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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05. 2017

응급실 (상)

미국에 온 지 3개월이 다 되어가던, 10월의 어느 목요일.


(참고로 목요일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 수업 및 티칭이 있고, 저녁에도 대학원 레시테이션이 있어서 일주일 중에서 가장 바쁜 날이다. 그래서 보통 목요일 밤에는 자기 전에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곤 했다.)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는 저녁에 대학원 레시테이션 수업을 듣고 있을 때까지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니, 시간은 대략 7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방을 챙기면서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아내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한통 와 있었다.


오빠. 토쥬군 갑자기 열이 나는데 체온이 39도가 넘어요. 빨리 집으로 와주세요.


아... 나는 왜 이 문자를 지금에서야 확인한 걸까.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나는 비가 내리는 길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집에 도착해보니, 토쥬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거실에서 엄마와 앉아서 놀고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는데, 체온을 재보니 39.2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바로 토쥬군을 차에 태워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향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거세진 비를 뚫고 어두운 밤의 도로를 달려 우리는 약 10분 뒤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아내와 아이를 먼저 병원 로비 입구에 내려주고,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뒤따라 병원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접수창구에서 아내가 토쥬군을 안은채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서, 우리는 대기 장소에 있는 소파에 앉아 우리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어느새 토쥬군은 엄마 품에 안겨서 스르르 잠이 들었다.


토쥬군이 태어난 이후, 응급실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 TV를 통해 그려왔던 응급실의 모습과는 달리, '과연 응급실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의 분위기는 몹시 평화로웠고, 차분했다. 소파에 앉아서 대기 중인 사람들도 다들 평온한 표정이었다. 이런 분위기 탓이었는지, 아내와 나도 여기까지 급히 달려왔을 때의 긴장감을 잠깐이나마 풀고, 소파에 앉아 우리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토쥬군은 여전히 아내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었고, 우리는 토쥬군이 깨지 않게 소곤소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경찰들이 어떤 젊은 남성 한 명을 데리고 병원 입구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내와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사람을 향했고, 무슨 사연으로 경찰들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내 품에 안겨서 잠들어 있던 토쥬군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아들의 몸이 갑자기 무섭게 경련을 일으켰고 우리는 너무 놀라서 데스크에 있는 직원을 향해 '응급 상황'이라고 소리를 쳤다. 다음 순간 아내는 아들을 안고 어딘가로 바로 뛰어갔고, 경황이 없는 와중에 나는 우리가 가져온 소지품을 챙겨서 바로 따라갔다.


그다음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은 아마도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아내가 아이를 안고 달려간 곳으로 가보니, 열린 문 틈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으로 달려 가보니, 네댓 명의 의료진들 사이에 둘러싸여 진료용 침대 위에 자그마한 몸으로 기저귀만 입은 채 누워있는 토쥬군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내 품에 안긴 채, 계속 소리 내서 울었다.


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토쥬군의 모습을 보니, 나도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울고 있는 아내의 등을 토닥이며 꾹 참아내기로 했다. 불현듯, 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굳이 유학을 오지 않았다면 내 아이가 이렇게 낯선 곳에서 저런 모습으로 누워있지 않았을 텐데... 괜히 내 욕심 때문에 아내와 아이를 이 먼 곳까지 데려와서 이렇게 아프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이에게 죄를 지은 것 같아 너무나도 미안했다. (아내는 또 아내 나름대로 아이에게 여러 가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다행히도 토쥬군의 경련은 바로 멈추었고 평온한 표정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의료진들 가운데  명이 우리에게 오더니,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가녀린 토쥬군의 몸에는 상태를 체크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여전히 여기저기 붙어 있었는데,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러워 가슴이 먹먹했다.


토쥬군 침대 옆에 있던 의료진들은 꺼냈던 응급 키트를 다시 제 자리에 넣어두고, 우리에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아내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아내가 아이를 안고 뛰어오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의료진들이 바로 토쥬군을 침대에 눕히더니 침대 옆에 준비되어 있는 응급 키트 세트에서 토쥬군의 키와 나이에 맞는 키트를 꺼내고, 거기에 적힌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토쥬군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상 좋게 생긴 중년의 여성 간호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더니, 토쥬군의 상태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토쥬군이 보인 증상은 Febrile Seizure (열성경련)라고 했다. 갑자기 체온이 올라가서 경련을 일으키게 된 것인데, 영유아기 때는 고열로 인해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거니까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경련이 반복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계속 상태를 주의해서 체크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토쥬군에게 해열제를 투약하고 나서, 우리는 열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제야 아내와 나의 정신이 제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토쥬군이 잠들어 있는 침대 옆의 의자에 말없이 손을 꼭 잡고 앉아 있었다. 이윽고, 넓은 진료실 안에는 우리 세 식구만 남겨졌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가시며 불을 꺼주셨는데, 아내와 나는 아무 말 없이 복도에 켜진 환한 형광등의 불빛이 진료실의 열린 문과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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