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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7. 2018

Trick or Treat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마스 씨에게 핼러윈*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몹시 낯선 풍경이었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핼러윈과 관련된 그 어떤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 보니, 10월 초쯤 마트에 핼러윈 관련 상품들이 하나둘 등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무덤덤했다. 반면, 토쥬맘은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1년 동안 살면서 핼러윈을 경험했었기 때문인지 핼러윈이 다가오자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특히 토쥬맘은 이제 곧 미국에서의 첫 핼러윈을 맞이하게 될 토쥬군에게 어떤 코스튬(costume)을 입힐지를 꽤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 나는 한창 바쁜 학기를 보내고 있었던지라 핼러윈은 물론이고 토쥬군의 코스튬에 대해서도 아무런 신경도 써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보니 아내가 오늘 밖에 나갔다가 토쥬군의 핼러윈 코스튬을 사 왔다며 내게 보여줬다. 토쥬맘이 고심 끝에 고른 코스튬은 바로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었다. 이 코스튬으로 뭘 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펌킨 복장을 한 토쥬군은 참 귀엽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핼러윈 데이는 매년 10월 31일인데 내가 살고 있는 학교 아파트에서는 핼러윈 데이를 앞둔 주말이 되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핼러윈 이벤트를 연다. 이 이벤트는 핼러윈 복장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다 같이 모여 퍼레이드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아파트의 커뮤니티룸에 도착해 마녀 복장을 한 사회자 아주머니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놀다가 마지막에는 과자와 사탕 선물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국에 온 지 3개월 여가 지난 2014년 10월 말의 토요일 오전, 엄마가 사 온 호박 복장을 입은 토쥬군도 처음으로 이 핼러윈 이벤트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핼러윈 퍼레이드를 하기 위해 모인 동네 아이들의 복장은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원래 핼러윈에는 귀신들을 쫓기 위해 유령이나 괴물 복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유령이나 괴물 복장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요즘의 핼러윈은 아이들이 평소에 입고 싶어 했던 예쁘거나 멋진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며 사탕이나 과자를 얻을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날"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예를 들어, 여자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남자아이들은 자신들이 동경하는 마블(marvel) 코믹스의 등장인물들이나 만화 캐릭터 혹은 소방관, 경찰관 등의 유니폼 등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아이가 세트로 특별히 맞춰 입은 경우를 제외하면, 아이들 중에 유령이나 괴물 복장을 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예쁘고 멋진 복장을 입고 있는데 어떤 부모가 굳이 자기 아이만 이상한 복장을 입히겠는가? (다만, 어른들의 경우는 일부 우스꽝스러운 괴물 복장을 입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튀는 복장을 입은 어른들은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게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토쥬군의 첫 핼러윈 복장이었던 '잭 오 랜턴'


아무튼, 아이들이 입고 나온 다양한 복장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다. 토쥬군도 동네 형이나 누나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이벤트룸에서 핼러윈 공연도 구경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우징 오피스에서 미리 준비한 과자와 사탕 선물을 받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토쥬군은 이제 막 나이가 한 살 반 정도 되었을 무렵이라 이게 뭐 하는 건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반면, 오히려 아내와 나는 막 신기해하며 핼러윈 이벤트를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한편, 핼러윈 데이 당일에는 내가 사는 동네의 다운타운에서도 핼러윈 이벤트가 열렸다. 우리도 미국에서의 첫 핼러윈을 즐길 겸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다운타운에 있는 모든 상점들은 문 앞에 사탕을 잔뜩 준비해두고,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 그려진 캔디 버킷(candy bucket)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공짜로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 세 식구도 손을 잡고 사람들을 따라 다운타운의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는데, 토쥬군의 캔디 버킷에는 순식간에 다운타운의 상점에서 나눠준 사탕과 초콜릿으로 가득 찼다. 여담이지만 당시는 아직 토쥬군이 사탕과 초콜릿을 먹기 전이라서, 결국 아들이 이날 받은 달콤한 과자들은 한동안 아내와 나의 훌륭한 주전부리가 되어주었다.


엄마와 함께 다운타운에서 무료 사탕을 고르고 있는 토쥬군


다운타운의 핼러윈 이벤트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준비한 아이들의 축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탕을 나눠주는 상점뿐만 아니라, 지역 소속의 소방관과 경찰관들은 아이들에게 소방차와 경찰차를 구경시켜주며 같이 사진도 찍어 주었다. 또 실제 운행하는 지역 버스도 한 대 광장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운전석에도 앉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평소에 입고 싶었던 특별한 복장을 입은 채 사탕 통을 들고 여기저기 신나게 뛰어다녔는데, 그 모습들을 보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도 꼭 핼러윈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 하루쯤은 이렇게 특별한 코스튬을 입고 신나게 놀면서 어딜 가든 맛있는 과자들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날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축제 분위기가 한창인 핼러윈 데이 당일의 다운타운 풍경


다운타운에서 놀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 우리 세 식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운타운에서 이미 공짜 사탕들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베풀 차례가 되었다. 곧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그 유명한 "Trick or Treat" 놀이를 할 것이다. 우리 집에 찾아올 아이들을 위해 우리 부부는 마트에서 미리 맛있는 캔디를 잔뜩 사놓고 준비를 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해가 지자 현관문을 "똑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은 여자 아이가 한 손에 캔디 버킷을 든 채 수줍어하며 "Trick or Treat"이라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웃으면서 미리 준비한 캔디를 아이의 캔디 버킷에 넣어주었다. 우리는 저기 뒤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아이의 부모와도 눈이 마주쳤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서로 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 없이 친한 친구들끼리 몰려와서 사탕을 받아가곤 했지만,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부모가 같이 따라와서 뒤에서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토쥬군은 왜 낯선 형이랑 누나들이 계속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며 사탕을 받아가는지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이제 토쥬군도 조금 더 크면 이 아이들처럼 동네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탕을 잔뜩 받아오겠지? 아까 우리와 눈이 마주쳤던 그 예쁜 여자아이의 부모처럼 우리도 토쥬군이 낯선 집의 문을 두드리고 사탕을 받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곳에 있는 동안 토쥬군이 경험하게 될 핼러윈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그 각각의 핼러윈마다 조금씩 더 자라 있을 토쥬군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결과적으로, 아들의 첫 핼러윈을 옆에서 구경하는 동안 핼러윈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어느새 기대감으로 바뀌게 되었다.   





* 개인적으로 Halloween은 '할로윈'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이 글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에서 추천하고 있는 '핼러윈'으로 표기를 통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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