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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25. 2016

추천서와 인간관계 (하)

B박사님을 알게 된 것도 학회를 통해서다.


2013년 시애틀에서 열린 학회에서는 우리 분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Korean Dinner'를 준비했었는데, 토마스 씨가 이 행사의 호스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나는 시애틀에 살고 있는 아는 선배에게 연락을 드려 괜찮은 한식당을 소개받아 미리 자리를 예약을 했고, 분과 사람들에게 전체 메일을 돌려 선착순으로 신청하는 사람들 15명 정도를 초대하기로 했다. 당시 반응은 매우 뜨거웠는데, 나중에는 간발의 차이로 15명 안에 못 들어간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내야 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식사 당일 나는 행사의 호스트로서 내 주변 테이블에 앉게 된 분들께 주문한 한국음식들에 대한 소개를 하고, 그분들과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당시 B박사님은 내 맞은편에 앉아 계셨는데, KFC 할아버지를 닮은 푸근한 인상에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게 하셔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A박사님처럼, B박사님과도 학회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유지했고, 추천서를 써줄 분들을 찾아 여러모로 고민이 많았을 때, 혹시나 싶어 B박사님께 메일을 통해 조심스레 혹시 추천서를 써줄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셔서 무척 감사했었다.


앞서의 글에서 말한 것처럼, 미국에서 추천서는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도 매우 신중한데, 혹여라도 추천서에 기술된 내용과 그 사람의 실제 모습에 차이가 있다면, 그 추천서를 써준 사람의 신뢰도도 떨어지게 될 테고, 더불어 앞으로 자신의 레퓨테이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추천서 작성은 객관적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A박사님과 B박사님도 내게 이런저런 객관적인 정보들을 요구하셨는데 (예를 들어, GRE 점수, 논문 샘플 등) 토마스 씨는 그 모든 자료들을 하나의 책으로 제본을 해서, 두 분께 국제우편으로 보내드렸었다. 당시 일부 학교들은 이력서(CV)와 학업계획서 외에 성장과정 등을 담은 자기소개서를 요구했었는데, 토마스 씨는 고등학교 시절에 한동안 방황했던 이야기와 그 이후 극복 과정 등을 담담하게 자기소개서 서론에 써내려 갔었다.


B박사님께 아마 그 이야기가 많이 와 닿았던 것 같다. 내가 보낸 포트폴리오를 읽어보시고는 바로 아래와 같은 내용의 메일을 내게 보내주셨다.


"I must say that I am extremely impressed by your biographical statement. You overcame very substantial obstacles; I think admissions committees will be impressed. Personally I am from a fairly poor family (my father worked in the Post Office after failing as a lawyer during the Depression) and managed to get into MIT, but not in quite the hyper-competitive environment of Korea. So your story resonates."


아마도 나의 이야기가 B박사님 당신이 직접 겪으셨던 유년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었던 것 같고, 덕분에 B박사님과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드미션 프로세스 내내 지속적으로 상황을 체크해주시고, 어드미션을 받고 나서는 본인의 인맥들을 활용해서 어느 학교를 가는 것이 좋을지 계속 정보도 제공해주시고, 여러모로 어드미션 프로세스 내내 B박사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4월 중순, 가게 될 학교가 정해지고 나서 B박사님께 나의 결정에 대해 말씀드렸을 때도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며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다. (사실, 나는 B박사님이 추천해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 5월 초에 서울에서 열린 학회 참석 차, B박사님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동안 받은 여러 가지 도움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박사님을 토마스 씨네 집으로 초대했다. 박사님께 아내와 토쥬군도 소개하여드리고, 아내가 준비한 한국 음식도 맛 보여 드리며, 우리는 한참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가 끝날 즈음, B박사님이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미리 준비해오신 선물들을 꺼내셨다.


백악관 운동복 (혹시 오바마 대통령도 같은 옷을 입고 운동할지도...?)
백악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오너먼트 앞면에는 백악관 전경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7년에 의회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분이 새겨져 있다


B박사님의 아내분이 미국 행정부 모 부처의 고위직에 계시다 보니, 준비해오신 선물들이 전부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선물까지도 세심하게 준비해오신 B박사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편, 5월 중순에는 A박사님 가족들도 한국에 방문하게 되었다. A박사님 부부가 조슈아를 입양했었던 홀트 아동복지회를 조슈아와 함께 가서 그곳에서 입양을 도와주신 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겸사겸사 조슈아에게 한국의 문화도 경험하게 해주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무한도전에 '홀트 아동복지회'가 나왔을 때 자연스레 A박사님과 조슈아 생각이 나더라.)


당연히 A박사님 가족도 토마스 씨네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식사도 하고, 한강 산책도 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함께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실제로 본 조슈아는 조금은 내성적이면서도 굉장히 똘똘한 아이였는데, 할아버지 (A박사님의 아버지)처럼 나중에 커서 법조인이 되겠다는 조슈아의 야무진 모습과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A박사님 부부의 모습이 왠지 마음이 짠하더라.




사실 처음 A박사님과 B박사님을 만났을 때는, 이분들께 추천서를 부탁드리고, 또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지금까지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었다. 만약 그때 내가 이분들과 만나고 나서 아무런 연락도 안 드리고 그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끝이 났었다면 어땠을까? 이분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어플라이를 준비하면서도 추천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주 조그마한 인간관계가 훗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만남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유지하는 것. 그러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어느 시점에, 그것이 보석처럼 우리 삶에 반짝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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