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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Dec 29. 2016

비자 발급 (하)

토마스 씨네 가족의 인터뷰 날짜는 6월 초로 정해졌다. 오전 첫 타임으로 인터뷰를 신청해서, 직장은 하루 휴가를 내고, 인터뷰 당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세 식구가 외출 준비를 했다. 광화문 미국 대사관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는데, 출근시간에 집에서 광화문까지 가는 길의 도로 상황이 어떤지도 몰랐고, 대사관 근처에 마땅히 주차할 장소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 토쥬군과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꽤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것이어서 미리 준비해야 할 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차가 많이 밀리면 어떡하나, 토쥬군이 택시 안에서 울면 어떡하나 등등.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서둘러서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더니, 한창 출근시간이어서 그런지 택시 잡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뷰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택시는 계속 안 잡히고, 아내는 토쥬군을 아기띠로 안고 하염없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고. '지금이라도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와야 하는 건가'라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찰나, 다행히 택시가 잡혔다. 걱정과는 달리, 우리가 탄 택시는 남산터널을 순조롭게 통과해서 시내까지 금방 도착했고, 토쥬군도 다행히 택시 안에서 울지 않고 착하게 엄마 품에 안겨있어서 가는 내내 평화로웠다.


택시 기사님이 미국 대사관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시길래, 간단히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기사님이 '미국에 가서도 토쥬군 한국말 까먹지 않게, 한글은 꼭 가르치라'는 조언을 해주시더라. 당시에는 사실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미국에 오고 나니 그분의 말씀이 계속 기억이 난다. 아마도, 막상 외국에 나와보니 낯선 나라에서 아이에게 우리말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광화문에 무사히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런데 벌써 대사관 앞에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 시간에 예약한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실제 인터뷰를 보기까지는 한참 기다려야겠구나,라고 상심하며 우리는 줄의 제일 끝트머리에 서게 되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으니... 비자 발급 관련 전단지를 나눠주시던 분께서 토쥬군을 안고 있는 아내를 보고는, 아이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먼저 입장할 수 있다면서 우리를 줄의 맨 앞으로 데리고 가셨다. 아... 그 순간, 얼마나 그분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분 덕분에 우리는 아이를 동반한 다른 가족들과 함께 대사관 문이 열리자마자 가장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사실 학생 비자(F-1)의 경우, 박사과정 진학생들은 별문제 없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 만에 하나 생각지도 못한 돌발변수 때문에 혹시라도 비자 승인이 거부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이 거부되면, 학교로부터 입학허가를 받았더라도 정작 미국으로 출국을 못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자 발급 거부로 인해 다시 인터뷰 신청을 하게 되면, 수수료도 다시 납부해야 한다. 토마스 씨네의 경우 가족이 3명이라서 인터뷰를 다시 보려면 5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또 내야 하는데, 이런 엄청난 추가 비용 및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한 번에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자 거절을 받은 경우들이 심심치 않게 있긴 했지만, 그다지 큰 걱정은 안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보려고 대기하고 있으니 조금 긴장은 되더라.


참고로, 비자 인터뷰는 오픈된 장소에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앞에서 면접을 보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을 어쩔 수없이 듣게 된다. 공교롭게도 토마스 씨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인 여학생이 그 자리에서 비자 발급이 거절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여학생은 거절 결정 이후에도, 본인은 반드시 미국에 가야 한다고 면접관에게 하소연을 했는데, 면접관은 매정하게 모른 척을 하더라. 결국 그 여학생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걸음을 돌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이런 아빠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토쥬군은 의자 위에서 막 장난을 치며 떠들고 있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나는 아내와 토쥬군과 함께 인터뷰 부스 앞에 섰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공손한 자세와 온화한 얼굴 표정으로 변신한 토마스 씨.


걱정과는 달리, 질문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만, 면접관이 내게 토쥬군의 생년월일과 아내의 출생 도시를 물어서 살짝 놀랐었다. 짐작컨데, '위장 결혼' 등으로 미국에 입국하는 걸 막기 위한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세상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곧이어 면접관은 우리에게 비자가 부착된 여권이 며칠 내로 집으로 배송될 거라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무사히 비자 인터뷰는 끝이 났다.


대사관 밖으로 나와보니 아직 오전 9시도 안된 시간. 생각보다 금방 끝난 인터뷰를 기념하며 좀 촌스럽지만 세종대왕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한번 찍고. 토쥬군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세 식구가 함께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마신 뒤 여유롭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비자 인터뷰를 일찍 끝내고 나와서 기념사진 한장!



며칠 뒤 비자가 부착된 우리 세 식구의 여권이 택배로 도착했다. 비자를 받고 나니, 이제 정말 미국에 간다는 것이 실감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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