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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Jul 28. 2021

시골집,두 번의기회

한 번은짓고,한 번은사다

2010년쯤 이런저런 이유로, 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서 서울을 떠나 시골에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한 2년 땅을 찾아다녔지요. 평생 한 번도 땅을 사본 적이 없는 저로써는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년 만에 강원에 영월에 마음에 드는 땅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지요. 땅은 마음에 드는데 그 크기와 가격이 제 예산 범위를 넘었습니다. 저는 집을 지을만한 작은 땅, 그러니까 200평 규모의 땅을 대략 2천만 원 내에서 살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땅은 800평 가까이 되고 가격도 6천만 원이었습니다. 예산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당시엔 꽤나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땅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사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시골의 땅이나 집은 거래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 사면 다시 되팔기가 쉽지 않지요. 그런 면에서 땅을 사기로 최종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일이 정말로 쉽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며칠을 온갖 상상에 시달려야 했죠.


거래 사기를 당한다든가, 땅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든가, 아예 집을 짓지 못한다든가, 지하수를 팠는데 나오질 않는다든가, 최종 건축 허가가 나질 않는다든가, 사실 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죠.


그래도 이미 속도가 붙은 탓에 멈추기도 힘들었습니다. 


워낙 외진 곳이라서 전기를 끌어 오는데 만 천만 원이 들었습니다. 지하수 파는 비용도 천만 원이 들더군요. 20평, 작은 집이었고 집 비용만 7천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물론 이후 이런저런 돈들이 많이 들어가서 최종 1억이 넘는 돈이 들어갔고, 여름이 오기 전쯤 집이 완공되었습니다.


집을 짓는 동안 결정적인 문제는 없었지만, 측량이 잘못되어서 몇 번 재측량을 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었고, 업체와 돈 문제로 인해 약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또한 최종 지은 집이 그리 완성도가 높지 않더군요. 그래도 뭐 그냥저냥 살만한 집이었습니다.


물이 좀 문제였습니다. 지하수는 잘 나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역이 석회 물이 나오는 곳이더군요. 영월이지만 제천 옆에 붙은 쪽이었고 밑으로는 단양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석회질 성분이 많아서 우리나라 시멘트 공장이 모여 있는 지역입니다.


그냥 물을 받아서 한참 끓이고 나면 바닥에 하얗게 뭔가가 남았습니다. 석회이지요. 


일단 식수는 석회 전용 역삼투압 방식 정수시스템으로 해결했습니다. 씻는 물이 문제이긴 했지만 그냥 눈으로 보기엔 맑은 물이어서 그리 큰 문제로 여겨지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아내는 피부가 민감해서 씻고 나면 따로 정수물로 다시 씻어줘야 했습니다.


그 문제 말고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는 과정은 좀 힘들었지만, 그리 많이 섞이지 않은 탓에 그냥 지나면서 인사를 나누는 수준 정도로 지냈지요. 그리고 근처에 집이 한 채 더 생기면서 이웃이 생겨서 그 부부와는 좀 친하게 지냈습니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하지만 결국엔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을 짓고 나서 한 해가 지난 후 그 지역에 군부대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땅을 사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내용이더군요. 나중에 듣고 보니 군부대 담당자도 놀랐다고 합니다. 원래 땅을 결정할 때는 집이 없었는데 진행하려고 다시 와보니 집이 있어서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반대를 했지만 결국 수용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시골 땅은 팔기가 쉽지 않은 탓에 제 집 주변의 땅 주인 분들이 땅을 팔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반대를 한다고 해서 중단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상금을 받고 – 건축할 때 들어간 돈 정도 - 5년 만에 그곳과 이별을 고했습니다. 5년이지만, 저에겐 정말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던 집이었고, 직접 땅을 사고, 직접 지은 집이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이별을 고했습니다.



집과 이별을 하고 난 후 1년 정도는 그냥 쉬었습니다. 새로운 시골집을 구해야 하는데 영 마음이 내키지 않더군요. 5년간 거의 빼먹지 않고 두 시간 거리의 그곳을 주말마다 왔다 갔다 했더니 좀 지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도부터 다시 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영월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땅을 찾기로 했지요. 그래서 홍천, 횡성, 원주, 춘천, 청주, 음성, 괴산 쪽으로 돌았습니다. 충청도보다는 강원도가 더 끌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매물은 충청도 쪽이 더 많더군요.


땅을 찾아다녔는데 제가 마음에 들만한 땅은 거의 없고, 마음에 들만한 땅은 이미 다른 집들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잘 지어진 집들을 보니 서서히 마음이 바뀌더군요. 땅만 고집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곳에 잘 지어진 집도 한번 알아보자.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나가고 결국 저는 코로나가 한참 시작되고 있던 2020년 3월쯤에 횡성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습니다. 가격이 예상보다 좀 세서 고민을 했지만, 그리고 그 집엔 또 어떤 문제가 숨겨져 있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결국 계약을 했습니다.


5월 초에 잔금이 마무리되고 저는 두 번째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작년 한 해는 이런저런 사소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하수 수량이 모자라서 물이 끊겼던 적도 있고, 온수 탱크가 고장 나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은 적도 있고, 보일러 펌프가 고장 나 한 겨울에 집이 완전히 얼어붙은 적도 있습니다.


말벌집을 처리하다가 두 번이나 벌에 쏘였고, 집 주변에서 뱀을 두 마리나 잡아야 했습니다. 모르고 커피에 빠진 노린재를 씹은 적도 있습니다. 뭐, 시골의 삶이 그렇지요.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최근 운 좋게도 마을에 수도가 들어오더군요. 평생 지하수만 쓸 줄 알았는데 참 좋은 일입니다.


요즘도 여전히 주말에만 다니고 있긴 하지만, 한 10년 후쯤에 완전히 내려가서 살 생각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점은 참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처음 경험을 통해 느꼈던 많은 문제점들을 통해 두 번째의 선택에서는 꽤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저의 두 번째 집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집을 보는 눈이 생긴 점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겉모습만 그럴듯한 집이 아닌, 정말로 잘 지어진 집을 고르는 법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보는 눈이 생긴 것이지요.


만약 우리가 삶을 두 번을 살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첫 생애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단 한번 주어질 뿐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한 생에 중에서 또 한 번의 기회가 있긴 합니다.


40대라는 나이가 그렇더군요. 거의 대부분의 고정되어서 이제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나이, 그래서 그 고정된 결과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두 번째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을 수도,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듯 보입니다. 인생의 두 번째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니까요.


40대에 경험했던 영월 집에서 보낸 5년간의 시간은 저를 한없이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끝없이 불만을 가졌던 제가 가진 것들에 감사함을 느끼는 존재로 바뀌었다가 결국 지금은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죠.


첫 책을 내고 폭망한 후 두 번째 책을 내보고 싶어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몰라도, 실제로 제 바람대로 그것이 이뤄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냥 해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미래는 제 의지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단지 거기엔 제가 알지 못하는 커다란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도착하고 나면 꽤나 마음에 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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