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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18. 2021

먹기 위해 산다 #3

내 감정을 만들어 내는 너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많은 돈? 다양한 친구들? 좋은 직장? 강한 권력? 다양한 취미? 화목한 가족관계? 풍부한 경험들? 예쁘거나 잘 생긴 외모? 뛰어난 머리? 건강? 꿈?


아마도 쭉 나열한 조건들은 능력만 된다면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먼저 준비할 것은 아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듣고 나면 헛웃음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단 한번 살 수 있는 기회만 주어져 있기 때문에 그런 식의 인정은 결국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이다.


너무나 중요한 무엇인가를 단 한번 할 수밖에 없어서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될 때, 그것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해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불안감과 절망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이라면? 단 한 번의 기회로 주어지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 그 자체라면 어떨까?


우리는 불행을 실패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불행한 사람은 실패한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삶을 실패하기 두려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그 덕분에 우리들 모두는 자신의 행복에 관해서 만큼은 너무나도 심할 정도로 긍정적이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왜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조차도 본인은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행복하려고 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삶의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더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놓치고 있고, 그로 인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단순하게 나의 불행지수를 따져보자.


1. 만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혼자 놀기도 잘 못한다.)

2. 친구를 만나 하는 대화 내용이 주로 나에게 일어난 안 좋은 일이거나 남에 대한 불만이다.

3. 가끔 외롭거나 지루함을 느낀다.

4. 밝은 이야기보다 어두운 이야기에 끌린다.

5.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가식적이거나 그렇게 보이려고 연기를 하는 것 같다.

6. 누군가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한참을 생각해 봐야 한다.

7. 가끔 여행이라도 해야 답답한 속이 풀린다.

8. 매일 일상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9. 아주 가끔은 활짝 웃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10. 뭔가를 더 새로운 것을 배워서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


딱히 과학적 근거가 있는 항목들은 아니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없다. 단지, 여러 항목에 해당된다면 자신이 불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 혹시나 ‘대단한 걸? 만점이다!’라고 하더라도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내려올 만큼 다 내려왔으니 이제 올라갈 길만 남은 것이다. 단지 올라가고 싶다는 의지는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의지의 방향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지금 믿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돈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해서,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불행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남이 행복하다고 추천해 준 것들을 하고 살아서 그런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칭찬해주는 것들을 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내 행복에서 ‘남’을 제거하는 해야 한다.


내 행복의 기준점을 타인에게 맞추면 맞출수록 그 난이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실현되었을 때 얻어지는 행복도 그리 높지 못하다. 좋긴 좋지만, 가성비가 별로이다. 그래서 행복의 여정을 떠나기 전에 먼저 내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해 내야 한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또다시 엉뚱한 길로 빠진다.


시작부터 난감하다.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구분해 낼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와서 이제는 내가 가진 욕망이 내 것인지 아니면 타인으로부터 온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다.


답답한 문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구분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욕망과 타인으로부터 온 욕망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출발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오롯이 나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면 내 것이고, 그것이 타인의 감정인, 그들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면 타자의 것이다.


가을 단풍이 가득한 산에 올라서 그 예쁜 풍경을 볼 때 기분이 몹시 좋다. 이것은 온전히 나로부터 출발한 감정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렇게 찍힌 사진들은 수많은 종류의 SNS에 올라간다. 



바야흐로 진정한 ‘타인의 감정’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뭔가를 올리게 되면 그때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너무 좋겠다”며 수많은 이코 티콘을 섞어서 격하게 부러워하는 사람, “코로나 시절에 팔자 좋다면서”며 은근히 비난하는 사람, “나는 어제 시골에 갔다 왔다면서”며 아무도 묻지 않는 얘기를 홀로 하는 사람, “단풍을 보려면 내장산 정도는 가야 한다고”며 해달라고 하지도 않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런 반응들로 도착하기 시작하면 원래 내 감정들은 금세 자취를 감추고 그 순간부터는 타인으로부터 출발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니 그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것들은 정말로 내 것일까? 믿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잘 모른다. 잘 모르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른다. 내가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 믿고 ‘내 감정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는 도대체 왜 그런 감정들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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