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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11. 2021

완벽한 인생 #2

두 번째 방문

그는 비용을 한 천만 원 정도 불렀어야 했나, 하고 뒤늦은 후회하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평소 이동경로와 주로 다니는 장소들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내 계좌로 현금을 이체해 주었다. 그 사이 내가 한 일이라고는 내 주거래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 준 것이 다였다.


얼떨결에 계약이 성사되었다. 나는 이체를 끝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는 고객의 뒷모습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도대체 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하는 시간이 지나도 도대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고, 또 하나는 현실적으로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함이었다. 돌을 던져서 누군가를 맞춰야 하다니, 아무래도 수수료를 너무 적게 부른 듯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화살은 활의 시위를 떠났고, 나는 무조건 고객이 요구한 사항을 성공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고객은 머리에 최소 30방 이상을 꿰매야 하는 상처를 입었다. 인맥에 인맥을 거쳐 겨우 찾은, 투수 출신의 야구선수는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 핸드볼을 했다는 20대 청년의 도움을 통해서 이룬 성과였다. 그는 이백만 원을 받기로 하고 일주일간 연습을 한 끝에 대략 2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숨어서 돌멩이 세 개를 연속으로 던져 그중 하나로 고객의 뒤통수를 제대로 맞췄다. 그리고 재빨리 도망쳐서 내가 있던 곳으로 와 현금으로 수고비를 지급받고는 싱글벙글하며 떠났다. 떠나기 직전 그는 이런 일이 또 있으면 꼭 불러달라고 했다. 


‘이런 일이 또 있겠냐?’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 절로 났지만, 그냥 그러겠다고 웃으며 그를 보냈다. 그리고 즉시 시선을 돌려 돌멩이에 맞아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고객을 쌍안경으로 살폈다. 계속 저렇게 길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어서 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후 고객의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 중 하나가 119에 전화를 걸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광등을 번쩍거리며 구급차가 도착했다. 나는 상황을 봐서 내가 익명으로 신고를 할 생각으로 선불 폰까지 챙겨 왔지만 고객이 들것에 실려 구급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살만한 곳이다.


"차 사고를 내 달라고요?" 그 일로부터 한 육 개월 정도 지났을까? 예전에 돌을 던져달라던 황당한 요구를 했던 고객이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한 것을 요구했다. 차 사고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정말로 보험사기가 아닌가 하는 진한 의구심이 들었다. 이 사람은 계속 방법을 바꿔가면서 보험금을 노리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고, 그냥 도로에서 사고를 내주시면 됩니다. 폐차를 할 정도로 심각한 사고를 내주시고 설령 그 사고로 제가 죽거나 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왔다. 의뢰한 일의 황당함은 고사하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저렇게나 평온한 얼굴로 담담하게 의뢰하는 고객의 태도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죽어도 된다고 말할 정도라면 적어도 자해공갈단은 아닐 것이다. 내 상식상 죽으면서까지 자해공갈을 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면 그저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 가족들에게 생명보험금이나 남기고 싶어 하는, 어쩔 수 없이 삶의 막다른 골목에 도착한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상대방의 눈에는 그런 절망감은 보이질 않았다.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그런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방문하곤 했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서 사업을 하려고 했다가 사기를 당해 시작도 못해보고 망한 사람이, 경찰은 잡질 못하니 대신 잡아 달라는 사람의 눈빛이 그랬다. 정말로 믿었던 배우자의 불륜을 어느 정도 확인한 상태에서 법정에서 쓸 증거를 대신 수집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의 눈빛이 그랬다. 그들의 눈빛에는 절망감과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희망이 보였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자해공갈단이 아니고 생명보험금을 노리는 것도 아니라면 그저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인 것인가? 하지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이런 방법까지 쓰겠는가? 특히나 정확히 말하면 죽음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다. 그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을 뿐, 죽여 달라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의뢰를 하는 것일까? 내 머릿속에서는 커다란 의문이 자라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객이 먼저 설명해주지 않는 한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건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난이도가 무척 높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차 사고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사람을 시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장면이 흔히 나오지만, 이 복잡한 도로에서 누군가가 탄 차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차와 사고를 일으키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수많은 교차로의 신호등과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끼어듦이 있는 도심의 도로에서는 앞 차를 따라가는 것만도 그리 쉽지 않은 일인데, 이것은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반대 방향에서 와야 할 상황이었다. 큰 사고를 내려면 적어도 정면이나 측면 충돌을 해야 하니까 말이다. 쉽지 않을 것은 뻔했다.


만약 대안으로 후방 충돌로 큰 사고를 내려면 커다란 트럭이나 버스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들은 기동성이 떨어져서 일반 승용차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그러니 결국 비슷한 기동성을 가진 차가 필요했다. 또한 장소도 매우 중요했다. 차가 많이 모여 있는 도심지는 적당한 장소가 아니었다. 도심에서도 좀 외졌거나 가능하다면 늦은 새벽 시간대가 좋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외각의 한적한 시골길이 제일 적당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 조건을 갖추는 일이 쉽겠는가? 상대와 따로 약속을 잡지 않은 한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사고를 내는 일은 결코 적당한 계획 따위로는 터무니없었다. 정밀한 계획이 필요했고 운도 따라야 했다.


그런데 문제점은 그것도 다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좀 더 심각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차와 차가 부딪히는 사고를 나게 되면 의뢰한 고객도 다치겠지만 일부로 사고를 낸 차의 운전자도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점이다. 차와 차가 부딪히는 충격은 오직 사고를 당하는 차만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 일의 위험도는 매우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일을 맡길 만한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보험사기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비용이 꽤나 많이 들 것이다.


머리가 복잡했다. 할 수는 있지만, 꽤나 큰돈을 벌 수도 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막연하게 가면 안 되는 길에 들어 선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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