에 들어가서 커피랑 머핀 먹고 있으렴.


할아버지가 시킨 대로 나는 딜러샵 안에 있는 휴게 공간에서 커피랑 간식들을 먹으면서 내차가 준비되길 기다렸다. 한참 후 딜러 할아버지가 내게 오시더니, 준비가 끝났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갔는데, 그곳에는 방금 '첫 목욕'을 마친 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자동차 한 대가 서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보고 운전석에 앉으라고 했다. 운전석 시트를 내 몸에 맞게 조정하고 시동을 걸어보니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표시가 보였고, 날짜와 시간도 정확하게 세팅이 되어 있었다.


딜러 할아버지: 토마스, 혹시 너 스마트폰 가지고 있니?
토마스 씨: 네. 여기 아이폰 있어요.
딜러 할아버지: 그럼, 지금 바로 블루투스 연결해보자. 내가 가르쳐줄게.


나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누르고, 자동차에게 내 음성을 인식시켰다. 그러고 나자 바로 자동차 오디오에 내 아이폰이 블루투스로 연결되었다.


딜러 할아버지: 설정 완료됐네. 테스트 삼아서 노래 한곡 틀어보겠니?


나는 내 아이폰의 '음악' 아이콘을 누른 뒤, 아무 망설임도 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선택했다.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앨범이었다.


무인도에 딱 하나의 음반을 가져간다면, 나의 선택은 이것!


자동차 스피커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딜러 할아버지는 빙긋 한번 미소를 보이시더니, 다시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창밖에서 손을 흔들며 내게 작별인사를 했다.


딜러 할아버지: 토마스. 앞으로 안전 운전하고. 차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문제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나는 운전석에 앉아 창밖의 딜러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천천히 차를 몰아 딜러샵 밖으로 나왔다. 이국적인 신호등과 도로 표지판이 계속 이어지는 한낮의 도로는 한산했고, 앞유리창으로 들어온 강렬한 태양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두 손 위를 비추었다. 활짝 열어 놓은 유리창으로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바람은 시원했고, 차 안에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커다란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선 지 4시간 만에 새로 산 자동차를 타고,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아내와 아이에게 우리의 새로운 식구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집이 점점 가까워올수록 내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세 식구의 발이 되어줄 스바루. 아무쪼록, 잘 부탁해!





부록: 토쥬군과 스바루


2014년 7월말 (토쥬군이 스바루와 처음 만났을 때)


2015년 5월 (한손에 다먹은 수박껍질을 쥐고, 잠이 든 토쥬군)


2016년 6월 (외출 준비를 끝내고 카시트에 착석 중인 토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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