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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24. 2016

추천서와 인간관계 (상)

한국 대학원과 미국 대학원 입시의 가장 큰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추천서가 아닐까?


미국 대학원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 학교마다 보통 3장의 추천서가 필요한데, 이 3장의 추천서를 받는 게 생각보다 힘들다. 예를 들어 20곳의 학교에 지원하려고 한다면, 추천서를 써주시는 분들이 각각 무려 20곳의 학교에다가 추천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추천서를 써주시는 분들 입장에서도 추천서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일단 각 학교로부터 총 20통의 메일이 올 것이고, 링크를 클릭하게 되면 각 학교 양식에 맞춰 학생을 평가하고, 최종단계로 추천서 파일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추천서를 부탁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나중에는 추천서 때문에 지원학교 숫자가 제한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분들은 추천서를 써주실 수 있는 학교 개수를 제한한다던지.) 만약 한분이 기꺼이 모든 학교를 써주신다고 하면 그건 정말 감사할 일이지만, 만약 그게 여의치 않으면 어떻게든 추가로 추천서를 써주실 분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을 통해 미국 추천서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미국 대학원 입시에서 추천서의 힘은 의외로 엄청나다. 특히나, 학계에서 유명한 분으로부터 강력한 추천서를 받게 되면, 학점이 낮더라도 탑스쿨에 합격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유명한 대가(예를 들면,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추천서 받기가 어쩌면 탑스쿨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 좀 함정이긴 하다.


토마스 씨의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직장 상사 한 분, 석사 지도교수님  두 분, 그리고 미국 정부 연구기관에서 근무 중이신 박사님  두 분, 이렇게 총 다섯 분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나처럼 한국에서 계속 살아오고, 한국에서만 학교를 다닌 사람이 미국에 있는 분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내가 미국에 계신 두 분의 박사님으로부터 추천서를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그분들을 알게 되었고, 또 지속적으로 그분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유지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편의상 두 분의 박사님을 만난 순서를 기준으로 A박사님과 B박사님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먼저, A박사님에 대한 이야기.

A박사님을 만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학회 참석차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었는데, 토마스 씨가 참여한 분과에서 별도로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분과에는 한국사람은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서 괜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이것도 경험이지'라는 생각에 만찬에 참석하겠다고 미리 신청을 했다.


식사 당일, 시간을 딱 맞춰서 레스토랑에 갔더니 이미 룸에 있는 테이블이 다 만석이다. 비어있는 자리라고는 입구 쪽에 있는 2인석. 할 수 없이 그 2인석 테이블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야만 하는 상황. 다른 테이블에서는 다들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구 하나 '왔냐?'는 말도 없고, 혼자서 그렇게 쓸쓸히 테이블에 홀로 앉아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순간, '난 누구고, 여긴 어디고, 이렇게 혼자서 비싼 밥 먹을 거면 그냥 호텔방에서 컵라면 먹는 게 낫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구세주가 한분 나타났으니, 바로 A박사님이었다. 나보다 몇 분 늦게 식당에 도착한 A박사님이 자연스레 내 테이블로 오며 '여기 앞에 앉아도 되느냐?'라고 물어보셨다. "물론이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오더라.


A박사님과 나는 우선 간단히 각자 자기소개를 했는데, A박사님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는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알고 보니, A박사님은 자녀 2명을 입양했는데 첫째 조슈아가 한국 출신이었다. 그래서인지 A박사님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도 여럿 들려주었다.


(예를 들면, 인천공항에서 이태원 가는 버스를 찾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태원 가는 버스가 없더라고... 알고 보니 A박사님이 찾았던 버스는 "ET1"행 버스. A박사님 말씀으로는, "이리원"이 실제로는 "이태원"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셨다고...)


대화를 하다 보니, A박사님이 조슈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낚시를 좋아하는 조슈아를 위해 미국 전역의 유명한 낚시 명소를 함께 다니며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A박사님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메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함께 조그마한 한국 전통 기념품을 선물로 함께 보내드렸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3년 여름, 시애틀에서 열린 학회에서 다시 A박사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A박사님이 학회 장소 밖에서 따로 만나서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먼저 말씀을 하셨다. 1년 만에 A박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고, 마침 당시는 토마스 씨의 아들(a.k.a. 토마스 주니어=토쥬)이 태어난 지 불과 2개월 정도 된 시점이라 아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A박사님께 보여드리기도 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히 당시 내가 고민하고 있던 연구 주제에 대해 A박사님은 냅킨에다가 직접 그래프까지 그려주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셨다. 그리고 바로 동료에게 메일을 보내서 나한테 관련 데이터들을 좀 보내주라고 부탁까지 해주시고.


냅킨 위에 A박사님이 그리신 그래프와 설명들


하지만 이날 무엇보다도 내가 감동한 것은 A박사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그래도   약속 장소에서 A박사님을 만났을 ,  손에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들고 계시길래 어디서 쇼핑하시고 오시는 길인가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일부러 나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커다란 봉투를 워싱턴 D.C. 에서부터 친히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A박사님이 선물로 주신 펜타곤 사진과 그 위에 친필로 써주신 메세지

 

만약, 2012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저녁식사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었다면 과연 A박사님과의 이런 인연이 가능했을까?



* 여기서 반전 하나: A박사님은 몇년 뒤에 미국  정부 부처의 차관보가 되셨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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