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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Sep 12. 2017

첫 티칭의 긴장감 (상)

나는 운 좋게 첫 학기부터 풀 펀딩(Full-funding)을 받을 수 있었는데, 풀 펀딩의 내역은 다음과 같다.

등록금 전액 면제

매달 월급(stipend) 지급

의료 보험 혜택


돈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전 세계의 학생들이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학교에 따라서는 장학금의 형태로 아무 조건 없이 매월 월급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연구 조교(Research Assistant; RA) 혹은 강의 조교(Teaching Assistant; TA)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학기부터 강의 조교(TA) 하게 되었는데, 학부 1학년들이 주로 듣는 경제학원론 수업에 배정이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는 개강  주의 월요일, 나와 같은 수업의 TA 배정된 입학 동기인 제이콥(Jacob) 함께 원론 수업 시작 20분을 앞두고 강사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강사는 박사 과정 4 차인 그렉(Greg) - 우람한 체구에 '털보'처럼 수염을 잔뜩 기른 친구였다. 그렉은 제이콥과 나에게 본인 수업에서 TA로서 해야 하는 일과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사항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유감스럽게도 말도 굉장히 빠르고 중서부 지방 특유의 엑센트가 있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옆에 앉아 있는 친절한 동기 제이콥이  알아들었으니까 모르면 그때그때 물어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안심이 되었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할 시간이 다가왔고, 그렉이 조금 있다 강의실에서 보자고 이야기하며 먼저 일어섰다. 강의실로 제이콥과 함께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제이콥, 나 지금까지 TA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너무 걱정돼. 게다가 앞으로 레시테이션(recitation) 시간에 영어로 강의를 해야 되잖아. 어떡하지?
제이콥: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학부 4학년 때 조교를 해봤으니까, 최대한 많이 도와줄게. 와. 그래도 너 정말 대단한 거야. 나 같았으면 외국어로 수업을 하는 건 상상도 못 하였을 텐데.


(아... 이런 친절한 제이콥 같으니라고. 너랑 같이 TA를 할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그렇게 우리는 강의실에 도착했는데, 200명이 들어가는 강의실이 이미 만석이었다. 뒷자리에 비어있는 두 자리를 겨우 찾아내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강사인 그렉이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강의계획서(syllabus)를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앉아 낯선 강의실에 꽉 들어찬 200여 명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순간, 그렉이 이 수업의 TA를 소개하겠다며 제이콥과 나의 이름을 크게 호명했다. 우리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강의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둘을 향했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앞으로 제이콥과 나는 이 수업을 수강하는 200명의 학생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학기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레시테이션(연습 시간)에서 가르칠 예정이었다. 지금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 절반이 앞으로 나의 레시테이션 수업을 듣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게다가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이제 다음 주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100명의 학생들을, 25명씩 4개 반으로 나누어서 각 반 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50분짜리 레시테이션 강의를 해야 한다. 레시테이션 시간은 지난주 강사가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부분들을 다시 정리해 주고, 연습 문제들을 어떻게 푸는지 가르쳐 주는 식으로 진행이 된다. 정식 강의보다는 부담이 덜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지금까지 줄곧 한국어만 써온 나에게 미국 학생들 앞에서 영어로 하는 50분짜리 수업은 당연히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나마 정말 다행스럽게도 50분 동안 무슨 내용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무런 감도 없었던 내게 제이콥이 큰 도움을 주었다. 제이콥은 매주 레시테이션 시간에 다룰 워크시트(worksheet)를 본인이 만들겠다고 자청했다. 수업 시간에 강사가 다룬 내용들을 바탕으로 제이콥이 직접 워드로 워크시트의 문제를 만들어서 매주 내게 파일을 보내주기로 했다. 덕분에 나는 제이콥이 보내주는 워크시트를 출력해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함께 풀면 됐다. 대신 몇 주에 한 번씩 치르게 되는 퀴즈 문제는 내가 출제하기로 했다.


정신없이 첫 주가 지나갔고, 드디어 둘째 주가 시작되었다.

첫 수업을 앞둔 전날 밤, 제이콥이 미리 보내준 워크시트를 보면서, 다음 날 있을 첫 레시테이션에 대한 수업 준비를 했다. 수업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낸 뒤, 앞으로 내가 가르쳐야 하는 4개 반의 출석부를 출력했다. 출석부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함께 나와 있었는데, 한 명 한 명 낯설기만 한 생김새의 얼굴과 이름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리고 이제 이 아이들을 강의실에서 실제로 대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긴장감이 몰려왔다.


내일 아침 8시가 되면 드디어 나의 첫 영어 강의가 시작된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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