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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22. 2018

순댓국이 먹고 싶었어요 (상)

미국에 오고 난 뒤, 가장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그래서 첫 학기 중간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하루 날을 잡아 짜장면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주말이면 짜장면과 탕수육 세트를 시켜놓고 무한도전을 보던 우리였기에 미국에 오자마자 이른바 '짜장면 금단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짜장면 다음으로 먹고 싶어 진 음식은 좀 의외였다. 신기하게도 짜장면을 먹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순댓국이 계속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미국에 오기 전, 순댓국을 종종 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먹자고 하면 같이 따라가서 먹는 정도였지, 짜장면처럼 정기적으로 먹어줘야 하는 메뉴는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에 온 지 몇 개월이 지나 불쑥 순댓국이 먹고 싶어 졌을 때는 혼자서도 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날이 갈수록 순댓국을 향한 갈증은 커져만 가는데, 정작 내가 사는 곳에서는 순댓국은 고사하고 순대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자동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한식당이 하나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곳에서는 갈비탕도 판다고 하는데 순댓국이 메뉴에 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번 가보기로 했다. 순댓국이 없으면 갈비탕이라도 먹고 온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첫 학기에는 금요일에 아무 수업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 세 식구는 지난번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을 때처럼 금요일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서 출발했다. 일단 내비게이션에 미리 알아온 식당의 주소를 입력한 뒤, 한국 가요를 들으며 기분 좋게 식당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은 처음 가보는 도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화창한 가을 날씨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들을 즐기다 보니, 마치 나들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이제 몇 분 뒤면 식당이 나온다고 하는데, 자동차 앞유리로 보이는 모습은 전혀 식당이 있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거라곤 넓디넓은 시골의 초원이었다.


아니, 한식당을 이런 곳에 만들면 장사가 되려나...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드는 한편, 과연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에서 가르쳐주는 목적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걱정은 점점 불안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급기야 목적지 도착 1분을 앞두고는 내비게이션이 비포장 도로로 우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는데 마땅히 돌아갈 길도 없어서 일단은 시키는 대로 가보기로 했다. 비포장 도로로 들어서자, 갑자기 반대편으로 커다란 트럭들이 지나가더니 곧이어 우측으로 아주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났고, 수많은 중장비들이 땅을 깊숙이 파 들어 간 모습이 보였다. 왠지 오래전에 '엑스 파일(X-file)'이라는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그런 풍경이었다.


이윽고, 우리 앞에는 "Road Closed"라는 친절한(?) 입간판이 나타났고, 나는 끊긴 길 옆의 공터에 급히 차를 세웠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초원, 그리고 그 위에 휑하니 세워져 있는 차 한 대. 차 안에서 아내와 나는 말문이 막혔고, 이내 어이없는 웃음만 나왔다. 당시 우리가 가진 휴대폰은 셀룰러 데이터가 되지 않던 터라, 인터넷으로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작은 공항이 하나 보였다.

마치 영화처럼 "Road Closed"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마도 내가 아까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잘못 입력했던 것 같다. 아내와 아이에게 나의 실수를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다시 입력했다. 다행히 10분 정도만 더 가면 되는 걸로 나왔다.


아들, 배 고프지? 미안해. 아빠가 빨리 운전해서 갈게. 가서 우리 맛있는 거 먹자.


차를 돌려 아까 봤었던 거대한 공사장을 다시 한번 지나치게 되었는데, 문득 낮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밤에 실수로 이 길로 들어왔었다면 진짜 무서웠을 것 같고, 어쩌면 엑스파일에서처럼 어떤 미스터리 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을까, 막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차가 큰길로 다시 접어들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내비가 시키는대로 갔을 뿐인데, 막 황량한 초원이 나왔고....


그런데, 10분을 달려 내비게이션이 말한 곳 근처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당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초행길에 운전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실수로 차선을 잘못탄 바람에 이상한(?) 고속도로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고속도로는 아무리 달려도 출구가 나오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은 그냥 계속 달리라고 하는데, 이제 더 이상은 이 내비게이션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보이는 출구로 나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네가 나타났다. 백미러를 통해 토쥬군의 얼굴을 슬쩍 보니, 짜증과 배고픔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40분이면 도착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출발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 있었다.


아내는 그냥 한식당은 포기하고, 가까운 데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토쥬군한테 뭘 좀 먹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근처에 보이는 자그마한 몰(mall)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행히 익숙한 파네라 브레드(Panera Bread)의 간판이 보였다.


1시간 30분을 달려, 결국 우리집 앞에도 있는 파네라에서 점심을....


결국 우리는 이날 순댓국은 고사하고, 우리 동네에도 있는 파네라에서 파스타와 빵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모로 가족들에게 면목 없던 날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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