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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28. 2016

비자 발급 (상)

4월 중순, 가야 할 학교를 정하고 나니 일단 뭔가 마음이 후련하긴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몇 개월 뒤면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그다지 몸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주변에도 '저 공부하러 멀리 가요'라고 말하기가 좀 애매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5월 초쯤, 학교에서 보내준 공식적인 입학허가서와 I-20를 페덱스로 받고 나니, 정말 공부하러 떠나는구나 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I-20는 비자 발급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양식인데 문서에는 학교 이름, 전공, 재정지원 내역, 재학 허가기간 등이 나와 있으며, 동반하는 가족 1인당 하나의 문서를 발급받게 된다. 토마스 씨의 경우, 아내와 토쥬군의 I-20까지 총 3개를 받았다.


I-20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비자 발급 신청이다. 보통 5월부터 7월까지가 유학생들의 비자 발급 성수기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인터뷰 날짜가 뒤쪽으로 계속 밀려나서 원하는 시기에 출국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토마스 씨도 마음이 괜히 조급해져서 I-20를 받자마자 비자 인터뷰 신청을 서둘러 끝내고자 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입력해야 하는 양식이 어찌나 꼼꼼한지, 아주 세세한 정보들까지 하나하나 입력을 해야만 했다. 더구나 토마스 씨는 아내와 아이 몫까지 3명분을 입력해야 했고, 모든 정보가 완벽하게 입력되기 전까지는 인터뷰 신청이 가능한 날짜를 열람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비자 신청 사이트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도 덩달아 커지게 되더라.


특히 사진이 복병이었는데, 미국 비자는 특이하게도 사진 사이즈가 일반적인 증명사진이랑 달라서 미국 비자만을 위해 따로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규격 사진을 업로드하기 전까지는 비자 인터뷰 신청도 불가능했는데, 그러고 보니 토쥬군은 아직 여권도 없는 상태였다. 그 순간, 당시 막 첫돌을 맞이하고 있는 토쥬군을 데리고 증명사진을 찍으러 갈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더라. 또 한창 육아 때문에 집에서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고 있는 아내도 따로 증명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비자 사진 하나를 찍기 위해 세 식구가 하루 날을 잡고 밖에 나가 사진을 찍기에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도 컸다.


그 무렵, 토쥬군이 한번 외출하기 위해서는 낮잠 시간을 절묘하게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 한 번의 외출을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준비물들이 필요했고, 사진관까지 무사히 이동하는 것도 문제, 사진 찍기 싫어할 토쥬군을 달래며 억지로 사진을 찍는 것도 문제였다. 사진이 인화되기까지 또 기다려야 하고, 그걸 다시 파일로 받아서 업로드하는데 또 시간이 걸리고... 결국 한창 컴퓨터로 인터뷰 양식을 작성하다가, 머리를 부여잡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토마스 씨 : 나 지금 비자 인터뷰 신청하고 있는데, 토쥬군 여권이랑 비자 신청하려면 증명사진이 필요한데.. 어떡하지? 이거 빨리 신청 안 하면 인터뷰 날짜가 뒤로 계속 밀린대... 아무래도 다 같이 사진 찍으러 가려면 내가 최대한 빨리 하루 휴가를 내야 할 것 같은데...


토쥬맘: (뒤편으로 토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음.. 토쥬군 데리고 과연 사진 찍으러 갈 수 있을까? 내가 집에서 한번 찍어볼게.


예상치도 못한 답변에 살짝 놀란 토마스 씨.


토쥬맘의 비자 사진은 내가 퇴근 후에 찍어주기로 하고, 일단 토쥬군의 사진은 토쥬맘에게 맡겨 놓은 상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토마스 씨는 비자 신청을 잠깐 잊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편, 다행히도 토마스 씨의 비자 사진은, 직장에서 쓰는 프로필 사진으로 대체가 가능했다. 감사하게도, 행정실에서 사진을 관리하시는 분께서 기존에 찍었던 내 프로필 사진을 미국 비자사진 규격에 맞게 수정해서 파일로 보내주신 것이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아내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오빠. 내가 일단 사진은 찍었으니까, 집에 와서 포토샵으로 수정만 좀 해줘"


아내가 집 앞 마트에서 하얀색 하드보드지를 사 와서 토쥬군을 소파에다가 앉히고, 집에 있는 DSLR의 셔터를 연사로 막 누르면서 그중에서 그나마 가장 그럴듯한 사진 하나를 골라서 보내줬다.


아내가 보내준 사진을 열어보니,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토쥬군의 얼굴 표정과 입 주변에 묻어 있는 음식 자국까지... 정말이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사진 중에 가장 웃긴 사진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아내와 아이가 들였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니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더라.


그날 퇴근 후에는 토마스 씨가 아내의 증명사진을 찍어줬다. 아까 낮에 토쥬군이 그랬던 것처럼, 아내도 하얀색 하드보드지를 배경으로 소파에 앉았다. 따로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토쥬군을 보면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우리는 한참을 웃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또 적잖은 추억이 되더라.


아무튼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약간의 포토샵을 거쳐 그럴듯한 증명사진으로 거듭 태어났고, 인터넷으로 인화 주문을 해서 무사히 토쥬군의 여권 발급 및 비자 인터뷰 신청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요즘도 이따금 우울할 때면 토쥬군의 이 증명사진을 꺼내보는데, 정말 효과가 100%이다. 기분이 안 좋다가도 이 사진만 보면 나도 몰래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진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들께도 꼭 한번 시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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