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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22. 2021

완벽한 인생 #6

균형점

그다음 주에 나는 로또에 또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같은 번호로 다섯 장을 샀다. 모두 2등이 되더라도 다섯 장이면 1억이 넘을 돈을 받을 수 있다. 머리가 또 깨지는 것은 싫었지만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정도의 돈은 필요했다.


그 주 토요일 밤에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다섯 장의 로또 용지를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죽일 놈. 내 손에 쥔 로또 용지들에 있는 번호는 당첨번호와 단 하나도 맞지 않는, 완벽한 꽝이었다. 그런 헛소리를 믿은 내가 잘못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그 분노만큼이나 내 옆머리에 새로 생겨난 두 번째 상처가 아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꺼내어 고객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퍼부어 댔다.


“두 가지 실수를 하셨네요.” 고객은 웃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되돌아와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서 두 가지 주의사항에 대해서 말해줬다. 하나는 행운과 불운의 크기에 관한 대칭성의 원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머리가 깨진 정도의 불운은 로또 2등 수준하고 대략 비슷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동일하게 머리가 깨지는 불운을 겪으면서 다섯 장의 로또를 산 것은 그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당연히 그런 행운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두 번째는, 사실 좀 이해가 가질 않았고 고객 본인도 정확하게 그 원리를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일이든지 반복시키면 그때부터는 그것은 운이 아닌 것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지난주와 똑같이 로또를 사고 머리에 돌을 맞는 짓을 벌인 것은 더 이상 운이 아닌 것이다. 결국 내가 이번 주에 벌인 일은 정말로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나는 따졌다. 왜 그때 그 말을 하지 해주지 않았냐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때 내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인데 왜 그 말을 해줘야 했었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순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기분만 더 나빠졌다. 그래도 물을 것은 물어야 했다. 추가적으로 내가 더 알아야 할 주의사항은 없냐고 물었다. 그 후 한참 동안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머물렀다. 내가 전화가 끊겼나 하는 의심이 들 때쯤 그는 "진실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마세요. 그것은 불과 같아서 데일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만 남기로는 전화를 끊었다.


데일 수 있으니 진실에 너무 가깝게 다가가지 말라, 스스로 집에 불을 낸 인간이 할 말은 아닌 듯 느껴졌지만, 어렴풋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이 갔다. 아마도 그가 한 말의 의미는 너무 자주 이 방법을 쓰지 말라는 뜻인 듯했다. 그렇다. 무엇이든 남발하면 안 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의사항이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영화나 소설책에서 탐욕과 집착이 가져온 불행을 충분히 봐 왔다. 그러니 내가 운을 조절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해야 할 것이다.


다음 해 봄이 오기 전까지 나도 자동차 사고가 한 번 났고, 내 집에 불이 났다. 그리고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빙판 길에 넘어서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대신 내가 새롭게 시작한 사업은 순풍이 불 듯 잘 되었다. 나는 로또 당첨금으로 일단 주식을 했다. 그리고 여섯 달 만에 다섯 배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차 사고가 한번 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으로 기존의 흥신소를 때려치우고 작은 상가를 얻어서 유통업을 시작했다. 과일을 파는 일이었다.


일반 과일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는 외국 과일이나 새롭게 개발된 품종만 팔았다. 특이한 상품을 판다는 소문이 나면서 고객이 몰렸다. 더군다나 인터넷으로까지 판매를 하니 매출이 쭉쭉 늘어났다. 단지 그런 특이한 과일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집에 불을 내야 했다. 나는 집에 불이 난 후 그런 상품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장님과 운 좋게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의도적으로 벌인 짓은 아니지만, 우연히 재수 없게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 후에는 여자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내가 다쳤을 때 찾아갔던 정형외과의 간호사였다. 다른 것들은 사실 정확히 그 인과관계를 잘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정말로 불운이 행운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런 식으로 우연히 고객을 통해 운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 후 내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그 고객을 우연히 만난 일 그 자체가 내 삶의 최고의 행운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인해 고등학교조차 겨우 졸업한 나는 일찍 군대를 다녀온 후 20대 초반부터 우연히 심부름센터에서 알바를 하다가 지금까지 15년 동안 이쪽에서만 일을 했다. 그동안 여자를 사귈 엄두도, 사귄다고 해도 어떻게 잘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이쪽 일을 하면서 반복적으로 불륜현장 잡는 일을 하다가 보니 결혼 그 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도 심했다. 하지만 팔을 다쳐 병원에 갔던 날 첫눈에 반한 연아씨와는 정말로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 지금 하고 있는 가게만 유지가 잘 된다면 나와 연아 씨는 그리고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들이 먹고사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아이들이 아버지 직업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남들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직업과 누가 물으면 대충 얼버무리며 말해야 하는 직업은 분명히 존재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흥신소는 분명히 그중에서 후자에 속했다.



내가 원한대로의 삶이 펼쳐졌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 내 삶에는 여전히 불운과 행운이 교차했다. 단지 내가 나에게 올 행운을 내가 원하는 시기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만이 과거와는 달랐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예전엔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는데, 행운과 불운에 관한 진실을 알고 나서 유심히 삶을 바라보니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행운은 꽤나 자주 오는 편이었다. 지하철을 타러 갔는데 딱 맞춰서 도착하는 경우나, 전혀 사전 정보 없이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아주 맛난 음식을 먹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그런 행운들은 그 순간 잠시 행복할 뿐 삶에 거의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그러니 그런 행운들은 딱히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일부로 딱 맞춰 온 지하철을 타지 않고 사전 정보 없이는 가능하면 음식점에 들어가지 않았다. 만약 간다고 해도 점심시간에도 사람이 하나도 없는, 딱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는 식당에 가곤 했다.


나에게 딱히 불필요한 행운을 줄이고, 내가 꼭 필요할 때 불운을 일으켜 원하는 행운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깨달은 삶의 비법이었다. 사실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행운에는 단지 팔이 부러져서 병원에 갔던 불운만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아내는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는 나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아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또 다른 불운을 일으켜야 했다. 그것도 꽤나 강력한 불운이어야 했다. 나는 고심 끝에 내 몸이 상하지 않으면서 커다란 불운이 될 것을 결정했다. 그것은 바로 내 사업 경쟁자의 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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