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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May 01. 2017

첫 학기 시작

드디어 미국에서의 박사 과정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첫 학기는 대략 아래의 시간표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색깔별로 주요 액티비티를 분류해 보았다.



필수 과목(연녹색)

경제학 박사과정은 1년 차에 무조건 미리 학과에서 정해준 필수 과목들을 수강해야 한다. 1년 차에 들어야 하는 필수 과목은 총 6개인데, 가을학기에 3개, 봄학기에 3개를 각각 듣게 되어 있다. 첫 학기에 내가 듣게 된 과목은 미시경제학 1, 거시경제학 1, 계량경제학 1이었고,  두 번째 학기에는 바로 이어서 미시경제학 2, 거시경제학 2, 계량경제학 2를 수강해야 했다. 크게 보면, 1년 차에는 결국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 이렇게 세 과목을 배우게 되는 건데, 그걸 두 학기에 걸쳐 1과 2로 나눠서 총 6분의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것이다. (참고로, 1년 차를 끝마치고 치르게 되는 퀄 시험에서는 총 3일 동안, 하루씩 돌아가면서 미시경제학 1-2, 거시경제학 1-2, 계량경제학 1-2에 대한 시험을 보게 된다.)


처음 얼마 동안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묘한 감정을 느끼곤 했다. 한국인이라고는 나 혼자 밖에 없는 이국적인 모습의 강의실에서 미국 아이들에 둘러 쌓여, 영어로 된 강의를 들으며 영어로 노트 필기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왠지 지금 당장이라도 원래 내가 한국에 있었던 그 자리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미국에 오기 전에 직장 선후배들이 미국에서 쓰라고 잔뜩 챙겨줬던 학용품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 학용품들은 낯선 미국의 강의실에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의 모습을 느닷없이 떠올리게 했다.


미국에 오기 전, 직장 선배님께서 서프라이즈로 주신 학용품 종합 선물 세트


그리고 후배가 챙겨준 무인양품의 필기구 세트



레시테이션 및 학부 수업 청강(노란색)

나는 첫 학기부터 TA(Teaching Assistant; 강의조교)를 하게 되었다. TA를 하게 되면 학교로부터 학비 및 생활비 등과 같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대신 매주 미리 정해진 시간만큼 레시테이션(recitation)이라 불리는 연습/보조 수업을 가르쳐야 한다. 레시테이션 시간에는 주로 한 주 동안 수업 시간에 강사가 다룬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복습을 시켜주며, 연습 문제를 풀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나는 첫 학기에 총 4개 반의 레시테이션을 맡게 되었다. 한 반의 정원이 25명 정도 되기 때문에, 대략 1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50분씩, 매주 4번의 수업을 해야 했다. 특히, 그 가운데 2개의 레시테이션은 화/목 오전 8시에 시작했는데, 안 그래도 화요일과 목요일은 들어야 할 수업도 많은 날이라서 이래저래 화/목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편, 레시테이션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수업 시간에 강사가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TA를 하고 있는 학부 수업을 청강하는 것도 TA의 의무 가운데 하나였다. 강사에 따라서 굳이 수업에 안 들어와도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무조건 수업에 들어와서 본인이 다루는 내용들을 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내가 첫 학기에 TA를 했던 강사는 약간의 융통성이 있던 사람이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수업에 들어오면 되고, 시험 기간에는 안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학부 수업을 청강하면서 미국의 수업 방식이나 강사의 티칭 스타일을 벤치마킹할 수 있어서 나름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첫 학기에는 이 레시테이션과 학부 수업 청강 때문에 뺏기는 시간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오피스아워(주황색)

TA  다른 의무 가운데 하나는 오피스아워(office hour)였다. 오피스아워란 매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시간 동안에는 학생들이 내가 있는 오피스로 와서 자유롭게 질문을   있는 것을 말한다. 아무래도 학생들은 교수나 강사들을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서,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있는 TA들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상대적으로 수업이 적은 /수에 오피스아워를 몰아넣었는데, 시험 기간을 빼고는 대개의 경우 그냥 오피스 책상에 앉아서 개인 공부를 하곤 했었다.


대학원 레시테이션(연파랑)

앞서 말한 레시테이션은 내가 TA로서 학부생들을 가르치는 시간인 반면, 대학원 레시테이션은 내가 학생이 되어 대학원 TA로부터 배우는 시간이었다. 대학원 TA는 직전 연도 박사과정 신입생 중 가장 학점이 좋았던 학생이 맡게 되는데, 우리는 스페인 출신의 하비에르가 TA를 맡았다. 대학원 레시테이션은 목요일 저녁에 시작되었는데, 동기들과 계량경제학 수업을 들은 다음에 다 같이 근처 펍에 가서 저녁을 먹고 레시테이션에 참석하곤 했다. 특히, 시험이 끝난 주에는 대학원 레시테이션 전에 동기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도 한잔씩 하곤 했는데, 나름 한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요약해보면, 첫 학기는 '대학원 수업-학부 레시테이션-학부 수업 청강-오피스 아워-대학원 레시테이션'의 루프를 매주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금요일에는 아무런 일정이 없어서 이날 하루만큼은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금요일에는 주로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곤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때가 일주일 가운데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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