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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마스 Jan 05. 2017

짐 정리

비자를 발급받고 나니, 어느새 출국까지는 한 달 조금 넘게 남은 상황. 이제 나가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에, 이때부터 부지런히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 미국에 가져갈 짐과 2) 한국에 두고 갈 짐, 그리고 3) 버릴 짐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아이템별로 분류를 해보면,


일단, 하루 날을 잡아 아내와 함께 옷장 정리를 시작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옷장에 옷은 가득하지만, 정작 입을 옷은 없는' 미스터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존재가 한동안 잊혔던 옷들이 옷장 구석구석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른바 '패스트 패션'의 폐해와 어느덧 그 속에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싫증을 느끼는데 익숙해진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더라. 그렇게 아내와 나는 몇 시간에 걸쳐 가져갈 옷과 버릴 옷들을 분류했는데, 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샀었던 옷들과 가방들을 아파트 1층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서 다시 한번 반성했다.



그다음은 책을 정리했다. 대학 시절부터 틈만 나면 책을 사모았던지라, 토마스 씨네 집 책장에는 꽤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외국에 있는 동안은 부모님 댁에 보관하기로 했지만, 이 많은 책들을 전부 다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책장에 있는 책들도 1) 보관용과 2) 처분용으로 분류를 했다.


일단 원서나 인문/사회과학책들은 되팔기도 애매하고, 나중에 참고문헌으로 사용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대부분은 '보관용'으로 분류를 했다. 소설은 원서가 아닌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번역본들이 나오기 마련이어서 미련 없이 대부분의 책들은 '처분용'으로 분류를 해서, 온라인 중고서점에 매물 등록을 했다. (덕분에 팔린 책들을 택배로 보내기 위해 편의점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게 되었다.)


보관용으로 분류된, 영국 빈티지판 무라카미하루키 시리즈를 포함한 영어로 된 소설들
역시 보관용으로 분류된, 한길사, 까치글방, 문예출판사, 민음사 등의 인문학 서적들
슬램덩크 오리지널 전집도 당연히 보관용으로
드래곤볼 오리지널 전집도 무조건 보관용으로.
마지막까지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결국 부피를 줄이기 위해 파는 것으로 결정.


CD

다음 순서는 CD. 어쩌면 책보다도 내게 더 소중한 컬렉션은 CD라고 할 수 있는데, 크게 1) 클래식과 2) 재즈 -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일단, 클래식 CD들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 장 한 장 공들여서 모아 왔던 아이들이라 저마다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추억들을 그 속에 품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소장하며 토쥬군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반면, 재즈 CD들은 점점 클래식 음악에 대한 피로도가 올라가던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특히나 일본에 들를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힘든 레어템들 위주로 사모은 것이다 보니, 클래식 CD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큰 애착을 갖고 있는 녀석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CD들을 다 데려갈 수는 없어서, 어떤 식으로든 '가져갈 아이'와 '놓고 갈 아이'들을 분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클래식과 재즈 가운데에서 각각 일부만 추려내기가 애매해서, 결국은 지금 당장 손이 더 자주 가는 재즈 CD들만 가져가는 걸로 결정했다.


클래식 CD이지만, 토쥬군을 위해 특별히 챙긴 DG 모차르트 시리즈
그리고 이 무렵 가장 많이 들었던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따로 빼놓았다.


그 외의 것들

가구와 가전제품은 양가 가족들에게 적절히 배분해서 나눠드렸다. 토쥬군의 유아 용품과 그 외 잡다한 물건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인터넷 중고장터에 올려서 팔기로 했다.


한 때 열을 올리며 모았던 맥주 전용잔들도 눈물을 머금고 중고나라를 통해 판매를 했고
한 때 특유의 색감에 이끌려 구입한 펜탁스 MX를 비롯한 필름 카메들도 처분
갑자기 어릴 때 했던 오락실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구입하고는, 결국 한두번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조익스틱도 처분.


생각보다 이렇게 중고나라에 올린 물건들은 쉽게 쉽게 팔려 나갔는데, 토마스 씨가 사용한 '시세보다 조금 싸게 드리는 대신, 직접 와서 가져가세요' 전략이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물건들이 팔려 나갈수록 집안 곳곳에 빈자리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미국으로 짐 부치기

다행히도 학교 아파트에 입주가 일찍 결정된 덕분에, 미리 미국으로 짐을 부칠 수 있었다. 참고로, 토마스 씨는 우체국의 선박 편 택배를 이용했는데, 흔히 사용하는 우체국의 EMS는 항공편이라서 택배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 따라서, 토마스 씨처럼 한꺼번에 많은 짐을 보내야 하는 사람에게는 우체국 선박 택배가 제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배달되는 데까지는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므로, 미리 시간을 계산해서 보내야 하는 것이 주의할 사항이다.


아무튼, 우리는 마트에서 얻어온 박스들에 '보내는 짐'으로 분류된 물건들을 차곡차곡 넣으며 하나씩 하나씩 포장을 했다. 가자마자 사용해야 할 물건들(숟가락, 젓가락, 그릇, 냄비, 토쥬군 용품 등)은 여행용 캐리어에 넣어가기로 했고, 그 외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도착해도 무방한 물건들 위주로 박스에 포장을 했다. 하지만, 최대한 부피를 줄인다고 줄이는데도 박스의 개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결국 총 13개의 박스를 여러 차례에 나누어서 미국으로 보내게 되었다. 택배를 보내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항공택배와는 달리 선박 택배는 분실률이 다소 높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보내면서도 다소 걱정은 되었다.

상자들아. 우리 두달 뒤에 미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려, 그때 무거운 택배 상자 옮기는 것도 도와주시고, 공부 잘 마치고 돌아오라고 응원해주셨던 우리 동네 우편취급소 소장님 및 창구 직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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