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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Aug 23. 2021

너는 내 운명의 껌딱지 #4

그냥 들어달라고...


확실히 여자는 남자와는 다르다. 아니, 다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모유로 아이를 먹일 수 있는, 남자는 절대 흉내 불가능한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타고 태어났다. 하지만 그런 축복받은 능력을 가진 대신 여자들은 어쩔 수 없는 한계점을 가지게 되었다.


남자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멀리 떠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를 지켜야 할 누군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역할을 아이를 낳고 먹일 수 있는 여자가 맡게 되었다. 이것은 ‘먹을 것을 구하는 일’이 너무도 중요했던 과거엔 불평등한 일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동굴에서 멀리 떠날 수 없는 여자들은 짧은 여유가 생기면 동굴 근처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시작했다. 주로 과일이 주로 그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과일은 동물 사냥감과는 다른,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단 있는 곳만 발견만 하면 매년 같은 과일을 구할 수 있는 점과 일 년 중 먹기 좋게 딱 익은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자들에게 있어서 과일을 잘 구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했을까? 남자들처럼 ‘협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을까?


따기 어려운 과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떤 과일이 어디에서 열리는지, 그 과일은 언제쯤 가서 따서 좋은지에 대한 ‘정보’이다.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스스로 가서 찾아야 할까? 물론 가장 확실하긴 하지만, 그럴만한 시간의 여유도 없고 비효율적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미 찾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정보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좋은 정보를 누가 남에게 가르쳐 줄까?


이 대목에서 남자와는 전혀 다른 여자들이 맺는 관계의 숨겨진 목적이 드러난다. 남자처럼 사냥터처럼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곳에서 내 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로써의 관계가 아닌,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정보쯤은 말해줘도 그리 손해가 되지 않거나 훗날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관계를 최대한 넓게 맺어 놓는 것, 그것이 바로 여자들이 맺는 관계의 지향점이다.


 “지금 동쪽 커다란 소나무 옆으로 가면 사과가 잔뜩 열려 있어.”, 라는 말해주고, “내가 이번에 밤이 잔뜩 떨어진 장소를 발견했는데 내일 나랑 같이 갈래?”, 라는 말을 듣는다.


이런 정보의 교환은 그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 또한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라고 해도 만나고 있는 순간만큼은 최대한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많은 말을 하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은 정보’가 튀어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다스러움은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더군다나 여자들의 경우엔 대화가 일을 할 때도 매우 필요한데, 남자들은 사냥 중에는 온 힘을 다 쓰고 있기 때문에 대화라고 해봐야 고함소리나 지르는 것이 전부이지만, 옹기종기 모여 그리 힘들지 않은 일을 하는 여자들에게 있어서 대화는 일하는 동안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아주 좋은 수단이 된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도 여자들이 주방에 모여서 야채를 다듬거나, 칼질을 할 때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다. 심지어 오늘 처음 만난 여자들끼리도 꽤나 친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오늘 처음 본 다른 남자와 한 시간째 “네, 반갑습니다.”라고 단 한마디만 주고받은 채 어색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며 놀라워한다.



원래 누군가와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내가 말을 하고 싶다면 상대방에게도 그만큼의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더해서 상대가 하는 말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더라도 맞장구는 쳐줘야 한다.


하지만 대화를 문제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삼는 남자들에게 있어서 대화는 처음부터 잘한다는 개념 그 자체 다르다. 남자들에게 잘하는 대화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상대가 어떤 말을 하고 있을 때 열심히 듣는 이유 자체도 상대방의 말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분석해서 허점을 찾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말하고 있는 사람과 다른 내 생각을 주장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에 관한 남녀의 차이는 남녀가 만나 대화를 할 때 서로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


여자는 자신이 한 말을 그냥 듣고 공감만 해주길 원하기 때문에 오늘 속상했던 일, 마음에 걸리는 일, 기분 좋았던 일, 오늘 본 예쁜 신상 핸드백에 대한 얘기를 한다. 그런데 남자는 속상했던 일을 듣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 판단하고,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해서는 여자가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막막한 해결 방안을 마치 자신이 처음 생각하는 것처럼 설명해주고, 기분 좋았던 일에 대해서는 "응 그래?"라고 한 마디만 한다.


핸드백 얘기를 하면 돈이 썩어나냐고 화를 내거나 여자들의 허영심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한다. 사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에 예뻤다고 말을 한 것인데 그렇게 말한다. 그 순간 여자는 남자가 사놓은 낚싯대 가방이나 카메라에 저절로 눈이 간다.


남자는 대화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사소통의 수단이기 때문에 해결할 필요가 없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들, 그러니까 오늘 일어났던 속상한 일, 마음에 걸리는 일, 기분 좋았던 일, 오늘 본 신상 자전거에 대해서 놀랍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자전거는 돈을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며 말을 하긴 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내가 자전거를 얼마나 타고 싶은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신상 자전거가 지금 타고 있던 자전거에 비해서 얼마나 성능이 우수한지에 대해서 사실을 기반으로 한 논리로 ‘설명’한다.


만약 남자가 ‘이 자전거가 너무 예뻐서 꼭 타고 싶어!’라고 말하면 여자는 허락은 안 해줘도 이해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기저항을 따지고, 바디와 기어의 소재가 얼마나 비싼지를 따지고, 자전거의 무게 중심이 주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듣다 보면 오히려 왜 저러나 싶다.


남자들은 모여서 공기저항이 속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자신이 아는 사실을 근거로 열정적 토론을 하지만,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쟤들은 매일 도대체 왜 저러냐?"라고 말한 후 관심을 끊어 버린다.




이런 식의 식량을 조달하는 방식의 차이는 이후 남자들은 협동을 하기 위해서 관계 속에서 ‘역할 분담’, ‘의사소통’, ‘공정함’을 추구하게 만들고, 여자들은 정보교환과 대화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관계 속에서 ‘친밀함’, ‘공감’, ‘조화로움’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이 차이가 여자와 남자의 사이에 최초의 틈을 만들어 낸다. 그럼에도 만약 이쯤에서 머물렀다면 그 틈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라고 말하는 수준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한 가지가 커다란 문제가 더 끼어든다. 바로 타고난 ‘성적 역할’의 차이이다. 식량을 구하는 방식으로 인해 생겨난 틈이 성적 역할의 차이로 인해 서로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커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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