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스 Mar 27. 2017

H-마트(한인마트)에 가다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피크를 향해 달려가고 있던 무렵, 아내가 고급 정보 하나를 가져왔다.


아내: 오빠, 우리 아파트에 살고 계신 한국분들한테 들었는데 최근에 여기 근처에 한인마트가 하나 생겼대.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웬만한 것들은 다 있다는데 한번 가볼래?
토마스 씨: 정말? 그럼, 우리 이번 주말에 한번 가볼까?


미국에 도착한 지 딱 한 달이 지난 토요일 아침,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내비게이션이 우리를 안내한 길은 고속도로였다. 지금까지는 항상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안에서만 장을 봐왔기 때문에, 굳이 고속도로를 타고 멀리 이동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 온 이후, 처음 본격적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장을 보러 가기 위해서라니... 한국에서는 매일 집 앞에 있는 마트까지 걸어서 장을 보러 갔었는데, 제한 속도가 60마일(약, 100km/h)인 미국의 고속도로를 한참 동안 달려서 장을 보러 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초행길이다 보니, 가는 내내 왜 그리도 목적지는 멀게만 느껴지던지...


약간의 설렘, 그리고 약간의 걱정을 안은채 낯선 도로를 달리다 보니, 드디어 내비게이션에는 다음 램프로 나가라는 메시지가 떴고, 나는 내비가 시키는 대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와 함께 저기 멀리 H-Mart라는 간판이 크게 보였다. (실제 걸린 시간은 25분 남짓이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트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우리 눈 앞에 펼쳐진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미국에 온지 딱 한달이 지나서,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H-마트 (한인마트)



일단 마트 입구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H-마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트 안으로 카트를 끌고 들어가자, 매장 내부에 커다란 볼륨으로 울려 퍼지고 있던 딕펑스의 'Viva 청춘'이라는 노래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오. 맙소사. 이 노래는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좋아했던 노래. (그래 봤자, 불과 한 달 전)


꽤 오래된 스니커즈, 그 오래된 편안함..
... 반짝여라 젊은 날, 반짝여라 내 사랑...


토쥬군을 태운 카트를 끌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이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더라. 미국에 와서 이렇게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장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규모가 작다'고 해서 어디 조그만 마트에 한국 식품들을 구색 맞춤으로 두어 개 정도 갖다 놓은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웬걸. 이건 본격적인 '한인 마트'였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토록 찾던 모든 것들이 다 구비되어 있었다.


일단 미국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한국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품종의 채소류 및 과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육류 코너에는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삼겹살을 비롯해, 돈가스용, 불고기용, 샤부샤부용 등으로 나눠서 고기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어류 코너에는 고등어, 갈치, 꽁치 등의 국민 생선 삼총사들이 모두 손질된 상태로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익숙한 채소와 과일들을 만날 수 있는 코너.
삼겹살!
자반 고등어!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지만, 미국에 온 이후에야 그 존재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 김치를 비롯하여, 콩자반,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등 다양한 종류의 밑반찬들도 판매 중이었다.


아... 김치!


그런데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먹었던 라면들, 이를테면, 신라면, 너구리, 짜파게티, 삼양라면, 진라면 등등의 모든 라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마트에서 파는 그 짠맛 위주의 과자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어렸을 때부터 먹던 익숙한 과자들도 이곳에서 판매 중이었다.


한국 라면들!
한국 과자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냉동식품 코너. 아... 여기서도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만두, 어묵, 김말이 튀김 같은 아이들이 냉동고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어릴 때 먹었던 붕어싸만코 같은 아이스크림들도 판매 중이었다.


한국 만두들!
한국 아이스크림들!


마지막으로,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 등등 한국 마트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소스류들도 선반에 다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곳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한국 식품을 원 없이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행복감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내 말로는, 이날 내가 마치 약에 취한 것처럼 흥분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카트에 끊임없이 쓸어 담았다고 한다.


미국에 온 이후, 가장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낸 뒤 나는 입이 귀에 걸린 채로 마트 출구로 향했다. (아... 나란 사람은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곳 마트의 매니저급으로 보이는 중년의 한국 직원분께서 우리에게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마트 매니저님: (반갑게 웃으시며) 안녕하세요.
아내와 나: (우와... 마트에서 한국말로 인사를 하다니... 놀라면서) 안녕하세요!
마트 매니저님: 아이가 참 귀엽네요.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보세요. 제가 좀 드릴 게 있어서요.


어딘가로 가신 매니저님이 잠시 후 양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오셨는데, 바로 유아용 화장품 샘플들이었다. 감사하게도 토쥬군을 위해, '궁중비책'이라는 브랜드의 로션과 샴푸 세트를 넉넉하게 챙겨 오시고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다.


아... 한인마트에서 지금까지 먹고 싶은 것들을 실컷 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는데, 이렇게 또 한국인 매니저님이 토쥬군을 위해 선물도 챙겨 주시다니. 그렇다. 앞으로 이곳을 좋아하지 않으래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금사빠'라고...)


아무튼, 이날 우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삼겹살을 노릇노릇 구워, 쌈장에 찍어, 파채와 함께 상추에 싸서 먹었다. 비록 한국에서 먹던 삼겹살만큼의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게 된 것 자체로도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이렇게, 당시 우리의 가장 큰 걱정 가운데 하나였던 '먹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한인마트를 통해 어느 정도 덜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뚱딴지같은 이야기지만, 요즘도 딕펑스의 'Viva 청춘'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저절로 H-마트를 처음 갔을 때의 그 설렘과 흥분감이 느껴진다. (본의 아니게,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노래를 사용해서 죄송...)




여담이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웰빙은 크게 두 가지의 요소로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한국행 직항 비행기 노선이 있는 도시에 사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집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는가?'이다. 비록 내가 사는 곳은 한국까지 바로 갈 수 있는 직항은 없지만, 감사하게도 한인 마트까지는 차로 25분이면 갈 수 있다. (처음에는 25분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는데, 언제가부터 고속도로 25분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정도로 생각되더라는..)


만약 한인마트가 없었다면 매일 집에서 먹는 한 끼 한 끼의 식사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암울해진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미국 아이들 틈에서) 이래저래 시달리고 나서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온 뒤, 아내가 저녁으로 차려준 밥, 국, 한식 반찬들을 먹으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던 위로와 에너지를 얻었던 숱한 기억들... 역시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을 나는 미국에 와서 몸소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완전 사랑합니다. 김치, 된장, 고추장, 삼겹살, 불고기, 김, 멸치 볶음, 그 외 한국에서 먹던 밥상의 그 익숙한 재료 하나하나들. (흐흑)

작가의 이전글 미국에서 먹는 집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