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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Mar 20. 2017

미국에서 먹는 집밥

'서구화된 식단에 길들여진 입맛' -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햄버거, 피자, 소시지 등을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한 이후로는 아침 식사로 밥 대신 항상 빵을 먹었다. 김치나 국, 그 외 한식 밑반찬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런 나였기에, 미국에 오기 전에도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육즙이 가득하고 불맛이 느껴지는' 햄버거를 앞으로 실컷 먹을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오판이었다. 미국에 오면 자연스레 식습관도 미국식으로 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는 내 입맛이 '서구화'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미국에 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서구화된 입맛'은커녕, 내 입맛은 완전 '신토불이 토종 한국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Step 1: 미국에 온 직후

당시 토쥬군이 돌을 갓 지나서 한창 이유식을 먹을 무렵이라,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인터넷으로 쿠쿠 압력밥솥과 쌀을 주문했다. 며칠 뒤, 밥솥과 쌀이 도착해서 그때부터 집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반찬거리를 사러 집 앞 마트에 가보니 이건 뭐 정말 새로운 세계였다. 유기농으로 된 고품질의 온갖 식재료들이 마트의 구석구석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내와 같이 이것저것 처음 보는 신기한 식재료들을 구경하며, 그 가운데에서 최대한 익숙한 재료들 위주로 사 왔다. 일단, 아내는 한국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된장을 이용해 한국에서 먹던 음식과 비슷하게 요리를 했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됐을 무렵, 집 앞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로 아내가 만들어준 한식


Step 2: 미국에 온 지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미국 마트에서 파는 식재료들로는 한국에서 먹던 것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면, 고등어, 갈치, 꽁치 등의 이른바 '국민 생선' 및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삼겹살, 목살 같은 것들을 미국 마트에서는 볼 수 없었다. 소고기의 경우도 전부 스테이크 용으로 큰 덩어리로 판매할 뿐, 불고기를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얇게 설어서 팔지 않았다. 채소류의 경우, 양파, 마늘, 감자처럼 한국과 겹치는 것들도 있었지만, 배추나 대파 같은 것들은 보기가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소시지의 경우도, 미국에서 파는 소시지는 내가 한국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요컨대, 한국에서 먹던 것처럼 요리를 하려면, 한국에서 쓰던 식재료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차피 한국 식재료들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미국 가정식 요리 책을 사서 본격적으로 입맛을 미국식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아내는 어떻게 하면 미국의 식재료들로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들을 만들 수 있을까 나름 열심히 연구를 했었다. 예를 들면, 마트에서 사 온 데리야끼 소스를 이용해 닭고기 요리를 만든다던가, 일본식 미소 소스로 연어 조림을 만들어 먹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아내가 열심히 만들어준 그 요리들은 하나 같이 다 맛이 있었다.


마트에서 팔던 요리책 - 아내는 미국 식재료와 우리 입맛의 접점을 찾기 위해 이 책을 구입했다



Step 3: 미국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아내와 나는 우리 입맛이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치를 달라. 삼겹살을 달라. 라면을 달라.


아. 나는 분명 한국에 있을 때도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삼겹살은 좋아했으니 인정)... 내 몸은 지금 너무도 그것들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서양식보다는 한식을 더 좋아했던 아내의 경우, 나보다 더 심각했다. 게다가 아내는 매끼 식사 준비를 할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는 매번 낯선 식재료를 사용해 창작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나 자신의 입맛이 '서구화되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그 한식들(밥, 국, 밑반찬들) 덕분이었다는 것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평범한 한식의 존재 덕분에, 나는 가끔 먹는 서양식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계속 먹어온 그 모든 식재료들에 감사함 및 그리움을 느꼈다. (결핍의 순간, 우리는 무언가의 가치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 무렵, 우리의 한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느끼는 목마름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저기 멀리 오아시스가 '짠'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저거 정말 오아시스 맞을까? 혹시 신기루 아닐까?

우리는 조심스레 그곳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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