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ónde estoy en este mapa?
29/04/viernes
4월 29일 금요일
desde León hasta San Martín del Camino
레온에서 산 마르틴 델 카미노까지
여행한 지 26일, 걸은 지 23일
다시 말하지만 레온은 순례 여정 중 만나는 가장 큰 도시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경도 하고 필요한 것들을 챙길 겸하여 하루 이틀 쉬어 간다. 심지어는 순례를 이곳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아마 그래서 생장에서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일 말이다.
새로 산 짐(보온을 위한 점퍼와 두꺼운 스타킹 두 개, 근육통 약 큰 거)이 가방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탓에 준비가 오래 걸렸다. 지수와 은배는 먼저 지하에 내려가 아침밥을 준비 중이었다. 평범하고도 분주한 아침이 물씬 느껴졌다. 나는 그들과 전자레인지에 돌린 따뜻한 빠에야 한 그릇을 비웠다. 오렌지 주스도 벌컥벌컥. 잘 차려진 음식들에 식욕이 돌아서 그런지 컵라면도 금세 해치웠다. 그럼에도 어제 마트에서 신나게 고른 것들이 꽤 남았다. 그렇담…… 요구르트 2개에 방울토마토 한 상자도 게눈 감추듯 자취를 감추었다. 7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각 걷기 시작했다. 후우- 거하게도 먹었다.
순례자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와 동네를 가득 메웠다. 점령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깜빡이는 주황색 불에 항상 걷는 이들을 의식해야 하는 자동차들에 반해, 순례자들은 횡단보도를 성큼성큼 걷는다. 척척 순례자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경쾌하고 흥겨웠다. 좁은 인도도 개선장군의 행차처럼 걸으니 마냥 좁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비가 오나? 돌출된 창문에 유난히 꽃들을 키우는 집이 많다 했는데 그것이 사달이었다. 상쾌한 새벽 공기 마시며 화단 주인은 꽃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었다. 밑으로 주르륵 빠지는 물길은 모른 채! 나는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마을을 들어간 건지 빠져나온 건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마을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나왔다. 지도를 보고 가늠해볼 때 아마 그곳이 긴 줄의 꽁지, 마지막이 될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앞치마를 두른 한 여자가 커피? 주스? 물었다. 당시엔 적극적인 호객행위인지도 모르고 기분 좋게 붙잡혔다. 나는 과일이 주는 상쾌함이 필요했다. 그래서 야외 테이블에서 덜덜 떨면서도 구태여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주인 여자는 우리가 음료를 마시는 동안에도 지나치는 순례객들을 붙잡으며 물었다. 거절하는 이가 많았지만 그녀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발레! (Vale, 오케이! 좋아.) 아침 식사 때 남겨온 바나나는 아직 껍질이 파르댕댕했다. 껍질이 과육을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깎아내듯 껍질을 벗겨내고 보니 하얀 부분은 얼마 없었다. 내가 덜 익은 바나나를 좋아한다 해도 비릴 정도였으니. 얼른 입에 털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고 난 건데 발이 전보다 더 아프다. 걸음을 천천히 해야겠어.
기분 좋은 마을을 발견했다. 순례자를 응원하는 간식거리가 바구니 한 가득 담겨있던 집은 매우 다정하고 푸근하였다. 탁자 위엔 간식과 더불어 세요와 방명록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비스킷과 초콜릿을 주머니에 넣었다. (물론 세요도 찍었으며) ‘고맙습니다. 이 길에서 또 오아시스를 만나네요.’ 방명록에 글을 남기려는 찰나 창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먹을 것 하나라도 더 가져가라며 인심을 베푸셨다. 정감 가는 그 집에서 길 하나만 더 건너면 바가 있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로 따뜻했다.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할 때, 이제는 볼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나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식당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무렵, 딱 거기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라테를 시키면 쿠키가 곁들여져 나오는 그런 곳이었다.
지수는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반면 은배와 나는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자동차만 드나들 법한 곳을 따라 걸었고, 어느 농가의 밭을 걸었다. 그리고 가축을 풀어놓은 들판도 지났는데, 주인이 급한 용무를 볼 때 사용하려고 놓은 것인지 아님 이것도 순례자를 위한 배려인지 우거진 덤불 뒤 아주 적당한 자리에 변기가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배려……겠지? 비 온 뒤 웅덩이가 생기면 주위 큰 돌들을 옮겨 징검다리를 만들어주는 그런 곳 아니겠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배려라 여기면서도 새어 나오는 의구심과 웃음은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마을. 키가 너무 큰 탓에 잎사귀까지 수분은 끌어올릴 수 없어 비쩍 메마른 나무에, 새둥지가 촘촘히 맺혀 있었다. 까마귀가 찢어지는 소리로 울어댔다. 한낮인데도 꽤 오싹할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가던 길을 마저 걸었고, 금방 싸늘함은 잊은 채 슈퍼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초코바 하나를 들고 계산하면서 주인 여자에게 화장실이 있냐고 어딘지 물었다.
- 아뇨! 없어요.
구시렁구시렁. 투덜대며 건물을 나왔다. 먹을래요? 좀 전까지만 해도 안 먹겠다며 밖에서 기다리던 은배는 역시나 오케이였다. ‘까마귀 마을’에 도착할 무렵 은배와 나는 각자 순례길을 어떻게 준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 그나저나 골반에 허리 벨트가 쓸려서 아프네요.
나는 그간 수없이 조이고 풀기를 반복한 허리 벨트를 다시금 고쳐 멨다.
- 네가 가방을 잘 못 샀네.
포장지를 뜯으니 길게 모양 잡혀 있어야 할 초코바가 두 동강이 나있었다. 어떻게 나눠 먹으라고 딱 부러져 있네. 은배에게 농담을 던졌다.
- 부서진 게 아니라 원래 두 개야.
- 여기 곱하기 표시가 길이가 아니라 개수를 말하는 거였구나?
- 아니 그러니까, 부서진 거 아니라니까.
얄미웠다.
알베르게에서 등록을 마치고 바로 빨래를 했다. 이만큼의 땀을 빼내는 태양이면 빨래는 금방 마를 것이었다. 샤워로 흥건한 물기에 머리카락을 추스르며 빨래를 했다. 화장실에서 빨래하지 말라는 경고문은 왜 매번 손에 물기 털 때 즈음 발견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당에 나가보니 떡 하니 일렬로 잘 설치된 수도가 있었다. 조심스레 빨랫줄에 옷가지들을 널었다. 탈탈. 오늘 마을 구경은 넘기기로 했다. 숙소가 중심부로부턴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 대신 내일 일찍 출발해서 둘러보자. 그럼 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고. 말 그대로 신선놀음, 걱정거리가 없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약을 바르고 햇빛으로 소독을 했다. 그때 한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너 혹시……? 로세일라는 나를 아헤스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헤스. 이탈리아인. 백발에 짧은 머리.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가 나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고 있는 것이 그 와중에 다행이었다.
로비 직사각형 식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미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따뜻한 콩 수프를 시작으로 고소한 감자구이, 신선한 샐러드, 갈릭 바게트, 거기에 고기 찜까지 올라왔다. 입이 떡 벌어지는 스페인 가정식이었다. 내가 앉은 식탁엔 지수, 은배, 박 씨 아저씨, 로세일라, 멕시코 여자와 스페인 남자 각 한 명씩 총 일곱 명이 둘러앉았다. 언뜻 유럽인 세 명은 서로 소통이 가능한 것 같았다. 슬쩍 들리는 스페인어에 나도 그 대화에 참여를 시도했다.
- 너 스페인어 할 줄 아니?
- 숫자랑 인사, 단어 조금?
박 씨 아저씨는 식전주가 나올 때부터 흥분 상태였는데, 술을 곁들이니 음식이 나올 때마다 얼굴이 상기되어 감격의 표현에 강도를 높였다. 굿, 베리 굿! 특히 고기 찜을 맛볼 땐 더더욱 그랬다.
- 그럴 땐 보니씨모(Bonísimo, 매우 좋은)라고 하면 돼. 이건 레끼씨모(Riquísimo, 최고로 맛있는). 아주 좋다는 뜻이야.
아저씨는 감사의 인사로 오스피탈레로와 술을 나누고 건배를 외쳤다.
- 드랑낄로! 드랑낄로(Tranquilo, 침착한)는 캄 다운이랑 같은 의미야.
유럽인 셋이 동시에 말했다.
일곱 명은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를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대화 중엔 계속해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단연은 드랑낄로였다. 모두가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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