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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Feb 18. 2017

운전면허증 (하)

I-94가 없어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이곳에서 토쥬군을 달래고 달래며 가까스로 2시간 30분이 넘게 버텼건만... 만약 오늘 면허증 신청을 못하면 다음 날에 이 기다림을 또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당장 I-94를 출력해와야 했다. 아내는 토쥬군을 안은채 계속 창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DMV 오피스의 그 어디에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내 핸드폰은 셀룰러 데이터가 안됐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 순간, 저쪽 구석에서 앉아있는 한 사람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아침에 줄을 서서 기다릴 때 아내와 대화를 나누었던 그 여성분이었다. 그 여성분은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분께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토마스 씨: 저기.. 죄송한데요. 저희가 지금 급히 인터넷으로 확인해야 할 서류가 있어요. 잠시 핸드폰으로 인터넷 좀 쓰면 안 될까요?
여성분: (친절하게 핸드폰을 건네주면서) 네. 여기 있어요.
토마스 씨: 정말 감사합니다.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그 여성분의 모습은 정말 '천사' 같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히려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내게 기꺼이 본인의 핸드폰을 건네주는 그 모습에 나는 정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분의 아이폰으로 CBP 사이트에 접속해서 아내와 나의 I-94를 열람하였고, 창구 직원에게 무사히 필요한 정보들을 제출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그분께 다시 돌려주면서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분의 연락처를 받아서 추후에 제대로 감사의 인사를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후회가 든다. 아마도 그분에게 이날 진 빚은 다시 한국에 돌아간 뒤에 나도 그분처럼 외국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갚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우리는 그 여성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I-94의 장벽을 넘었다. 이제 한숨 놓고, 본격적인 운전면허증 발급 프로세스가 시작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 앞에는 더 강력한 장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DMV 직원분: 토마스 씨. 제출한 서류 검토해보니, 아내 분은 지금 면허증 신청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토마스 씨는 안 되겠는데요?
토마스 씨: (깜짝 놀라며)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죠?
DMV 직원분: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려면 기본적으로 SSN(Social Security Number, 사회보장 번호)이 필요해요. 아내분은 지금 F-2 비자라서 원칙적으로 SSN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SSN 기입이 면제되어 운전면허증을 신청할 수 있어요. 하지만 토마스 씨는 상황에 따라 SSN을 받을 수 있는 F-1 비자라서, 운전면허증 신청을 하려면 반드시 SSN을 제출하던가, 아니면 현재 SSN을 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별도로 제출해야 해요.


그 직원분의 말을 요약해보면, 현재 나는 SSN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SSA(Social Security Administraion, 사회보장국)를 방문해서 SSN을 받지 못한 사유가 기재된 공식 문서를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그 문서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운전면허 발급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없다고 했다. 아.. 정말 '산 넘어 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I-94를 제출했더니, 이제는 SSN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토쥬군의 인내심도 어느덧 최고치에 다다른 것 같고, 곧 있으면 점심도 먹여야 했기 때문에, 내 운전면허증은 잠시 보류하고 아내 운전면허증부터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그 이후 단계부터는 별문제 없이 운전면허 신청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었고, 무사히 신청을 완료한 뒤 우리 세 식구는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직 내 운전면허증 신청은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아내라도 아무 문제없이 면허증을 신청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아내와 토쥬군은 이제 이 지긋지긋한 DMV에 다시 올 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간단히 점심을 먹은 뒤 아내는 집에서 토쥬군의 낮잠을 재우기로 했고, 나는 다시 외출 준비를 했다. 비는 오전보다 좀 더 세차게 내렸다. 제법 굵은 빗줄기를 뚫고 내가 향한 곳은 SSA(사회보장국)였다. 참고로, SSA는 우리나라의 주민번호와 유사한 SSN(사회보장 번호)을 발급해주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 프로그램들도 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SSA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피스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여기도 사람이 가득하다. 입구에 서있는 경찰 제복을 입은 아저씨에게 방문 목적을 이야기한 뒤, 그분이 시킨 대로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그다음, 번호표를 받았고 다시 또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됐다. 비가 내리고 있는 오후, 낯선 미국의 관공서 의자에 앉아 맞은편 벽에 걸린 TV 모니터에서 나오는 사회보장 홍보 영상을 멍하니 반복해서 보고 있다 보니, 불현듯 프랑크(Franck)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계속 흥얼거리게 된 1악장의 멜로디는 학부 4학년 1학기 기말시험 기간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당시 도서관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던지 허리가 많이 아파서, 나는 잠깐 짬을 내어 학교 앞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갔었다. 그때 허리에 침이 가득 꽂혀 있는 상태로 한동안 한의원 침대에 엎드려 있었는데, 침대 옆에 있는 낡은 라디오(아마도 KBS 클래식 FM)에서는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작은 볼륨으로 흘러나왔었다. 그날도 지금처럼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문득 지금의 내 상황 - 미래에 대한 불안감, 기말시험 학점에 대한 부담과 그로 인한 허리 통증, 허름한 한의원의 낡은 침대에 엎드려서 허리에 침을 맞고 있는 모습 - 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었다. 한의원을 나온 뒤에도 그 센티함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한동안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어느 오후, 낯선 미국의 사회보장국 대기실 의자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나는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밖에 비가 내려서 제법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오피스 안에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어서였을까? 이 공간의 분위기가 갑자기 너무도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자 문득 예전 학교 앞의 그 허름했던 한의원의 침대와 오래된 라디오, 먼지가 낀 창문틀 같은 것들이 그리워졌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내 기억 속에 각인된 그때의 그 이미지 속에는 따뜻함이 가득했었다. 반면,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공간과 주변의 사람들이 어찌나 낯설고 차갑게 느껴지던지... 아마도, 미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느끼게 된 홈 시크니스(homesickness)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센티함의 바다에서 허우적 되다 보니, 어느덧 내 차례가 돌아왔다. 의외로 'SSN을 현재 발급받을 수 없는 상황임'을 입증하는 서류는 간단하게 발급되었다. 그 서류를 들고 나는 다시 차를 DMV로 몰았다. 비는 아까보다는 많이 약해져서 이제는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다시 DMV로 가면서, 신호대기 중에.


DMV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오전에 우리를 담당했던 여성 직원분이 있는 창구로 직행했다. 다행히, 그 직원분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낸 뒤 바로 내 서류를 처리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SSA에서 받아온 서류를 제출한 뒤에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먼저 시력 측정 기계에다가 눈을 갖다 대고 시력 검사를 했고, 그다음은 운전면허증에 들어가게 될 혈액형, 키(피트 단위), 몸무게(파운드 단위), 머리카락 및 눈동자 색깔 등과 같은 정보들을 입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즉석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사진을 촬영해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것처럼 보이는 앳된 여성분이 내게 한 장 짜리 면허증 신청 확인 서류를 주면서 2주일 안에 집으로 운전면허증이 배송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어깨를 짓눌렀던 시험 하나를 무사히 끝마치고 나오는 수험생의 표정으로 그 여성분에게 활짝 웃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의 시동을 거니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동차 앞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들을 배경으로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라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고 싶어 지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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