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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4. 2018

미국의 의료보험

아들의 갑작스러운 고열로 미국에 온 지 3개월 만에 응급실과 소아과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병원의 하드웨어나 의료 서비스는 미국이 한국에 비해 확실히 우월했다. 하지만 미국의 뛰어난 의료 시설 및 서비스 이면에는 엄청나게 비싼 의료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의사를 한번 만나는 데에만 수백 불(십만 원 단위), 응급실에 한번 가게 된다면 수천 불(백만 원 단위), 수술이라도 하게 된다면 수만 불 이상(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의료비를 지출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의료보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래의 세 가지 기본적인 용어부터 알고 있어야 한다.

디덕터블(deductible)

코페이(co-pay)

아웃 오브 포켓(out-of-pocket)


디덕터블은 우리나라 자동차 보험의 '본인부담금'과 유사한 개념이다. 만약 자동차 사고가 나서 자신의 차에 물적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보험에 가입되어 있어도 일정액의 수리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미국 의료보험의 디덕터블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에서는 일단 디덕터블만큼의 비용을 본인이 지불한 다음에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본인의 보험의 디덕터블이 매년 $1,000이라고 하면, 본인이 병원에 지불한 금액이 $1,000을 초과한 순간부터 비로소 보험 회사가 의료비용을 지원하게 된다. 그래서 그전까지는 그냥 본인이 직접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매달 꼬박꼬박 의료보험료를 내면서 $1,000까지는 여전히 진료비를 또 내 돈으로 내는 게 미국의 의료보험이다. 그럼 도대체 왜 보험에 드는 걸까? 일단, 보험을 들게 되면 의료비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보험회사와 병원이 서로 미리 계약을 맺어서, 해당 보험에 가입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상 가격(?) 보다 할인된 금액(negotiated fee)으로 진료비를 청구한다. 즉, 내가 디덕터블로 내야 하는 의료비가 실제로는 할인된 금액이기 때문에 나름 "간접적"으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디덕터블이 낮을수록 본인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적어지는데, 다만 그만큼 매월 내는 보험료가 올라간다. 그래서 보험을 들기 전에 매월 보험료를 많이 내면서 디덕터블을 낮추는 게 좋은지, 아니면 보험료를 적게 내는 대신 디덕터블을 올리는 게 좋은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두 번째로 코페이는 병원에 한번 갈 때마다 디덕터블과 상관없이 반드시 내야 하는 돈이다. 예를 들어, 코페이가 $30이면, 병원에 가서 의사를 한번 볼 때마다 이만큼의 돈을 내야 한다. 그럼, 이건 왜 있는 걸까? 잘 생각해보면, 코페이는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 코페이가 없다면, 보험료의 본전(?)을 뽑기 위해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코페이가 있을 경우 병원에 갈 때마다 내 주머니에서 30달러만큼의 돈이 나가야 하므로, 정말 아플 경우에만 병원에 가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만든다. 말하자면, 코페이는 보험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막기 위한 보험 회사의 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웃 오브 포켓은 말 그대로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의 최대치를 말한다. 만약, 자신의 보험의 아웃 오브 포켓 금액이 $5,000이라고 하면, 매년 나는 딱 이 금액만큼만을 맥시멈으로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술을 해서 의료비가 $100,000(약 1억 원 이상)이 나왔다고 해도, 아웃 오브 포켓 액수인 $5,000(약 500만 원) 정도만 내면 되는 것이다. 사실, 미국 사람들이 디덕터블에도 불구하고 비싼 보험료를 지불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즉, 미국의 의료보험은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서 존재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 의료보험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디덕터블로 인해 자잘한 의료비용은 본인이 직접 부담을 하고, 대신 큰 비용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보험혜택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실제로 내야 하는 보험료와 디덕터블, 코페이, 아웃 오브 포켓 등은 해당 보험 상품이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인지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인지에 따라 또 달라진다. 


HMO와 PPO의 가장 큰 차이는 주치의(primary care doctor)의 유무인데, HMO은 반드시 주치의를 정해놓고 몸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주치의를 먼저 만나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 원하면 언제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본인의 보험 상품이 HMO라면 반드시 주치의로부터 추천(referral)을 받아야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단, 이때도 본인이 원하는 전문의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은(즉, in-network) 의사들 가운데 한 명에게 진료 의뢰를 부탁할 수 있다.  


반면, PPO는 주치의를 정할 필요가 없고, 본인이 원하는 의사에게 바로 찾아갈 수 있다. 다만, 이때도 해당 의사가 본인의 보험회사와 미리 계약을 맺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진료비가 달라진다. 만약 미리 계약을 맺지 않은(out-of-network) 의사라면 더 많은 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 개별 상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PPO는 본인이 선호하는 병원이나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대신, HMO에 비해 보험료와 진료비가 좀 더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HMO의 경우 반드시 주치의를 먼저 만나야 하고, 본인이 직접 전문의를 선택할 수 없는 대신, 디덕터블과 코페이가 없거나 굉장히 적은 액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HMO와 PPO의 차이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토마스 씨 가족이 가입되어 있는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ante)라는 보험 회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카이저는 대표적인 HMO인데, 보험 회사 자체적으로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카이저의 보험 상품에 가입하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일이 주치의를 정하는 것이다. 주치의는 카이저 병원에 소속되어 있는 내과, 가정의학과, 소아과 등을 전공한 의사 선생님들 중에서 고르게 되고, 몸에 문제가 생기면 예약을 해서 먼저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미국은 보험회사가 직접 이렇게 병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는 카이저 병원의 의료진들과 직원분들이 다들 친절해서 우리 가족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은 편이다. 다만 카이저 병원은 오직 평일에 정해진 시간에만 운영하기 때문에, 주말에 갑자기 아프거나 하면 진료를 받기가 굉장히 어렵다. 한 번은 주말에 토쥬군이 갑자기 열이 났는데 우리 동네의 카이저 병원은 문을 닫은 상황. 그래서 급히 근처에 있는 어전트 케어(urgent care) 한 곳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접수 데스크에서 카이저 보험은 안 받는다고 해서, 결국 한참 동안 운전해서 카이저 보험을 받아주는 어전트 케어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평소에는 잘 못 느끼는 HMO의 단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 HMO 보험 가입자들은 아무리 아프더라도 근처에 있는 아무 병원이나 못 가고 오로지 보험 회사에서 미리 정해놓은 병원만 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PPO는 상대적으로 병원이나 의사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PPO도 보험회사와 미리 계약을 맺지 않은 의사를 만나면 비용이 많이 나오게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가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에게 본인의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었는지(in-network) 여부를 재차 확인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현재까지 이해한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 제도의 특징이다. 이외에도 미국은 공적 의료보험으로서 노인층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Medicare)와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전 국민의 의료보험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미국에는 민간 의료보험과 공공 의료보험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무보험자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이런 의료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유명한 오바마 케어(Obama Care)인데,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의료개혁안을 통해 전 국민의 의료보험을 의무화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한 의료보험 비용의 상승과 여러 가지 부작용을 문제점으로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케어의 폐지를 시도했고, 현재도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이른바 '문재인 케어'와 관련해서 다양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론이 어떻게 나든 우리나라의 뛰어난 의료 접근성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보장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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