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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Feb 25. 2017

수학 캠프

한창 비자발급 준비를 하고 있던 5월 말의 어느 오후.


내가 진학하게 될 학교에서 메일이 한통 도착했다. 메일의 제목은 (대문자로) MATH CAMP 였다. 내용은 8월 1일부터 21일까지 약 3주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수학 캠프(Math camp)라는 수업이 열릴 예정이기 때문에, 올해 신입생들은 무조건 참석해야 된다는 공지였다. (캠프라고 해서,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바비큐를 먹는 '캠핑'과 헷갈리면 안 된다)


메일에는 학과장 교수님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도 하나 첨부가 되어 있었다.


첨부 문서의 전반부는 수학 캠프에서 다루게 될 내용에 대한 소개였다. 참고로, 나의 전공인 경제학은 수학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지원할 때 지금까지 들었던 수학 과목들과 사용했던 교과서, 학점 등을 따로 기재해서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 대학들은 정식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몇 주 동안 이렇게 박사과정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캠프'라는 수학 수업을 열어서 미리 워밍업을 시킨다. (수학 캠프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가을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결국 학교 전체의 공식 개강일보다 3주나 일찍 수업이 시작되는 셈이다)


메일에 첨부된 문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특정 단락 하나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네가 앞으로 1년 차 때 듣게 되는 모든 과목들은 엄밀한 수학적 지식을 요구해. 그래서 우리는 네가 수학 캠프를 진지하게 듣기를 기대하고, 우리는 네가 여기서 보여주는 성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야.
수학 캠프는 마지막에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여기서 너는 네가 우리 프로그램에서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학적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반드시 보여주어야 해. 물론 수학 캠프가 학생들을 "걸러내려는(weeding)" 목적은 아니지만, 시험 성적 결과에 따라서 우리는 너의 수학 지식이 수업을 따라가기 벅찬 수준이라고 판단하게 될지도 몰라.
수학 캠프의 시험 성적은 앞으로 네가 수업을 듣게 될 1년 차 과목의 교수들에게 모두 보고가 될 거야. 물론 이 성적이 네 학점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너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판단할 때 다른 요소들과 함께 고려될 거야.
수학 캠프는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도움이 되는 거야.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이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것은 모두에게 피해를 줄 뿐이거든.


마지막 문장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이 우리 프로그램에 들어오는 것은 학과 전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드미션 프로세스를 통해 나름대로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을 뽑았지만, 입학 후에  아이들이 애초에 기대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학과 입장에서는 결국 손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미국의 경제학 박사과정은 1학년을 마친  ' 시험(qualifying exam)'이라는 무시무시한 시험을 통해 점수가 낮은 아이들을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첨부 문서를 읽고 나니 혹시나 내가 그 "준비되지 않은 학생"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냉큼 책장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던 수학책과 강의 노트들을 꺼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미적분, 해석학, 선형대수 등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학생, 토마스 씨. 미안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말고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 주세요!"라는 말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수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상대적으로 테크니컬한 미적분과 선형대수는 어느 정도 예전에 배운 것들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는 주로 해석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학부 시절 봤던 루딘(Rudin)의 해석학 교과서와 함께, 나는 중요한 증명들을 하나씩 하나씩 다시 음미하며 최대한 머릿속으로 집어넣으려고 노력을 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멍하니 앉아 연습문제에 나와 있는 수학적 증명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고민하다 보니, 다시 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수학 캠프를 준비하면서 봤던 루딘의 해석학 교과서 (흔히들, '베이비 루딘'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출국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것들도 많았고, 매일 저녁마다 지인들과 환송회 자리를 갖다 보니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부족해졌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아예 책을 펴볼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운전면허증 발급 신청을 완료하고 나서 이틀 뒤에 바로 수학 캠프가 시작되었다.  


수학 캠프의 첫 수업을 앞둔 전날 밤, 긴장감과 흥분감이 교차했다. 미국에서 듣게 되는 첫 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될지, 강의실은 어떤 모습일지, 시험의 난이도는 어떨지...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쉽게 잠들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한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이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백팩에다가 주섬주섬 필기도구와 노트 등을 넣었다. 그리고 현관문에서 아내와 아이에게 "학교 갔다 올게"라는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데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 다녀올게”라고 말했던 내가 이제 직장인의 옷을 벗고 학생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게 된 것이다.


오전 8시 30분 즈음의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그러나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이 이내 내가 걷고 있는 길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아직 여름방학 중이라 캠퍼스는 한산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들고 다니기 시작한 숄더백이나 토트백 대신에 백팩을 양쪽 어깨에 메고 낯선 풍경의 캠퍼스를 걷고 있노라니, 다시 학생이 되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앞으로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될 우리 학과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1931년에 지어진, 우리 학과의 건물 모습


이제부터 나는 이곳에서 과연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될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문을 열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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