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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20. 2021

완벽한 인생 #5

로또

나는 그 순간만큼은 내 눈앞에서 떠들고 있는 이 인간이 분명히 어딘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확신했다. 말을 곱게 해서 그렇지 사실상 미친놈이다. 어디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말을 진실이라고 믿으며 행운을 얻기 위해서 머리에 돌을 맞고, 평생 다리를 절뚝거리는 사고를 당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위험할 수도 있는데 집에 불을 질러 달라고 의뢰를 한단 말인가?


"지금 사장님 표정을 보니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은 눈치네요. 뭐,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사실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꼭 아셔야 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돌을 맞아 머리가 깨진 불운은 통해 명퇴 후 전 재산을 투자해서 차린 가게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차 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유방암에 걸려 병원에서조차 포기하라고 했던 아내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지금은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집에 불이 난 후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해 자살까지 시도했던 둘째 아이가 이젠 어느 정도 정상적인 삶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저에겐 꼭 필요한 일들이었고, 분명히 행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었죠. 물론 아시다시피 제가 감당해야 할 불운은 컸습니다. 머리가 깨져서 수술을 받아야 했고, 보시다시피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다리가 불구가 됐으며, 집에 불이 나서 큰 곤란함을 겪었으니까요. 물론 그나마 보험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의뢰비만 빼고는 재산상의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듣고 보니 어떻습니까? 저에게 일어난 행운은 그저 우연하게 일어난 것들이었을까요?"


황당했다. 그래, 다 양보해서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같다고 치자. 하지만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는 두 사건, 그러니까 머리가 깨진 불운이 가게가 성공하는 행운에 왜 영향을 미치게 될까? 아니, 다 떠나서 그렇게 억지로 일으킨 불운도 불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운이란 것은 원래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운이라고 정의되는 것 자체부터 이상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사장님이 지금 제 말을 믿고 안 믿고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믿고 그것을 토대로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불운이 없으면 오히려 더 불안합니다. 앞으로 제가 진짜로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운 좋게 한참 동안 불운이 생겨나지 않으면 일부로 불운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의도치 않게 일어날 불운을 미리 예방하기도 하고 제가 얻고자 하는 것들을 얻기도 하죠. 물론 사장님이 제 말을 믿고 그렇게 해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물어보기에 대답해드리는 것뿐이죠."


그래, 사실 맞는 말이다. 저 사람은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을 말할 뿐이었고, 그 말을 미친 소리로 여기든 아니면 저 말을 믿고 나도 그런 미친 짓을 벌리든 그것은 오직 내 결정이었다.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고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는 즉시 로또를 사세요. 그리고 그 로또가 꼭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세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진심으로 되길 바래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다음에 예전 저처럼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머리에 돌멩이를 던져달라고 해보세요. 물론 머리에 돌을 맞는 정도로는 1등이 되긴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유의미한 결과를 받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때서야 제가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객은 완전히 밖으로 나갔다. 나는 한참 동안 그가 열고 나간 문을 바라보면서 멍하게 앉아 있다가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밖으로 나왔다. 맑고 눈부신 오후의 가을 햇살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는 성가신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 시선을 왼편으로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길거리에서 로또를 파는 노점상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라면 있는 줄도 모를 간판이었다. 


나는 어느새 그곳 앞에 서 있었다. 작은 노점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는 손만 보였다. 나는 뭔가에 씐 것처럼 로또 한 장을 주문하고 돈을 지불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동으로 선택된 번호가 찍힌, 생애 처음으로 산 로또 종이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나자 나는 좀 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사방이 다 막혀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던 내 삶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고객이 한 말이 혹시나 진실이라면 이것은 나에겐 유일하게 남은 탈출구였다. 물론 괜히 머리에 돌을 맞고 나서 꿰매는 수술만 받고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그래서 분명히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를 잔뜩 할 처지가 분명했지만, 그 당시 나는 썩은 동아줄임이 뻔해도 일단 붙잡고 봐야 할 만큼 절실했다.


나는 예전에 돌 던지기를 부탁했었던 핸드볼 선수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예전에 했던 일을 또다시 해달라고 하자 상대는 웃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나라고 하자 이번엔 깜짝 놀라는 음성이었다. 정말로 해도 되는지를 몇 번이나 되물었다. 나는 그때보다 백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 대신 지금 돈 지급은 그 일이 끝난 후 해줄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상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오늘이 화요일이니 로또 당첨번호가 발표되는 주말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움직일 동선과 시간대를 설명해주고 적당히 알아서 돌을 던져달라고 했다. 만약 이 일이 완전히 헛짓거리로 끝난다면 나는 내가 약속한 돈을 줄 능력이 안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인간이 나한테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돈을 받지 못했다고 딱히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없을 테니까. 혹시라도 고소를 했다고 해도 구두로 이뤄진 약속인 데다가 스스로 나에게 돌을 던졌다고 고백을 하는 꼴이라서 오히려 나에게 폭행죄로 고소될 상황이었다.



그 주 토요일 밤에 나는 돌에 맞아 꿰매서 꽤나 통증이 느껴지는 내 머리에 한 손을 올리고 나머지 한 손엔 로또 용지를 쥔 채 멍하게 종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로또 용지의 번호는 발표된 당첨번호와 딱 하나만 달랐다. 더해서 놀랍게도 보너스 번호가 같았다. 1등까지는 아니지만 무려 2등에 당첨된 것이다. 아마도 대충 사천만 원 정도 돈이 들어올 듯했다. 물론 세전이긴 했지만. 그래도 삼백을 투자하고 그리고 머리에 몇 바늘 꿰매고 받은 돈치고는 충분히 많았다.


단순히 우연일까? 머리가 복잡했다. 무엇보다 전혀 실감도 잘 나질 않았다. 당첨금을 받는 중에도, 받고 나서 통장에 든 당첨금을 확인하고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뭔가 홀린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그냥 내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손을 들어 머리를 만져보니 뒤통수에서 날카로운 아픔이 느껴졌다. 의사는 살이 찢어지고 뼈에도 살짝 금이 갔다고 했다. 그놈이 작은 돌을 던졌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커다랗고 날카로운 돌을 던진 것 같았다. 순간 돈을 주지 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이런 일을 또 해내려면 그런 녀석이 필요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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