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자야!
지금부터 잠시만이라도 ‘저 인간은 도대체 왜 저럴까?’, 라는 불만 대신 ‘저 사람은 어떤 이유로 저런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될까?’라는, 관대한 이해의 태도를 보여주자.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상대와 잘 지내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내가 상대를 최대한 이해해 주는 수밖에 없다.
그 이해를 위해서 또다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자. 동굴에서 모닥불을 피우던 그 시대, 그러니까 모든 문제가 처음 시작된 시기이다.
지금 시대는 행복하게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이지 밥 먹고 사는 일 자체가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까 행복하지 못해 우울한 삶을 살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이 없어서 굶어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거 동굴에서 살던 시대에는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또한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매일같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먹을 것을 구하는 방식 자체가 차이가 있다. 육체적으로 힘이 강했던 남자들은 주로 멀리 동물을 사냥 다녔고, 아이를 낳고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맡은 여자들은 멀리 나설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굴 근처에서 근처의 과일이나 약초를 채집해야 했다.
커다란 맘모스를 사냥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던 남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날카로운 창일까? 활을 잘 쏘는 능력이었을까?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였을까? 사냥감을 잘 쫓는 추적 능력이었을까? 정확히 급소를 노릴 수 있는 영리함이었을까?
물론 그런 능력들은 모두 다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의외로 ‘동료와의 협동’이다.
맘모스처럼 커다랗고 위험한 사냥감을 잡기 위해서는 함께 할 동료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남자들에게 있어서 동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반드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동료와 함께 일을 할 때 꼭 필요한 조건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는 바로 각자만의 ‘역할 분담’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잘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누군가는 추적을 하고, 누군가는 사냥감을 구석으로 몰고, 누군가는 활을 쏘고, 누군가는 창으로 찌르고, 누군가는 용맹하게 맘모스의 몸에 달라붙어서 급소를 찔러야 한다.
직접적으로 사냥에 참가 한 사람만 그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창이나 활을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사냥을 하다가 다친 사람을 치료해야 하며, 누군가는 사냥 후 얻은 고기를 불만 없이 분배해야 하고, 누군가는 소중한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훈제 처리를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의사소통 능력’이다.
서로 같이 일을 하려면 말이 통해야 하고, 그 능력을 이용해 서로가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혼선이 일어나게 된다면 함께 하고 있는 동료는 도움은커녕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고 만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언어의 사용법이 너무 익숙해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아니 그렇다고 믿지만, 사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원래 꽤나 어려운 일이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제대로 설명하려면 논리적이어야 하고, 사실에 근거해야 하며, 듣기엔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보여야 한다. 이때 각자가 느끼는 개별적 욕구나 감정은 가능하다면 한쪽에 밀어 두는 것이 좋다.
오늘 사슴 무리를 잡으러 갈지, 맘모스 무리를 추격할지 결정하는 자리에서 ‘내가 오늘은 사슴 고기를 먹고 싶다’는 이유나 '오늘 유난히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울적해서 그분이 평소 좋아하던 맘모스 사냥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찬성을 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말도 안 된다면서 면박을 줄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바로 ‘공정함이’다.
사냥을 하고 난 후 나온 고기를 납득이 가게 분배하지 않으면 그다음에 이어질 사냥에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커다란 난제가 있다. 좋은 품질의 창을 만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맘모스의 숨통을 끊어 놓을 수 있는 강한 근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에 대한 분배를, 어떻게 해야 불만 없이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은 꽤나 심각한 문제다. 100M 달리기처럼 다들 똑같은 내용을 기준으로 하면 판별이 명확하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대상으로 이뤄진 비교일 경우엔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는 창을 잘 만드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는 강한 힘과 용기야 말로 최고의 능력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정답도 존재할 수 없다. 그저 사람들이 평소에 하는 생각들의 총합이 어느 쪽에 더 기울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다수의 사람들이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인정’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역할을 맡았을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 활을 쏘는 역할을 맡았을 때 과연 누구의 활이 더 치명적으로 명중을 했느냐를 따지는 것도 애매하다. 이 역시도 보는 사람이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가 더해지면서 ‘평가’는 산으로 가게 된다. 그것은 바로 평가 대상자와 자신과의 관계성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그 능력이 발휘된 정황보다 내가 상대와 친구냐 아니면 원수냐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와 친하면 별로인 것도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싫어하면 대단한 것도 별로라고 깎아내린다. ‘친분’이 ‘능력’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이런 협동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들, 역할 분담, 의사소통, 공정함은 이후 각자 고유하게 남자들의 특징을 만들게 되는데, 역할 분담은 남자들에게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성향을, 의사소통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최대한 이성적으로 사실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표현하려는 성향을, 공정함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끝없이 관심을 갖고, 자신의 편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두려는 성향을 만들어 낸다. 이것들은 그대로 남자들의 주된 행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맡아서 잘 해내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고, 사실을 근거로 한 논리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사회의 많은 갈등들이 공정하게 처리되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남에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를 만나는 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남자들의 고유한 특징을 여자들의 시선에 보면, 남자들은 무엇을 하든 쓸데없이 인정받는 것에 목메고, 그냥 내 말을 들어만 주면 되는데 자꾸 분석해서 설명하며 가르치려 들고, 물어보지도 않은 재미없는 정치 이야기를 하고, 틈만 나면 자기 잘난 척을 하며 초딩처럼 굴고, 가족보다 친구를 더 우선시 여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관심 없는 주제엔 단답형으로만 대답해서 대화의 맥을 끊어 버리는 모습으로 비친다.
그러니 같이 지내다 보면 ‘저 인간은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