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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09. 2021

완벽한 인생 #1

황당한 의뢰

"뭐라고요?"


너무 어이가 없었던 탓인지 내 직업상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아니 해서는 안 되는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누구처럼 평생직장은 아니더라도 이 바닥에서 십여 년 발을 붙이는 동안 정말로 별의별 황당한 요구를 많이 들어봤지만, 오늘 내가 방금 들은 이야기는 그간 들었던 것들 중에서 최고였다. 하지만 나는 이쪽 세계에서 나름 관록이 쌓인 프로였다. 아주 잠깐 외출했던 정신은 금세 다시 되돌아왔다.


다행히 내 앞에 앉아있는 고객은 내가 조금 전 보여 준 반응이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면 알 듯 모를듯한 희미한 미소까지 머금은 채 다음 말을 이었다.


"들은 그대로입니다. 제가 여기저기 알아보니 이곳이 평가가 제일 좋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돈은 선금으로 다 지불하겠습니다. 대신 일 처리만큼은 반드시 제가 원하는 대로 정확히 해주셔야 합니다. 사장님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는 점을 믿고 찾아왔습니다."


상대는 나를 믿는다는 좋은 말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말이 약간의 협박처럼 느껴졌다. 나는 멀쑥한 외모와 말끔한 복장을 갖춘, 그 표정에서도 딱히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이는, 지금 내 눈앞에 앉아 있는 고객과 눈을 맞춰보려고 애썼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오래 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 눈에 보이는 표정 뒤에 숨겨진 진짜 의도를 보고 싶어서 그랬다. 하지만 딱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는 여전히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고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는 이유는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나는 흥신소, 그러니까 흔히 심부름센터로 알려진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나한테 연락이 오거나 직접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처리하기엔 곤란하거나, 할 수 있다고 해도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일들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해서 가끔 어떤 일들은 나름대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나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그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가장 흔히 들어오는 의뢰는 바로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잡아 달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일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로가 부부가 아닌 경우도 많았다. 자신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상대가 또 다른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알아봐 달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의뢰가 조사에 의해서 진짜 사실로 드러나면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곤 했다. 불륜 당사자와 불륜 당사자의 배우자, 그리고 나에게 의뢰를 한 불륜 상대자, 마지막으로 이번 조사로 인해 밝혀진 숨겨진 새로운 불륜 상대자까지 모여서 매우 흥미롭지만 결국 한 없이 지저분하게 끝날 싸움의 서막이 되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흔한 의뢰는 잃어버렸거나 오래전 헤어진 사람을 찾아달라는 일이다. 실종된 사람의 경우도 있고, 어릴 때 헤어진 가족일 수도 있었다. 이 의뢰는 계절도 좀 타는 편이었는데, 가을이 오면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도 제법 있었고 졸업시즌이 오면 학창 시절 은사를 찾아달라는 의뢰도 가끔 들어왔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면서 각종 역할 대행 요청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흔하게는 결혼식 하객 대행부터 애인 대행까지, 아주 가끔은 부모님 역할 대행이나 아이 아빠 대행도 드물게 들어오는 편이었다. 물론 그런 일들은 내가 직접 하지 않았다. 그것을 위한 전문 팀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과 고객을 연결만 시켜주고 만다.


아주 가끔 왕따를 당하는 아이를 위해 왕따 주동자들을 혼내달라고 하거나, 자신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협박해달라는 요청도 있다. 심지어 청부살인도 들어온다.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긴 하지만, 청부살인은 생각보다 자주 의뢰가 들어온다. 물론 나는 그런 일을 맡지는 않지만,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 중에서 은밀히 그런 의뢰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것들 말고도 꽤나 특이한 의뢰 있긴 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받은 의뢰는 요구사항 그 자체는 매우 단순했지만, 도대체 왜 저런 요구를 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저 남자는 왜 자신에게 돌을 던져 달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그냥도 아니고 그 돌에 맞아 머리가 터져 병원에 실려 갈 만큼 세게 던져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고객은 언제까지 되어야 할 지만 정해줬을 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온전히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자신이 스스로 이런 의뢰를 하긴 하지만, 반드시 우연히 그 일을 겪는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니까 그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은 자신이 요구한 이 황당한 의뢰를 까마득하게 잊고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짱돌이 날아와 머리에 정통으로 부딪쳐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에 돌을 던져서 정신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는 황당한 요구, 그러다 보니 내가 그 의뢰를 듣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신종 보험사기인가?' 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 누구라도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혹시나 그런 것이냐고 내가 의심 섞인 질문을 하자 고객은 그것은 결코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믿을 수만은 없었다. 이 바닥에서 일을 오래 하려면 보험사기에 관련된 일에 말려드는 것만큼은 절대로 피해야 할 것들 중 하나였다. 만약 목적이 보험사기일 경우, 수령할 수 있는 보험금에 따라서 보험사 소속의 전문가의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액의 보험이거나 금액 자체는 적어도 동일한 목적의 보험이 다수의 보험사에서 동시에 지급되는 상황이 되면 해당 사건은 보험사 간에 공유되면서 경찰까지 낀 공식적인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보험사기에 연루된 의뢰는 그런 일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팀이 따로 있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경찰과 엮이기 싫은 나는 그런 일은 결코 맡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사장님이 뭔가 조사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상대는 담담하고 꽤나 확신 있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비용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비용,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도대체 얼마를 청구해야 할까? 그제야 잠시 생각해보니 일 자체는 단순했지만 제대로 실행하려면 난이도가 꽤나 높다는 점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서 누군가를 돌로 맞혀야 하는 작업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투수 출신의 야구선수라도 섭외해야 할까? 아니면 돌을 쏴주는 장비라도 구입해야 할까? 아니, 그런 장비가 있기나 할까? 아무튼 그것에 대한 비용도 꼭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한 끝에 나는 통 크게 오백만 원을 불렀다. 사실 약간 거절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일부로 높게 불렀다.


"여기 대략 저에 대한 인적사항이 있으니, 제 이동경로는 잘 알아서 파악하시고 제가 말씀드린 날짜 전까지만 이행해주시면 됩니다."


고객은 형식적으로라도 흥정을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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