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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19. 2018

故신해철

첫 번째 학기가 한창이던 2014년 10월의 어느 날.

오후 수업을 하나 끝낸 뒤,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꺼내 잠시 한국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신해철 사망'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포털 뉴스의 기사 제목에서 '신해철' 또는 '사망', 분명 둘 중 하나는 오타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클릭한 뉴스 기사는 “가수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한 때 나의 영웅이었던 신해철 님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니...


그날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며, 나는 아내에게 오늘 들었던 충격적인 신해철 님의 사망 소식을 허탈하게 전했다. 당시 우리는 저녁을 먹을 때면 스마트폰 어플을 스피커에 연결해서 MBC FM의 라디오를 듣곤 했었다. 그날도 우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이제 이루마 님이 진행하는 '골든디스크'의 오프닝 음악이 나올 차례였다. 그런데 그 날은 기존의 오프닝 음악 대신에 이루마 님이 신해철 님을 추모하며 피아노로 그의 음악들을 직접 연주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다가 그 피아노 연주들을 듣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아내와 아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던 나는 이내 키친 구석으로 도망치듯이 달려갔고 거기서 눈물을 훔쳤다. 오후에 뉴스 기사를 봤을 때는 그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라디오에서 예전에 내가 좋아했었던 그의 노래들이 이루마 님의 피아노 연주로 흘러나오는 것을 듣다 보니 그가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중학교 시절 나는 밤마다 넥스트의 음악을 들었다.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그랬듯이, 넥스트의 노래들은 당시 내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점과도 같았다. 특히 철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던 넥스트의 2집은 내게 삶과 그 너머의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나는 시간을 들여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즐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선생님에게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보충수업을 빼먹은 채 몰래 갔었던 넥스트의 해체 전 마지막 콘서트. 그날 콘서트장에서 관객들이 다 같이 무반주로 넥스트를 위해 불렀던 '영원히'라는 노래의 감동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남아있다. 이후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한동안 방황을 하며 모든 것을 원망했었던 그 때, 밤마다 넥스트의 'Hope'를 들으면서 받았던 수많은 위로들...


중학교 시절, 매일 밤마다 들었던 넥스트의 2집


이루마 님이 연주하는 신해철 님의 음악을 듣자, 잊고 있었던 그 모든 기억들이 한순간에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민물 장어의 꿈'이라는 노래는 박사 과정 1년차의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마치 10대 후반에 'Hope'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2014년 10월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진다.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신해철, "민물 장어의 꿈" 중


신해철 형님, 고마워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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