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마스 Jan 25. 2018

순댓국이 먹고 싶었어요 (하)

부제: 미국의 내비게이션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가장 큰 원인은 한국과 미국의 주소 체계가 다르고, 그로 인해 내비게이션의 구조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데 있었다. 한국의 경우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할 때 큰 카테고리에서 작은 카테고리로 좁혀서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를 먼저 찍고, 종로구-종로 1가-1번지 순으로 입력을 하면 된다. 그런데 미국은 주소가 건물 번호부터 시작해서 길이름-도시로 점점 넓어지는 구조이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할 때도 이 순서대로 입력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나와 애증의 관계인 가민의 내비게이션


예를 들어,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의 건물 번호가 123이고, 길 이름이 40th Street라고 하자.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가민(Garmin) 내비게이션의 경우 123과 40th Street를 차례대로 입력하면 그다음에 자동으로 도시 이름을 찾아서 보여주는데, 문제는 미국에 '40번가'가 수없이 많다는 데 있다. 그나마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들 위주로 40th Street라는 길 이름을 검색함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2-3곳의 도시가 검색이 되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순댓국을 먹으러 갔던 그날도 그냥 미리 적어온 주소를 아무 생각 없이 내비게이션에 입력했고, 거기서 제일 먼저 보이는 도시를 선택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길이 끊어진 황량한 초원 한가운데로 가버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주소를 찾아갈 수 있을까? 사실 해결책은 굉장히 간단하다. 처음에 주소를 입력할 때, 우편번호(Postal code)를 먼저 찍으면 된다. 하지만, 평소에 우편번호를 잘 사용할 일이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게 굉장히 낯설고, 특히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면서 우편번호를 먼저 누른다는 것은 더욱 생소하다.


참고로, 가민의 내비게이션은 주소를 입력하는 방식이 다음과 같이 3가지가 있다.

도시 이름 입력 (Spell City)

우편 번호 입력 (Spell Postal Code)

전체 검색 (Search All)


당시 나는 가장 아래에 있는 '전체 검색'을 눌러서 주소를 입력했는데, 이 경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비게이션이 같은 길 이름(예. 40th Street)을 가진 복수의 도시를 검색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나처럼 생각지도 못한 황무지로 가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섯 자리 숫자의 우편 번호를 입력하면 내비게이션이 가고자 하는 곳의 도시 이름을 자동으로 먼저 파악하기 때문에 길 이름이 똑같은 다른 도시로 갈 위험이 사라진다.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계속 '전체 검색'으로 주소를 입력했고, 가끔씩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곤 했다. (부끄럽지만, 그때마다 미국 내비게이션은 정말 형편없다고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주소를 검색할 때 우편번호를 먼저 찍는 게 좋다


다행히, 지금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때마다 우편 번호를 먼저 입력해서 잘못된 곳으로 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가장 가까운 길을 놔두고 항상 제일 먼저 나오는 갈림길로 가라고 하는 바람에 내비게이션에 대한 신뢰는 진작에 잃어버렸다. 그래서 낯선 곳에 갈 때는 항상 구글 맵으로 미리 알아본 뒤, 백업으로 내비게이션을 켜놓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구글 맵을 쓰는 게 제일 좋지만, 나는 통신비를 아끼기 위해 선불 요금제를 쓰고 있어서 밖에서는 웬만하면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시 순댓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타깝게도 순댓국은 그로부터 약 2년 뒤 여름방학을 이용해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먹을 수 있었다 (잠깐 눈물 좀 닦을께요). 영동대교 남단에 있는 '신의주 찹쌀순대'에서 그토록 먹고 싶었던 순댓국을 드디어 맛보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정말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정성을 다해 먹었던 기억이 난다.


2년 만에 순댓국을 먹었을 때의 그 감동이란...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은 내가 사는 곳 근처의 대도시에도 순댓국을 맛있게 하는 한국 식당이 한 군데 생겼다. 그래서 순댓국이 정말 먹고 싶어 지면 차로 고속도로를 50분 정도 달려 그곳에서 순댓국을 먹고 온다. 순댓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왕복으로 거의 두 시간을 써야 하지만, 그래도 먹고 싶을 때는 언제든 순댓국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제는 미국에서도 순댓국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음


예전에는 몰랐지만 순댓국은 정말 위대한 음식인 것 같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순대지만, 어떻게 순댓국은 더 맛있는 걸까. 미국에 와서야 나는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순댓국 맛집 투어를 하리라.


작가의 이전글 순댓국이 먹고 싶었어요 (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