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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18. 2021

완벽한 인생 #4

행운과 불운에 관해

"이 세상엔 수많은 진실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아십니까? 어떤 진실들은 알고 난 후에는 결코 원래 알기 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평생 자신의 자식인 줄 알고 키웠는데 사실은 자신과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이인 것을 알게 된 상황과 같습니다. 상대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그 사람이 내 돈만을 원하고 있다는 문자를 본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알고 싶으신가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약간 겁이 났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저런 식으로 하는 것일까? 내 안에서 그래도 알고 싶다는 궁금증과, 알고 난 후에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힘 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한쪽이 이겼다. 지금 내 처지처럼 아무런 희망도 보이질 않는 삶에 추가적으로 두려움이 좀 더 보태진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었다. 원래 미래에 대한 걱정은 현재의 삶이 살만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어서 설명해보라고 했다..


"사장님은 혹시 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설명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운이라니... 운은 그냥 운이지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 자시고 가 있는 것인가?


"운에는 행운과 불운이 있죠. 행운은 좋은 것이고, 불운은 나쁜 것이고요." 나는 자신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왠지 상대가 이런 답을 원할 것 같지는 않았다.


"네, 그렇죠. 그러면 어떤 것이 행운이고 어떤 것이 불운일까요?" 이어진 질문을 듣고 나는 나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행운과 불운을 구분하는 것이 왜 질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그냥 왜 밥을 먹냐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나는 약간 퉁명스러운 어투로 나한테 이득이 되면 행운이고, 나한테 손해가 되면 불운 아니냐고 대꾸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 표정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질문 내용이 좀 이상하죠? 그럼 주제를 좀 바꿔볼게요. 사장님이 요즘 상황이 힘들어져서 흥신소 일을 접는다고 했죠? 그런데 일을 접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그 일에 대해 묻자 나는 먼저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을 뿐, 딱히 숨길 일만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그냥 다 털어놓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입을 열자 내 입에서는 고액의 의뢰비를 받고 불륜 현장을 조사하던 일, 하지만 그 불륜 상대가 현직 검사인 줄을 몰라서 된통 당하게 된 일 등이 단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말이 끝날쯤에는 나는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책과 부당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에 대한 울분이 어지럽게 뒤섞인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럼 처음에 고액의 의뢰비를 받은 것은 분명 행운이었겠군요." 말을 하면서 급격히 고조된 내 감정은 전혀 아무런 감정적 동요가 느껴지지 않는 상대방의 태도로 인해 신기할 정도로 급속히 사그라졌다. 그래, 맞는 말이다. 운 좋게 평소 받던 비용의 두 배 이상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그 일이 결국 불운의 씨앗이 되고 말았지요."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의뢰를 맡은 일은 행운인가요? 아니면 불운인가요?"


"흠..."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래, 분명 당시엔 행운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불운이 확실하다. "불운이죠. 결국 받지 말아야 할 의뢰를 맡아서 이렇게 망했으니까." 내 대답에 고객은 얇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이 일로 인해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 그 일이 너무도 잘 돼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면 그 일은 행운일까요? 아니면 불운일까요?"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 하루 벌어먹기도 힘들어서 물류센터에서 막일을 뛰고 있는 나한테 무슨 소리인가? "지금 무슨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말하며 조언해주고 싶은 건가요?” 살짝 짜증이 난 나는 따지듯 되물었다. 그러자 상대는 그것은 아니라면서 살짝 웃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행운이네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죠." 나는 짜증 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자, 그러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죠. 도대체 무엇이 행운이고 무엇이 불운일까요?" 나는 그 질문을 받고서야 고객이 나한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깨달았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최근 힘들어서 읽었던 몇 권의 책들에서 나오는 말처럼, 인생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런 뻔 한 소리나 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객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어떨 땐 말보다 표정이 훨씬 더 제대로 전해진다.


"죄송합니다. 지금 한참 불운의 시기에 있는 분에게 괜히 행운의 시기에 대해서 말씀드렸네요. 아무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 삶은 늘 행운과 불운이 오고 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지요. 그 행운과 불운에 관한 진짜 숨겨진 진실을요.”


나는 순간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아무런 말없이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다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거기에 무슨 진실이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행운과 불운이 아무런 예고 없이 마구잡이 식으로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한 사람이 사는 동안 경험하게 되는 행운과 불운의 총량은 완벽히 동일합니다. 그러니까 특정 시기만 보면 행운이 반복되거나 불운이 한참 반복되기도 하지만, 삶의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행운이 찾아오는 만큼 불운이 찾아오고 불운이 찾아오는 만큼 행운도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해드리는 운에 관해 깊게 숨겨진 진실입니다.”




이건 또 뭐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나는 살짝 짜증이 났다. "그 숨겨진 진실이라는 것이 저에게 돌멩이를 던져서 머리를 다치게 해 달라는 의뢰나 고의로 차 사고 내고 집에 불 질러 달라는 요구랑 무슨 상관인가요?"


"분명히 상관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분명히 저한테 커다란 불운이기 때문에 저는 그에 상응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상대방은 이번엔 제대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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