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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Apr 03. 2017

동기들과의 하이킹

수학캠프가 시작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동기 한 명이 전체 메일을 보냈다.


Hello all!
I am sure that you are all enjoying math camp so much that you just don't want it to end. Unfortunately it will be over before we know it. One piece of advice that a second year gave me was to get to know my cohort as much as possible during this time. (안녕 얘들아, 다들 수학캠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이대로 수학캠프가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말이야. 아쉽게도 수학캠프는 조만간 끝나게 될 거야. 지금 이 시점에서 동기들끼리 최대한 친해지면 좋을 거라는 조언을 2년 차 애들이 해주었어.)
It is with this thought in mind, that I am proposing we find some event to do together this weekend. I was thinking maybe a hike in OOO or something that would not cost anything so everyone could possibly come. (그래서 말이야. 이번 주말에 다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어. 내 생각엔 다 같이 OOO에 하이킹을 가면 좋을 것 같아. 돈도 안 들고, 누구나 참여할 수도 있고 말이야.


수학캠프가 시작된 뒤, 강의실에서 마주치는 동기들과 인사 정도는 했지만 딱히 길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점심도 수업이 끝난 뒤 항상 집에 와서 먹다 보니, 동기들과 같이 밥을 먹을 일도 없었다. 뭔가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느껴지던 참에, 마침 동기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제프가 주말에 다 같이 하이킹을 가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제프의 하이킹 제안에 대한 동기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바로 그 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등산로 입구에서 모이기로 했다. 나도 물론 참여할 거라는 답신을 보냈는데, 막상 메일을 보내고 나니 몇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첫 번째는 과연 하이킹을 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외출을 하게 되면, 집에서 아내가 혼자서 아이를 봐야 하는데, 적어도 언제까지 집에 올 수 있는지는 미리 아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하이킹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는지가 궁금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매년 두세 차례씩 등산대회가 있었는데, 등산 자체는 참 좋았지만 하산하고 나서 시작되는 회식은 별로 좋지 않았다. 대낮부터 시작된 술자리가 밤까지 이어졌던, 조금은 힘들었던 기억들 때문에 나는 언제부터인가 등산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까지 그렇게 낮부터 술을 마시는 일은 당연히 없겠지만, 혹시라도 하이킹을 끝내고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게 일종의 매너라고 한다면, 식사 자리까지는 참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요일에 오전부터 하이킹을 갔다가 밥까지 먹고 들어가게 되면 혼자서 토쥬군을 봐야 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웬만하면 밥은 집에 와서 먹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제프에게 말했더니,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일단 하이킹 소요 시간의 경우, 어떤 코스를 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오르는 산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밥 같은 경우는, 하이킹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그런 문화는 없다고 했다. 같이 하이킹을 하는 게 목적이지, 끝나고 밥 먹는 거는 그냥 개별적으로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지...)


아무튼, 약속한 일요일이 되었고 나는 차를 몰아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미 몇몇 동기들이 도착해 있었는데, 지금까지 강의실에서 인사만 하던 친구들을 밖에서 이렇게 만나니 또 기분이 새로웠다. 참석 의사를 밝힌 동기들이 다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우리는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학캠프는 어떤지, 우리가 앞으로 듣게 될 수업과 교수님들은 어떤지, 어디에 집을 구했는지, 고향이 어딘지 등등.


그러다가 동기 가운데 샌디에이고 출신의 케이시라는 친구가 내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케이시: 토마스. 한국 사람들도 하이킹 좋아해?
토마스: 그럼, 한국에는 주말마다 사람들이 등산을 하러 가.
케이시: 정말? 너 서울에서 왔다고 했지? 서울에서 제일 높은 산은 높이가 어느 정도야?
토마스: (음.... 서울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디더라...?)


뭔가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지리 시간에 백두산과 한라산의 높이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있었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토마스: (머리를 긁적이며...) 글쎄... 서울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남한이랑 북한을 다 포함해서 제일 높은 산은 높이가 2,500 km 정도 될 거야.
케이시: 오. 그렇구나. (옆에 있던 친구에게) 근데 1 킬로미터가 몇 피트지?
토마스: (순간 멈칫하며... 단위가 km가 아니라 m임을 깨닫는다...) 아... 미안... 킬로미터가 아니라 미터야.
케이시: (웃으면서) 그렇지? 순간 킬로미터라고 해서, 도대체 얼마나 높은 산인지 상상이 잘 안되더라고.


여기서의 교훈! 혹시 모르니, 백두산이나 한라산 외에도 자기가 사는 곳의 제일 높은 산이 어디인지, 높이는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놓자. (찾아보니, 서울에서 제일 높은 산은 북한산이고 높이는 837미터이구나) 그리고 미국 친구들과 하이킹을 가게 된다면, 한국의 주요 산의 높이를 피트 단위로도 미리 계산해서 알아놓자. 참고로, 1미터가 약 3.3피트이니, 백두산은 9002피트(2744미터), 한라산은 6387피트(1947미터), 북한산은 2746피트라고 한다. (친절한 토마스 씨. 데헷) 여담이지만, 미국에서는 사람의 키를 잴때도 피트 단위를 사용하는데, 미국 사람들은 남자 키를 기준으로 6피트(약 182cm)를 이상적인 키로, 6피트 2인치(약 189cm) 정도 되면 키가 크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이킹을 할때는 혹시 모르니 주요 산의 높이를 외워 가는 걸로...


드디어, 참석 의사를 밝힌 아이들이 모두 도착했고 우리는 다 같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동기들과의 하이킹은 큰 부담이 없었다. 이 친구들의 하이킹은 '오르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걷기 위해' 오른다는 개념에 가까워서 가벼운 마음으로 무리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직장에서의 등산은 일단 정해진 코스를 밟고 오는 게 목표였는데 (입사 3개월 차에 했던 등산이 무려 한라산이었다는 게 좀 함정.. 막내라서 부서원들 도시락 매고 백록담까지 올라가느라 힘들었음...), 여긴 처음부터 가고자 하는 코스를 정해두지 않았다. 예를 들어, 두 갈래 길이 나오면 제일 앞에 있는 애가 다른 애들한테 어디로 갈지 물어보거나 혹은 자기 마음대로 고른 뒤에, 다들 그 친구를 따라가는 식이었다.


산을 오르는 동안, 동기들과 돌아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중간중간 쉬면서 간식도 먹고 경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중에는 오르기 벅찬 바위들이 나왔는데, 그냥 그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고 조금 쉬다가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아... 지금까지 등산을 하면서 이른바 '정상'을 오르지 않고 그냥 내려오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근데, 이게 나쁘지 않더라. 어떤 정해진 목표 지점 없이,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쉬엄쉬엄 산을 오르다 보니 주변의 경관을 좀 더 잘 관찰할 수 있었고, 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몸이 안 힘들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였음)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하이킹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여기는 개들도 사람들과 같이 등산을 하더라는 것. 이날 하이킹을 하며 주인과 함께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개들을 꽤 많이 마주쳤는데, 평소에 등산을 즐겨하는 이곳의 멍멍이 친구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건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들과 함께 내려오면서 찍은 풍경 사진


그렇게 우리는 여유로운 하이킹을 끝내고, 다시 처음의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왔다. 제프가 말했던 것처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일은 없었다. 그저 쿨하게 내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하며, 다들 제 갈 길을 갔다. 그리 길지 않았던 하이킹이었지만, 서머 서먹했던 동기들과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어서 뿌듯했던 그런 하루였다. 덕분에, 내일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좀 더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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