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찜찜하다

by 전찬우

2017년도 신문에 하나의 기사가 실렸다. 하버드 대학교의 성인발달연구팀은 1938년부터 79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임의의 724명의 삶을 관찰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구팀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관찰해 온 것일까?


그것은 아주 평범한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는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했고,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바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외로움이었다. 인간관계는 양보다는 질이다. 그러니까 친구의 숫자보다 어느 누구와 깊은 친밀한 관계, 다른 말로 하면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인간관계는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지닌다.


최종 결론이다. 읽어보면 뻔한 내용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단지 그런 사람들과 만나 그럴 수 있는 관계로 맺어가는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결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지금의 내가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그다지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혹시 그것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높이 달려 있는 포도를 보고는 어차피 먹질 못하니 ‘저 포도는 분명히 제대로 익지 않아서 떫고 실 것이 분명해’라고 생각하는 여우와 같은 입장이 아닐까?


물론 혼자 사는 것이 어떤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기본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혼자 산다는 것이 온전히 홀로 산다는 의미는 아니기에 그렇다. 홀로 사는 사람은 없다. 단지 혼자 살뿐이다.


혼자 살아도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다. 친구나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면서 내 행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어울려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혼자 사는 삶의 비결이다. 혼자 사는 자유와 함께 하는 즐거움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단지 돈만이 문제이다.


비록 혼자서 살더라도 돈만 어느 정도 충분히 있고, 주변에 잦은 연락을 주고받지만 결코 질척거리지 않는 관계도 제법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서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혼자 살아갈 미래를 잘 준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꼭 힘들게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인간관계가 좋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것이 가진 단점들, 그것도 꽤나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음을 이미 충분히 경험했는데 왜 쓸데없이 그것에 매달려야 할까? 이미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충분히 좋다. 그런데도 왜 명문대라고 하는 하버드 연구팀은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렇게 뻔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 저런 연구를 한 것일까?


듣고 나면 ‘좋은지 누가 몰라, 나도 하고 싶다고. 하지만 하기가 힘들어. 예전에 나도 시도해봤는데 실망하고 상처만 잔뜩 입었어. 다시는 안 해’라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적당히 어울리며 살면 충분한데 왜 ‘친밀한 관계’ 수준까지 깊이 내려가야 할까? 관계라는 것은 만나서 즐겁게 놀고, 하고 싶은 일 같이 하고, 힘든 일 당하면 서로 위로의 말 정도 주고받는 사이면 되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도 뭔가 찜찜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나는 그런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다행히 대부분은 있다. 적어도 부모님은 살아 계시니까.

그런데도 그 찜찜함이 왜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후회라는 감정이 있다. 지금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과거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현재가 잘못되었더라도 후회를 안 하는 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면 된다. 더 이상 뭔가 할 수 없었으니 설령 잘못되었더라도 적어도 후회는 안 된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스스로 최선을 다한 운동선수는 올림픽에 나와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해도 아쉬워는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속 시원하게 웃는다. 하지만 훈련을 게을리 한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얼굴은 무겁다.


찜찜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후회에 대해서 말하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 찜찜함의 정체가 바로 ‘미래에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나서 그렇다. 걱정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들 후회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결과 자체가 잘못될까 봐 걱정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까 봐 더 걱정한다.


결혼을 안 하기로 마음먹는 것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그렇다. 결정 자체가 잘못될 일은 없지만 나중에 혹시나 그 결정 자체를 후회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된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거나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면 반발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찜찜해지고 만다. 지금 내가 한 결정이 과연 최선인가? 지금은 알 수 없다. 살아봐야 한다.


만약 하버드 대학교가 내놓은 연구의 결과를 듣고 나서 뭔가 찜찜함이 남았다면 그것은 바로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한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든 것이다.


왜 그런 걱정이 될까?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 우리는 누군가 분명히 누군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입었던 상처로 힘들어서 더 이상 노력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 정도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 중이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흘러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나서 저런 연구 결과를 또다시 보게 되면 그때의 우리는 과연 누구를 떠올릴 수 있으며,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지금 정말로 아무 문제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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