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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15. 2021

완벽한 인생 #3

세 번째 만남

"이번 건 위험부담이 커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습니다."


내 어투에 약간의 으름장이 섞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얼마면 되냐고 되물었다. 나는 이번엔 지난번처럼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딱히 스스로도 짐작하기 힘든 이유로 이번 의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좀 황당할 정도의 금액인 1억을 불렀다. 하지만 고객은 또다시 날짜는 꼭 맞춰줘야 한다는 당부를 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전액을 이체해주었다. 상대가 황당한 수준의 수수료 아니냐고 따지거나 아니면 깎아달라는 협상을 기대했던 나는 갑자기 맥이 풀렸다. 계약은 체결되었다.


과정은 복잡하고 힘들었지만 결국 고객이 원하는 대로 잘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의뢰로 꽤나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다행히 고객은 크게는 다쳤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당 교통사고는 쌍방 간 합의로 처리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 고객을 다시 본 때는 그때로부터 삼 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꽤나 오랜만에 본 것이지만, 나는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방금 들어온 사람이 삼 년 전 그 사람임을 알아챈 순간부터 심장박동수가 급격히 상승됨을 느꼈다. 그는 분명히 뭔가 또 황당한 요구를 할 듯했다.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달라고 했다. 집이 비어 있을 때도 아니라, 자신이 그 집에서 자고 있을 때 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뿐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자고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이 의뢰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이 고객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을 해달라고 하는 것일까? 이번에도 비용을 매우 크게 불렀고 고객은 여전히 아무런 흥정 없이 이체를 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예상된 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날로부터 정확히 삼 주 후 고객의 집에 불이 났다. 뉴스에도 나올 만큼 큰 불이 났는데, 보도에 따르면 방화로 의심이 되어 수사를 하는 중이지만 딱히 증거가 없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당연했다. 나름대로 프로인 내가 그 동네 모든 CCTV를 다 피해서 직접 수행한 일이니 딱히 수사망에 걸릴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또다시 이년이 지나 그 고객이 또다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더 이상 그 고객의 의뢰를 들어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간 맡았던 일 중에 하나가 꼬이면서 사실상 흥신소 일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처지를 그렇게 만든 의뢰는 그 내용 자체는 단순했다. 일 년 전쯤 한 남자가 아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면서 현장을 잡아 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일이고, 그래서 제일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의 관록으로 단 이 주 만에 모든 정황 증거와 실제 증거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도 그 불륜 상대 남자가 바로 고위직 검사였던 것이다. 검사는 자신이 불륜을 저지른 사실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서 내 존재를 알아내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불륜에 관한 모든 증거를 없애라고 협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에 따랐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심하게 착각해서 검사의 요구를 거부했고 그 후로 검사의 잔인하고 치졸한 보복이 시작되었다. 그는 법의 이름으로 내 사무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내가 의뢰받는 일들 대부분은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실종된 사람 찾아주는 일이나 좀 멀쩡할 뿐, 불륜 증거 찾기나 대행 알바 알선처럼 남들에게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힘든 일들을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해서 모든 거래는 현금으로만 하는 것이 잠재적 원칙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탈세는 기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최고 권력 중 하나인 검사가 마음먹고 나를 털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실제적으로 더 심각한 문제는, 소문이 빠른 이쪽 업종에서 검사의 눈엣가시가 된 흥신소에 일을 맡길 고객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남들에게 알려지기 싫은 일을 맡기는데 누가 그런 일들을 검사의 감시대상이 된 나에게 의뢰할 것인가? 결국 나는 거의 망해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고객이 나를 다시 찾았을 때쯤엔 아예 원래 하던 일을 접고 가끔 근처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하거나 너무 몸이 힘이 들면 오늘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사무실로 나와 하루를 멍하게 보내는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시콜콜하게 그런 얘기를 상대에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시군요. 아쉽네요. 그간 일처리를 잘해주셔서 좋았는데." 고객은 이제는 차갑게 식어 버린 커피를 한 번에 다 비우고 난 후 대답했다. 그는 내가 왜 일을 접게 되었는지에 대해 조금 궁금해하는 눈치였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죠. 아무튼 다른 믿을만한 사람 소개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힘없이 대꾸하는 내 말에 고객은 그렇게라도 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연락처 하나를 찾아낸 후 고객에게 문자로 전달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고객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 등을 돌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몇 해 전 교통사고 때 입은 후유증으로 인해 영구히 다리를 절게 된 것이다. 그 기억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이젠 과거에 왜 그런 황당한 의뢰를 했었는지에 대해서 갑자기 미치도록 궁금해졌다.


"잠깐만요." 나는 걸어가고 있는 고객을 불러 세웠다. 생각도 하기 전에 말부터 나가서 스스로 좀 놀랬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예전에 도대체 왜 그런 의뢰를 했었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얼굴만 돌린 채 나를 바라보던 그는 순간적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천천히 몸 전체를 돌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는 정말로 그것을 알고 싶은지를 새삼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듣고 나면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히 형식은 경고와 걱정이 섞인 듯한 말투였지만 나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뭔가, 전혀 다른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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