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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31. 2017

응급실 (하)


아침이 되어도 토쥬군의 열이 떨어지지 않자, 아내는 불안한 마음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응급실의 의료진은 고열 때문에 걱정이 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하라고 말했다. 우리는 추이를 좀 더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일단은 전날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소아과에서 후속 진료부터 받기로 했다.


아내는 응급실과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근처의 소아과로 전화를 걸어 진료 예약을 시도했다. 하지만, 예약은 쉽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소아과들마다 현재 어떤 보험을 갖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물어봤다. 우리는 한국 보험 회사의 이름을 불러주었는데, 처음 들어본 보험 회사라서 그런지 병원 측에서는 잠시 후에 자신들이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병원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토쥬군의 체온은 여전히 높았다. 이대로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까 전화를 주겠다던 병원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평소 같았으면 영어로 전화 통화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때는 달랐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토쥬군의 예약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은 분께 우리의 사정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가 지금 가입한 보험한국 보험인데, 혹시 나중에 진료비를  받을지도 모를까  걱정하고 있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보험은 제가 일단 병원에서 제 돈으로 진료비를 지불하고, 추후에 제가 보험 회사에 컨택을 해서 진료비를 청구하는 시스템이라서 병원 측에서는 아무런 걱정을  필요가 없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신용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할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가 지난밤부터 고열로 계속 고생하고 있어요. 응급실에서도 반드시 후속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아주시길 부탁드려요.


비록 서툰 영어였지만, 토마스 씨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나 보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전화 반대편의 병원 측 직원분이 알겠다면서 최대한 예약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통화 대기음.


5분 정도 지나자, 실제 진료 부서의 간호사 선생님에게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다시 한번 나는 그분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 예약이 꽉 차서 추가 진료는 어려운데, 의사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드려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5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간호사 선생님은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승낙을 해서, 기존의 예약들 사이에 토쥬군의 예약을 끼워 넣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소아과에 도착할 때까지도 토쥬군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접수 데스크의 직원분도 역시나 우리에게 가장 먼저 '보험'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데스크의 직원 분께 다시 한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험에 대해 설명한 뒤, 지금 바로 내 신용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하겠다고 말했다. 출력된 영수증을 받아 보니, 청구된 금액이 무려 200불이었다. 한국에서는 소아과를 한번 방문할 때마다 진료비로 5천 원 정도를 납부했던 것 같은데, 미국에서는 소아과 의사를 한번 만나는 데에만 거의 2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미국의 무시무시한 의료비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처음 방문해  미국의 소아과의 모습은 한국과는 달랐다. 한국의 경우, 진료실에 의사 선생님이 앉아 있고 순서가 되면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가 진료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독립된 진료실이 여러  있고 환자들은  진료실 가운데  군데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이 오길 기다리는 시스템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먼저 간호사 선생님이 간단한 문진을 하면서 개인 정보들을 컴퓨터에입력을 한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까지 독립된 진료실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비치된  같은 것을 읽으면서 기다리면 된다. , 한국은 환자가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방식인 반면, 미국은 의사 선생님이 환자를 만나러 오는 시스템인 것이다. 병원의 하드웨어나 서비스의 퀄리티는 미국 쪽이 확실히 우월했지만, 이런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비싼 의료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에서 배제당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2월, 토쥬군이 병원에서 주치의 선생님께 진료를 받는 모습


똑똑똑. 진료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료실로 들어온 의사 선생님은 똑똑하게 생긴 젊은 분이셨는데, 문을 열며 미소를 띈채 이렇게 말했다.


Did someone give a heart attack to his parents last night? (어젯밤에 누가 부모님의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했다면서요?)


의사 선생님의 이름은 클라라였다. 클라라는 하얀 가운 대신 단정한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꾸미지 않은 밝은 미소가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녀는 토쥬군을 보자마자 만화 캐릭터 스티커를 꺼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하면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지난밤에 응급실을 방문했던 것과 토쥬군이 고열로 열성경련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했고, 의사 선생님은 우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져온 노트북에 그 정보들을 하나씩 입력을 했다. 그리고 겁을 먹은 토쥬군을 안심시키며 진찰을 시작했다.


진찰 결과, 토쥬군의 고열의 원인은 이른바 '돌발진'이라고 불리는 로지올라(roseola)로 밝혀졌다.

2세 이하의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질병인데, 갑작스러운 고열이 특징이에요. 특별하게 약을 복용할 필요는 없고, 며칠 있으면 자연스레 열이 떨어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꺼예요.


다만, 열이 떨어지고 나서는 몸에 '열꽃'이라 불리는 발진이 피부에 생길 수 있는데, 이 열꽃도 금방 없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직장 선배들로부터 아이가 돌발진에 걸려 고생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토쥬군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통과 의례였구나’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다음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뚝 떨어졌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언젠가, 나도 토쥬군처럼 돌발진을 겪었을 테고 우리 부모님은 고열에 시달리는 나를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셨겠지. 신기하게도 돌발진으로 인한 토쥬군의 고열은 그동안 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의 깊이를 이국에서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엄마, 아빠 고마워요) 어쩌면, 이번 돌발진은 우리 부부가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했던 통과의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 집으로 응급실 진료비 청구서가 날아왔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액수였다. 다행히 모든 비용은 한국에서 가입한 유학생 보험을 통해 커버가 되었는데, 만약 보험이 없었다면 재정적으로  타격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미국 사람들이 그토록 건강에 신경을 쓰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저 응급실을 한번 방문해서 해열제 처방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진료비가 많이 나오는데, 보험 없이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정말 파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다들 그렇게 평소에 열심히 운동하면서  아프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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