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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Aug 21. 2021

너는 내 운명의 껌딱지 #2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오늘 김장을 해야 하는 날이라서 걱정이 많다. 일 년에 한 번만 하면 되지만, 결코 쉽지가 않은 일이다.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배추, 무, 파, 고추 등등 수많은 야채와 다양한 재료를 사야 한다. 그나마 절인 배추는 배달을 해주지만 나머지들은 다 사서 날라야 한다. 그래서 힘 좋은 남편이 하루쯤 쉬면서 좀 도와줬으면 하지만 오늘도 바쁘다는 남편은 휴가를 못 낸다고 한다.


여자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을 했다. 그래도 오후쯤 다 끝내고 나니 기분이 홀가분하다. 잠시 쉬었다가 김치를 담근 김에 오늘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보쌈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고기를 삶는다. 그런데 고기가 다 익었는데도 남편이 들어오지를 않는다. 전화해서 보쌈해놨으니 빨리 오라고 할까도 생각했지만, 남편이 들어왔을 때 준비된 보쌈에 깜짝 놀라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참는다. 그런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다 보니 다행히 남편이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에 들어온다.


그런데 퇴근하는 남편의 몰골이 이상하다. 옷이 헝클어져 있고 하얀 와이셔츠엔 더러운 얼룩이 가득하다. 더군다나 늦가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그 순간 여자는 남편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속이 철렁하다.


여자는 걱정이 되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남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새댁이 김장을 하는지 무거운 무를 들고 낑낑대고 있어서 지금까지 그것을 다 날라주느라 옷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늦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갑자기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손이 떨리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친놈’ 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가 자신에게 왜 그런 욕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억울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여자라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그냥 옆집 사는 사람이 힘들게 낑낑대고 있어서 도와준 것뿐이라고 항변한다. 자신이 딱히 무슨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식으로 듣자마자 욕부터 하냐고 오히려 짜증을 낸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설령 남편의 말이 사실이라도 화가 난다.


하루 종일 힘들게 김장을 담그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힘들게 낑낑거리면 무를 나르고 배추를 정리하던 자신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 남편이란 새끼는 세상 친절한 사람의 모습이 된 채 헤헤거리면서 옆집 여자 무나 날라주고 저런 몰골로 들어온 것이다.


여자는 결국 삶아 놓은 보쌈 고기를 냉장고에 넣어 버리고는 저녁을 알아서 처먹으라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 버리고 만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오늘따라 심사가 뒤틀린 상사로 인해서 별 일 아닌 것으로 한참을 깨졌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할 생각도 났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생각하며 참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밥도 차려놓지 않고 어두운 식탁에 홀로 앉아 있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서 아직 안 온 모양인지 온 집안이 정적으로 가득하다. 10년간 쌓인 경험으로 봐서 뭔가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 지금 되돌아서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아내는 막 퇴근하고 들어 온 남편이 자신의 눈치를 보며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가만히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간단히 씻고 나오는 남편을 보고는 ‘할 말이 있다면서’ 앞에 앉아 보라고 한다. 그리고는 갑자기 오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명숙이는 최근 집을 샀다고 한다. 종희네 남편은 부장으로 진급했다고 한다. 은혜의 아이는 전교 일등을 했다고 한다. 미정이는 남편이 해외출장을 다녀오면서 사온 비싼 명품 백을 차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집도 없고, 출세한 남편도 없고, 공부 잘하는 아이도 없는데, 명품 백도 없다고 신세한탄을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남편은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 말고는 다 자신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해서 생겨난 문제로 느껴진다. 사실상 아이들도 비싼 돈을 들여서 과외를 시키면 공부를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국 다 자신의 무능력 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연봉이 갑자기 오를 리는 없다.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저런 얘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런데 그것보다 먼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 점이 있다. 아내가 매년 동창회에 다녀오면 저렇게 저기압이 된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동창회에 나가는 것일까? 다녀온 후에 저럴 거면 이제는 안 나가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아내 말로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는 것이 좋고, 가면 새로운 소식이나 애들 교육에 필요한 좋은 정보도 들을 수 있어서 나간다고 한다. 아내의 말처럼 정말로 그렇다면 거기에서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도 그냥 마음에 담아 두고 꺼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꺼낸다고 딱히 해결될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저런 말을 해서 내 기분만 상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내는 옆집 새댁을 돕고 온 남편에게, 남편은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에게 진심으로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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